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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Sep 01. 2022

나는 무엇이 불안한 걸까?

 아주 오랜만에 둘째를 혼냈다. 그동안 이런저런 부모교육을 받으면서 배웠던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되는 금지 사항을 두 개나 어겨버렸다. 첫째는 아이의 긍정적인 컨디션을 위해 아침에는 절대로 혼내지 말기, 그리고 둘째, 잔소리는 그 상황의 일만 혼내기, 이 두 가지이다.


 여느 아침과 마찬가지로 중3 둘째는 식탁에 앉아 핸드폰의 게임 방송을 쳐다보며 아침을 먹는 중이었다. 바쁘게 이것저것 챙기는 도중, 문득 나는 어젯밤 아들이 부탁한 것이 생각나 미리 보내 두었으니 카카오톡을 지금 확인해 보라고 했다. 그런데 아들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게임 속 세상에만 몰두해 있었다. 간간이 “네, 네”라는 말만 던지면서 말이다. 그 모습을 본 난 화가 났고 아침부터 잔소리해 댔다.


 아침의 그 상황만 가지고 야단을 치고 훈계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난 무엇이 그렇게 불안했던 걸까? 멀뚱멀뚱 쳐다보는 아직 중3인 녀석에게 ‘그렇게’ 매일 게임만 쳐다보고, ‘그렇게’ 시간 날 때마다 유튜브만 시청해서는 고등학교에 가서 어떻게 할 거냐고 소리쳤다. 어쩌면 둘째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 일 이야기들,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이야기들을 그 순간에는 왜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까? 결국 둘째는 한껏 시무룩한 얼굴로 집을 나섰고,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나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학교 잘 다녀와’라고 말했다.


 이제 고입 원서를 앞둔 요즘, 앞일을 생각하지 않고 여전히 게임과 유튜브에 열중하는 둘째를 볼 때면 자꾸만 불안이 밀려온다. 솔직히 그 녀석의 미래에 무엇이 펼쳐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쓰라렸던 내 경험을 비추어 보고, 과거의 모습을 자책하며 많이 힘들어하던 주변의 고등학생들의 모습을 상기하며 둘째는 그런 우울한 미래를 맞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순간순간 던지는 내 잔소리, 꾸지람만으로 해결이 될까?


 일반적으로 대한민국 교육계, 특히 사교육 세계를 휘어잡고 있는 것은 ‘불안 마케팅’이다. 아이들이 입시와는 관련이 없는 초등학교 때는 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다가 중학교, 고등학교로 가면서 그 힘을 서서히 넓혀 간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에 이르면 절정을 이루다 아이들의 대학 입학을 기점으로 그 기세는 확 줄어든다. 아주 놀라울 정도로 말이다. 이미 그 험난한 입시 전쟁을 치른 엄마들은 저마다 외친다. “고3? 별거 아니야. 아이가 하기 나름이지. 엄마가 할 것은 별로 없어.” 하지만 그 대입 고지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는 아이들, 엄마들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은 말이다. 지금 내가 하는 한마디, 행동이 아이의 미래를 바꿀지도 모른다는데, 가만히 넋 놓고만 있을 엄마가 어디 있을까? 어떻게든 아이를 책상에 앉히고 공부를 시키고 싶은 엄마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물론, 대학입시 그 이후의 미래를 바라보는 엄마들은 좀 남다를 수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적성을 찾아주고, 느긋하게 기다려 준다. 그러나 이 역시도 아이가 어떤 분야에 있어서 특별한 재능을 보이거나 그것으로 먹고살 만한 열정을 나타낼 때 가능한 이야기다. 이도 저도 없는 듯한 아이를 보는 보통 엄마의 입장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을 쓸어내린다. '여기까지 안 하면 고등학교 때 힘들다더라', '이 정도는 해야  대학은 갈 수 있다더라', 아이의 학년이 높아질수록 점점 힘을 불려 가는 불안 마케팅에 매번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내가 이렇게 불안한 미래에 마음을 옹졸이며 아이들을 다그치는 엄마가 될 줄을 상상도 못 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어떤 행동을 해도, 어떤 말을 해도 손뼉 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엄마였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바꿔놓은 걸까? 그저 시간이 흐르는 데로, 아이들이 하는 데로 맡겨두기만 해도 될까?  내년에 맞이할 큰 애의 고3, 둘째의 고1이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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