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공원 산책로에서

변화를 맞이하는 준비

by 하늘진주

며칠 전부터 우리 아파트 후문 쪽의 공원 재단장 작업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 공원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크기에, 산책로 곳곳에 나무들도 심겨 있어 마음 편히 운동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매일 아침, 모자에 선글라스, 마스크를 끼고 중무장을 한 채 산책하러 나가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공원 가운데에는 열 명 정도의 할머니들이 편한 복장으로 한 할머니의 구령에 맞춰 운동하고, 산책로 곳곳에는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활보하며 아침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매일을 그렇게 아침을 열었는데, 이제는 두 달 동안 익숙한 일상이 멈춰버린 것이다.


처음 며칠 동안은 뜨거운 햇살을 핑계 삼아, 혹은 비를 핑계 삼아 아침 산책하러 나가지 않았다. 점점 쌓이는 내 살들을 지켜보다 꾸역꾸역 다시 중무장하고 새로운 산책로를 찾아 나섰다. 이미 익숙한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발걸음들은 왜 이렇게 무거울까? 예전의 공원을 갈 때는 주변을 이렇게 조심스럽게, 세심하게 살피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쉴 새 없이 오갔던 길이라 다른 풍경들을 잘 살피지 않고 앞만 보고 걸었다. 하지만 새로운 산책길을 찾아 나서는 내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딱딱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괜스레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혹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이런저런 이정표들을 머릿속에 콕콕 집어넣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30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지만 난 이미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옛이야기 속의 겁먹은 소녀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겨우 찾은 또 다른 산책로, 그곳은 예전의 공원보다 훨씬 넓었고,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채울 수 있는 멋진 곳이었다. 예전의 공원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여러 개의 가파른 오르막길이 있었고, 도로가 잘 닦여져 있어 비 오는 날도 신발 젖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산책로 끝 쪽에는 멋진 커피숍까지 마련되어 있어 필요하다면 언제든 쉬어갈 수 있었다. 조금만 생각을 달리했다면 예전에도 충분히 이 멋진 산책로를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예전의 공원에서의 산책만을 고집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예전에 읽었던 스펜스 존스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이 떠 올랐다. 이 책은 우화 형식의 자기 계발 책으로, 인생의 변화에 대해 대응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책의 주인공 생쥐 스니프, 스커리, 작은 인간 햄과 허는 자주 가던 치즈 공간에서 점점 치즈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 변화를 긴밀하게 파악한 스니프와 스커리는 치즈를 찾아 나섰지만, 작은 인간 햄과 허는 변화에 머뭇거리다 곤경에 처하게 된다. 작가는 4명의 등장인물이 각각 변화에 대응하는 모습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보여준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만 해도 별 감흥이 없었다. 한창 젊은 시절이었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이 있었다. 게다가 세상의 변화에 당연히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기에 이 책의 내용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계속 유지되었으면 좋으련만, 그 시절의 나는 멀리 사라지고, 이제는 변화를 무서워하는 ‘내’가 여기 서 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점점 새롭게 도전하기보다는 자꾸만 편한 길, 익숙한 길만 찾아다닌다. 예전의 공원 역시 재단장 공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난 계속 그 공원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을 것이다. 그 공원이 유독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른 길을 찾아 나서기가 두려워서,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나는 계속 그 공원을 고집했다.

책의 주인공, 생쥐 스니프, 스커리, 작은 인간 햄과 허는 ‘치즈’가 사라지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이런 교훈을 얻는다.


“두려움을 없앤다면 반드시 성공의 길이 열린다.”

“과거의 사고방식은 우리를 치즈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비단 공원의 산책뿐만 아니라 나의 두려움, 과거의 사고방식 때문에 도전해 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다들 쉽다고, 그냥 하면 된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태산’처럼 크고 무서운 공포로 다가오는 것들 말이다. 이번에 새로운 공원 산책길을 발견한 것처럼, 용기를 낸다면, 일단 시작한다면 묵혀 두었던 소망들을 다 나만의 ‘치즈’로 완성할 수 있을까?


변화는 누구에게나 익숙하지 않고 불편하다. 하지만 결국 변화에 익숙해져야 한다면 마지막까지 버티다 받아들이지 말고 편한 마음으로 여유 있게 받아들이고 싶다. 꽉 막힌 단단한 사고 속에 억지로 끼워 넣는 변화가 아니라 유연하게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준비된 마음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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