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의 가격은 얼마나 될까? 솔직히 무형의 시간을 가격으로 환산해 본 적이 없어 얼마가 될지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 만원? 천 원? 미국의 재벌, 워렌 버핏의 점심식사 경매가와 같은 어마어마한 가격은 꿈도 꾸지 않는다. 그저 ‘너와의 시간은 가치가 없다’며 사람들의 일정표에서 제일 끝 순위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요즘 사람들은 참 바쁘다. 그래서 친구들과, 지인들과 약속 잡기가 참 어렵다. 매번 약속 한 번 정하려고 하면 가능한 요일, 시간들을 한창 실랑이하다 진이 빠진다. 그러면서 다들 ‘자신은 안 바쁜데 너희가 너무 바빠서 그렇다’며 슬며시 변명을 대곤 한다.
솔직히 나는 안 바쁘다. 지난 일주일을 잘 살펴보면 어떤 요일들은 심심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 원래 프리랜서 일 특성상, 일이 한꺼번에 몰리는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따로 다른 일정을 잡지 않는 한 온종일 집에 있는 날도 많다. 그런데 사람들과 약속만 잡으려고 하면 왜 이렇게 삐걱대며 문제가 생길까?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2022년 6월 18일 자 조선일보에 기재한 칼럼,’함께 하는 시간의 가치‘에서 소설가 백영옥은 시간에 대한 단상을 이와 같이 늘어놓았다.
그녀는 친구들과 약속을 잡으며 진땀을 흘렸던 사연을 글의 서두에서 밝히며 ‘모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문제는 그 시간을 ‘동시에’ 맞추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 약속 잡기의 문제였다’며 본인의 느낌을 말했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서로 만나기 어려운 이유가 ‘9시 출근 6시 퇴근’처럼 과거의 정규직 근무 태와 다른 다양한 근무 환경에서 일하기 때문이라고 서술했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약속을 잡으려는 사람들은 모두가 일정한 시간만 일하는 사람들이 아닌 다양한 일정들을 소화하는 사람들이었다. 요일에 따라서 특정한 스케줄이 있는 사람, 시간대에 따라 다른 일정이 있는 사람, 혹은 주말에 다른 일을 하는 사람 등등, 이런저런 스케줄을 모두 따지다 보니 약속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에게 유리한 스케줄’만 앞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바쁘다 보니 ‘함께하는 시간’이 본인의 일정에 따라 재평가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얼마 전 어떤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도 다들 일정이 달라 모두가 모이는 하루를 잡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그럼에도 단톡방에서 억지로 요일과 시간을 맞추어 겨우 모임날을 정했다. 그런데, 그날 아침, 모임을 정할 때도 별 말이 없던 한 분이 다른 수업이 있다며 당일 불참을 알렸다. 결국 나머지 사람들과 모임을 가졌지만 내내 기분이 편치 않았다. 왜 그분은 미리 일정을 말하며 조율할 생각을 갖지 않았을까?
비단 그분뿐만 아니라 요즘 약속을 잡다 보면 종종 경험하는 일이다. 이상하게도 요즘 사람들은 ‘그다지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모임’ 일 경우, 본인의 일정을 밝히며 조율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냥 그 모임에 얼굴을 비추는 것만으로도 ‘황송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잠깐 들렀다가’ 곧바로 다른 일정으로 가 버린다. 돈이 되지 않는 일,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들은 모두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순수한 ‘친목’의 시간을 가질 때는 왠지 ‘바쁜 사람’들에게 미안한 감정까지 든다. 물론 ‘돈’보다 ‘친목’의 시간이 우선시될 수 없고, ‘수업’보다 ‘단순한 수다 시간’이 중요시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함께 있는 시간이 그렇게 재단되고 평가받는 일은 참 서운하다. 왜 돈과 관련 없는 만남이, 함께 하는 시간들이 이렇게 값싼 가격으로 치부되는 걸까?
사람들 역시, ‘지금 가족들과 함께 있어요.’라는 말보다 ‘지금 수업 중이에요.’라는 말에 더 조심하며 전화기를 내려놓는다. ‘가족과의 시간’, ‘친구와의 시간’은 언제든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시간이지만, ‘수업 중’은 돈을 벌며 일하는 중이기에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내년 고3이 될 큰 애’를 위한 나만의 포부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지금 하는 일을 좀 줄이고 아이를 위한 ‘일 년’을 지내겠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부는 애가 하는 건데 왜 네가 그런 결심을 하냐’, ‘그냥 네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말했다. ‘아이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 시간을 내어 주겠다’라는 나의 결심은 ‘엄마의 욕심’ 일뿐이요, 의미 없는 행동일 뿐이라 한 목소리로 말했다. 참 어렵다. 시간이 이렇게 상황과 사람들에게 달리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소설가 백영옥은 <함께하는 시간의 가치> 칼럼의 마무리에서 ‘시간의 진정한 가치는 흥청망청 내 시간이 많을 때가 아니다. 그 시간을 친구나 가족, 만나고 싶은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을 때다.’라며 시간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웠다. 시간은 언제 어디서건 비슷하게 평가받아야 하지 않을까? 함께하는 시간의 가치, 내가 가진 시간의 가치가 이렇게 ‘돈’으로만 평가받는 현실이 너무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