뒤끝과 글쓰기의 상관관계

by 하늘진주

‘뒤끝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날 경우가 종종 있다. ‘뒤끝’은 좋지 않은 감정이 있은 다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감정이다. 이런 사람들은 때로는 직설적으로, 혹은 감정적으로, 저마다 말하는 어투와 내용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한다. 보듬고 다독이는 관계 언어 중심의 ‘대한민국 아줌마들’ 사이에서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대화법이다. 하지만 때로는 ‘사이다 화법’으로 환영받기도 한다.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덜 받고 인생을 정말 활기차게 즐긴다. 참 부러운 사람들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뒤끝이 있는 편이다. 십몇 년 전 둘째를 임신했을 때 남편이 회식이며 잦은 술자리로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아 혼자 힘들었던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뒤끝의 최고봉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뒤끝이 없는 사람인 양 행세할 수 있었던 큰 비결은 다름이 아닌 바로 글쓰기이다. 신기하게도 상대방에게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들은 손이 아플 정도로 글을 쓰면 휘발되어 사라졌다. 말을 하기보다는 글을 쓰는 것이 편했고, 마음이 불편한 일이 생기면 그 감정이 흘러넘칠까 꾹꾹 참았다가 집으로 돌아와 글을 쓰며 해소했다. 사실 이런 습관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몰랐다. 글쓰기는 내 감정을 풀어내는 도구였고 하나의 습관일 뿐이었다.


어제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며 잠시 대화의 주제가 ‘글쓰기’로 흘렀다. 그 주제를 먼저 언급한 친구는 평소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의 대사와 서사를 종종 말하며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부럽다고 덧붙이곤 했다. 평소 일상 대화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추앙’이라는 문어체 화법으로 유명한 그 드라마 말이다. 친구가 그 드라마를 좋아한 이유는 내용도 좋지만, 평소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의 감정과 말들을 예리하게 잡아내서 풀어내는 그 작가의 방식이 좋아서 일 것이다. <나의 해방 일지>는 어쩌면 구질구질하게 흘러갈 수 있는 내용들을 너무도 현실적으로 때로는 냉정하게 풀어냈다. 다시 봐도 충격적인 등장인물 엄마의 죽음조차도 담담하게 있을 법한 이야기로 그려냈다. 그래서 보고 나면 주변 인물들을 더 챙기게 만드는 드라마이다.


한 구절만 읽어도 짜릿한 감동을 느끼게 하는 천재적인 작가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작가들은 극소수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런 작가들은 잘 못 봤다. 보통 즐겨 읽고 좋아하는 책들은 내 관심사와 맞아서, 혹은 그 작가들의 문체가 좋아서, 혹은 그 작가들의 생각이 좋아서 읽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정리하자면,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읽는 독자의 취향에 달린 것이다. 글이 조금 서툴러도 작가의 삶과 인생관이 마음에 절실히 와닿으면 그 사람은 충분히 나에게 훌륭한 작가이다. 작가의 문체가 아무리 유려하고 구성이 탄탄해도 마음에 와닿지 않으면 그 작품은 매주 해야 하는 분리수거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는 정신없이 휘갈긴, 숙제라 억지로 써 내려간 감정 섞인 둘째 아들의 독서록 문장이 내 마음을 뒤흔들기도 한다.


한참 대화를 나누던 중에 친구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부럽다고 말한 의미’를 다시 정리했다. 그 의미는 단순히 글을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서술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친구는 ‘자신의 성격이 더러워서 남편이 자신의 말을 잘 듣는다’라며 너스레를 떨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녀는 너무 착하고 잘 참는 성격이었다. 불편한 상황을 접해도 참고 억지로 잘 추슬렀다. 하지만 티끌처럼 남은 ‘뒤끝’이 그녀의 마음속에 콕 박혀서 상처 입힌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생채기를 내며 종종 친구를 아프게 했다.


글보다는 말로 자신의 뒤끝을 푸는 것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뒤끝은 없는 사람이야. 그러니 지금은 내 말만 들어.”라는 명목으로 온갖 분노의 감정들을 상대방에게 다 쏟아낸다. 그러면 당사자는 후련할지 모르지만, 그 말들을 들은 사람은 상처를 받는다. 나 역시도 그런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 상처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 영향으로 글쓰기 습관을 지니게 되었으니 어쩌면 전화위복일지도 모르겠다. 단언컨대, 뒤끝을 없애기에는 글쓰기처럼 좋은 치유 약은 없다. 나 역시도 글을 쓰며 내 마음을 많이 치료했다. 말로는 다 못 할 문장들, 감정들은 정신없이 휘갈긴 글 속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글을 쓰면 처음에는 주관적으로 흘렀던 감정들이 점차 침잠되어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이켜볼 수 있다. 혹시 당신도 뒤끝이 있는 편인가? 한번 그 감정들을 글로 표현해 보라고 꼭 권유하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6월의 시작, 가득 채운 설렘 한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