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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수업

by 하늘진주

몇 주 전부터 친한 동생의 권유로 에세이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수업은 금요일 저녁 9시부터 11시까지, 잠깐의 쉼 없이 빡빡하게 진행된다. 그런데도 그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게다가 매주 1편의 기본 주제 에세이와 1편의 나만의 에세이까지 내면서 다른 일정들과 같이 소화하려니 솔직히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이 수업은 글을 쓰고 읽는 기쁨과 같은 길을 걷는 문우를 만날 수 있는 설렘의 시간이었다.


문제는 첫 시간 이후였다. 이 수업의 마지막 목적지는 본인의 이야기로 전자책을 내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만의 인생 이야기나, 일상에서 보고 느낀 사소한 감정들을 7편의 에세이로 완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현재의 나에게 내 인생의 여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글쓰기가 너무 어렵다.


물론,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내 글쓰기의 방향은 ‘솔직 담백’이다. 하지만 그동안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속풀이 하듯이 마음을 다스리는 글들만 연신 써 왔던 탓에, 혹 내 글이 푸념의 글쓰기로 비칠까 매우 두렵다. 아니,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내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들 아무도 읽어 주지 않을까 봐 쓰기도 전에 이미 주눅이 들어 있다. 한마디로 재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앞서 가부장적인 아버지 때문에 힘들었던 일, 지금까지 지속되는 아들과 딸의 차별 때문에 속상했던 일들을 주구 창창 써 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면 그건 누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쓱 보기만 해도 깜짝 놀랄만한 인생 스토리, 드라마틱한 삶의 변화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비극적인 가정사가 있다면 비밀로 묻어두는 것이 상책이다. 입 밖으로 꺼내는 것만으로 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테니 말이다. 모든 일의 해결에는 시간이 걸린다.)


아버지의 호통이 무서워 속마음으로 안으로 삼키는 소심한 사춘기 시절을 보냈고, 결혼한 후 무조건 지지해 주는 남편을 만나 큰소리 ‘땅땅’ 치며 사는 인생이다. 지금까지 못마땅한 사람들을 만나면 속으로 욕을 할지언정, 겉으로는 웃으며 화합을 자처했다. 그러니 인생의 투쟁을 자처하는 ‘혁명가’는 당연히 아니었다. 그저 앞서 나가는 사람들 뒤를 따르며 조용히 내 삶을 살았다.


사실, 이런 평범한 인생 때문에 어린 시절에 막연히 동경했던 소설가의 꿈도 포기했다. 그 당시 생각했던 소설가의 자질에는 아주 특별하고 기이한 경험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드라마틱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가출도 여러 번 경험하고 호되게 반항해서 엄청나게 맞아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인생의 쓴맛, 단맛, 매운맛, 단맛을 모두 겪은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특별한 글, 그런 눈부신 글의 최고봉이 바로 소설이었다. 하지만 그런 글을 쓰기에는 내 경험은 너무 미천했고, 상상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아이들을 키우며, 요 녀석들에게 동화나 청소년 소설을 읽히고 싶다는 심정으로 다시 글쓰기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미 성장했고 글과는 너무 멀리 떨어진 삶을 살고 있었다, 가끔 엄마가 끼적거린 초고의 작품들을 대충 훑어보며 ‘좋아요’라는 말만 슬쩍 던지고 다시 게임 속으로 푹 빠져들었다.


모든 사람의 이야기는 특별하고 독특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친구들과 지인들과, 동료들과 나누는 뒷담화는 쫄깃쫄깃하고 씹을수록 맛있다. 하지만, 평범한 내 인생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지루한 제목만 보고 제일 먼저 저쪽으로 던져버리는 그런 책이 되지 않을지, 걱정이 많다. 아, 무슨 에세이를 쓰지? 모르겠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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