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사건은 수업할 책을 학교에 두고 온 것에서 시작되었다. 어제도 평소와 비슷하게 수업을 끝냈다. 여느 때와 다른 점이라곤 바로 다음 시간이 다른 수업이라 재빨리 정리하고 나와야 했던 점이었다. 노트북과 소지품을 챙기고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며 집으로 오던 중이었다. 그때 난 멜론에 저장해 두었던 MSG 워너비의 ‘듣고 싶을까’를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낮에는 더웠지만, 유달리 오후 바람은 시원하다고 생각하며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툭 든 생각, ‘내가 책을 챙겨 왔던가?’ 왜 불쑥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메고 다니는 회색 노트북 가방의 부피가 유달리 홀쭉해 보였는지, 아니면 그 중량감이 몇 그램 정도 가볍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공공장소에서 정신없이 노트북 가방을 뒤졌다. 결국 학교에서 50분 정도 벗어난 지하철 한복판에서 책을 두고 온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그 책은 수업하는 다음 주에 가서 다시 찾아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틀 후 다른 학교에서 똑같은 책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고민하다 핸드폰 앱을 꺼내 들고 다시 한번 그 책을 주문했다. 온라인 서점의 책들을 검색하다 보니 읽고 싶은 다른 책들을 눈에 띄어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집어넣어 주문 버튼을 눌렀다. ‘총알 배송, 당일 배송’이라는 서점의 광고 문구를 믿으며 가뿐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내심 ‘요즘 참 세상이 좋아졌다’라고 흡족해하면서 말이다.
다음 날 아침, 핸드폰으로 도착한 문자를 보고 낙담했다. 온라인 서점의 배송일 변경 문자였는데, 책이 원래 예정일이 아닌 다음 날 도착한다는 내용이었다. 고객 센터에 전화 걸어 따져 봤지만, 이미 출고가 되어 그 책만 따로 배송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고민하다 다시 다른 서점으로 그 책만 서둘러 ‘새벽 로켓 배송’으로 따로 주문했다. 애초에 책을 학교에 두고 온 부주의함과 미리 알아채지 못한 내 어리석음을 탓하며 분노의 마음으로 다시 한번 더 결제했다.
주문 결제의 마지막 단계, 새벽 배송을 위해 아파트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입력할 차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몇 가지 숫자들이 머릿속에서 오갔지만, 이 숫자가 맞는지, 저 숫자가 맞는지 너무 헷갈렸다. 갑자기 울컥 솟아올랐던 화가 스르르 가라앉으며 차가운 불안감이 엄습했다. 왜 생각이 안 나지? 한참을 고민하다 남편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우리 아파트 공동현관 비밀번호가 뭐지?”
뜻밖의 문자에 남편 역시 당황해하며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결국 남편의 도움을 받고서야 겨우 책 주문을 끝낼 수 있었다.
책 분실에서 시작되었던 일련의 일들, 진짜 별거 아닌 사건이었고 누구나 한 번쯤은 겪을 수 있는 촌극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런 일들을 ‘피식’ 웃으며 간단히 지나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사실, 어제 책을 놓고 온 사실을 알았을 때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같은 책을 주문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돈이 아깝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좋은 책이라 친구들에게 선물을 해야지 하는 너그러운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책 분실의 일이 ‘나비효과’처럼 점점 커져서 ‘아파트 비밀번호 분실’까지 진행되었을 때는 두려움이 덜컥 밀려왔다. 혹 이 일이 치매의 시초는 아닐까? 너무 건강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나? 몇 년 전 보았던 영화 속의 여주인공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가족들을 모두 잊어버렸던 장면들이 눈에서 아른거렸다. 영화 속 슬픈 장면들은 불안과 함께 내 머릿속에서 몸집을 키웠다. 상상은 부풀고 부풀어서 나는 가족들을 잊어버리고 겁에 질린 채 울고 있는 영화 속 여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핸드폰과 전자키만 의존했던 나 자신을 원망했고 부주의했던 과거의 나를 다그쳤다.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짧은 순간, 분노와 걱정, 불안과 같은 수많은 감정이 무섭게 요동치며 몰아쳤다. 결국 어둑한 우울함이 자리 잡으며 고요해졌다.
아파트 공동현관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을 당시, 떠올렸던 숫자들은 모두 우리 가족과 관련이 있는 의미 있는 숫자들이었다. 가족들의 생일, 전화번호, 남편이랑 처음 만난 날 등등…. 그 모든 숫자를 조합해보며 머릿속으로, 손가락으로 숫자들을 열심히 찾고 있었다. 비밀번호는 그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았다.
결국 알아낸 비밀번호는 그런 의미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숫자였다. 그냥 이사 온 날 기준으로 기분이 내키는 대로 정했던 숫자, 바로 그 숫자가 우리 집 공동현관 번호를 떡하니 10년이 넘게 차지하고 있었다. 이미 머릿속에서는 잊어버렸고 기계적으로 손가락으로 몇 년 동안 눌러댔던 그 숫자들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으로 숫자를 음미하며 번호를 누르지 않는다. 핸드폰의 잠김 패턴을 풀 듯이, 기계적으로, 습관적으로 숫자를 누르고 있다. 가족들에게 전화할 때는 숫자를 누르기보다는 이름을 찾아서 발신을 누른다. 숫자를 하나하나 입력하며 전화를 할 때는 오직 모르는 사람이나 가게에 전화를 전화하는 첫 만남의 순간뿐이다. 누군가의 숫자를 공들여서 입력했던 순간들은 길어지는 시간과 함께 사라지고 이제 머릿속에 기억된 사람들의 정보는 오직 핸드폰에 저장된 별명과 이름뿐이다. 혹, 이번처럼 숫자만을 입력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할 수 있을까?
디지털이 진행된 사회, 빠름을 배달하는 사회, 요즘처럼 숫자와 시간이 중요하게 치부되는 세상도 없다. 수많은 숫자와 기호들 속에서 사람들의 소중한 정보들이 전달된다. ‘숫자’보다는 ‘의미, 정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이번처럼 뜻밖의 사건을 만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기본적인 정보 없이 그다음 활동이 가능할까?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빠르게 변화한다. 바쁘게 속도를 내어 질주하는 세상을 따라가느라 버둥대는 중이다. 새로운 정보를 배우고 익히고…. 그러다 보니 자꾸만 잊어버리고 챙기지 못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요즘은 하나를 익히면 계속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자연스럽게 잊어버리게 된다. 예전처럼 모든 정보를 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지만, 쉽지 않다.
세상의 속도에 맞춰 따라가며 나는 하나를 주워 먹고 또 하나는 덜어낸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머릿속으로 쏟아지는 숱한 정보들에서 내게 의미 있는 것들을 붙들어 본다. 모든 것들은 다 잊어버려도 소중한 것, 의미 있는 것들은 제발 놓치지 말기를. 혹 까먹는 일이 있어서 의미 속에서 숫자를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혹 이러다 또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는 일이 생기며 어떡하지? 모든 비밀번호를 의미 있는 숫자로 바꾸어야 하나? 숫자 하나에, 우리 가족의 추억과, 숫자 둘에 우리 가족의 기념일과, 숫자 셋에 우리 가족의 기억들을 가득 담아 저장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