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작은 학원을 운영하는 친구가 전화를 했다. 친구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논술을 가르치는데, 한 학생이 그만뒀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현재 학원의 위치가 아파트 밀집단지가 아닌 데다 운행 버스가 없어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던 차였다. 이런저런 푸념을 늘어놓던 친구는 문득 이렇게 물었다. “그 학생은 내 수업이 재미가 없었던 걸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는 경우가 참 많다. 수업 중에 아이들이 지루해하거나 짜증을 내는 표정을 지으면 내 수업 때문인지 고민을 많이 한다. 그 상상은 수업 시간 내내 끝도 없이 커진다. 사실 내가 가르치는 내용 대부분은 단기간에 점수 쌓기와는 상관이 없는 수업들이다. 오로지 먼 미래를 내다보며 준비하는 내용이기에 인내심과 노력이 매우 필요하다. 오히려 소규모의 아이들과 길게 수업할수록 큰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수업이다. 이런 경우는 큰 문제가 없다. 아이들의 컨디션에 따라 조였다가 늘렸다가 마음대로 수업의 난이도를 조절하며 소통이 가능하다.
문제는 학교에서 의뢰를 받아 ‘단타(2~3시간의 짧은)’ 수업을 했을 경우다. 아이들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수업하기는 참 어렵다. 게다가 학교에서 요구한 목적을 다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아이들과의 실랑이를 벌일 각오를 해야 한다. 보통 가장 많이 단타 수업 의뢰들이 밀려드는 시기는 방학 전이거나 학년이 거의 끝날 무렵이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도저히 건드릴 수 없는 ‘천하무적’의 고슴도치다. 학생들은 수업이고 뭐고 온몸에서 놀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넘쳐나기에 ‘오로지 놀기 위한 수업’이 아닌 모든 수업을 다 거부한다.
이런 상황에서 수업을 할 때면 괜스레 학생들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아이들을 재미나게 웃기며, 집중을 확 끌어당기면서 수업을 이끌어 가고 싶지만, 마음만 앞선다. 요즘 아이들은 외부 강사에 대한 수업에 대한 피드백 역시 그 자리에서 바로 표현한다. 수업이 재미있었다면 미소가 가득, 조금이라도 싫었다면 드러내 놓고 싫은 표정을 짓는다. 온종일 그렇게 수업을 끝내고 나며 매번 갈등에 빠진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부터 ‘재미있고 집중력이 있게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와 같은 고민들 말이다. 이 순간 내가 고민하는 부분은 수업의 재미 부분이다. 수업의 목적, 내용과는 상관없이 어떻게 재미있게 전달할까에만 관심이 쏠린다. 물론 재미 요소만으로 수업을 이끌어가기는 어렵다는 것은 나 자신도 너무 잘 안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놀기만 좋아하는 학생들도 ‘국·영·수·과’와 같은 과목만은 지루해도 열심히 수업을 받는다. 이 경우의 수업은 ‘재미’ 요소보다는 ‘효과’가 가장 중요한 조건을 차지한다. 조금 재미가 없더라도 현재 실력만 높일 수 있다면 그 수업은 이미 최고의 수업이다. 혹시 그 과목들의 강사가 뛰어난 달변과 실력을 갖추고 있어 수업마다 학생들의 집중력과 성적을 향상할 수 있다면, 그 강사는 아마도 대한민국 최고의 강사진에 충분히 오를 것이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어른들 역시 배움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생활의 정보를 알려주는 실용적인 수업부터 교양의 기초를 쌓을 수 있는 인문학 수업,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전문적인 수업 등…. 어른들은 발품과 시간을 들여 양질의 수업을 듣기 위해 노력한다. 사실 어른이 된 후 가장 좋은 일 중 하나는 원하는 수업을 골라서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평소에 관심이 있는 분야, 배우고 싶은 분야를 배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게다가 자격증을 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시험에 대한 부담도 없다. 지식의 양을 꾸준히 채울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어른의 배움과 학생들의 배움은 분명 다르다. 대한민국 학생들은 대입이라는 원대한 목적을 향해 고군분투한다. 시험과 점수에 연연하며 청춘을 바쳐 이 시기가 얼른 끝나기만을 학수고대한다. 끝이 보이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그에 반해 어른들은 상황에 따라 끝이 없는 목표를 위한 배움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런 대부분 수업은 한 번 들으면 계속 수업을 들어야 하는 ‘뫼비우스의 띠’이다. 본인의 선택에 따라 끊고 맺음이 가능하지만 쉽게 끊지도 못한다. 이처럼 어른들이 의무가 아닌 수업을 계속 듣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그 원동력을 재미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성장이라고 답하기도 한다.
몇 주 전부터 수강하기 시작한 수업도 역시 ‘재미’와 ‘효과’ 사이에서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분명 수업이 재미가 있을 것 같아 신청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재미가 없고 너무 어려웠다. 강사 역시 이런 수강생의 반응을 많이 접했는지, ‘자신은 인문학이 무조건 어려워야 한다’라며 여러 가지 전문지식을 열거하며 설명을 했다. 분명 그는 자신의 수업이 어렵고 지루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수업을 잘 알아듣는 것은 오로지 수강생의 몫이었다. 수업을 들을 때 재미와 효과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남편에게 이 수업 이야기를 하니, 남편은 ‘세상에는 즐겁고 할 일도 많은데 왜 스트레스를 받으며 그런 수업을 듣고 있냐’고 바로 말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수업은 재미없고 어렵지만, 그래도 다른 활동에 도움이 될지 몰라서 미련스레 듣고 있다'고 속으로 삐죽 말했다.
가르침에 있어서 그 강사와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 수업은 쉽고 재미있어야 할까? 아니면 어렵더라도 멋진 성과를 낼 수 있어야 할까? 수업의 효과와 재미 사이에서 계속 고민이 된다. 나 역시도 지루하고 어려운 수업에서 바로 인상이 찡그려지는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싶다가도 서운하다. 어려운 수업을 쉽고 재미있게만 가르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것이 너무나 어렵다. 학생들이 지루하고 어려운 수업을 계속 이어나가게 하는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매번 수업을 받을 때마다, 수업할 때마다 고민이 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