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련스럽게 착한

by 하늘진주

어렸을 때부터 난 '참 착하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착하다’라는 형용사의 부스러기가 온몸 구석구석 묻어 있는지, 무엇을 말하기만 해도, 어떤 일을 하기만 해도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참 착하다', ‘그렇게 착해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래?’라고 입을 모아서 말하곤 했다. 그런 상황들은 사춘기의 반항이 절정에 달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바뀌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난 후 남편이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한 말도 역시 '착하다'였다.


'착하다'라는 말은 예쁘지만 한편으로는 참 안타까운 의미를 지녔다. 특히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착한 사람들은 영원한 호구로 취급된다. 할 말이 있어도 쉽게 꺼내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치만 보는 그런 류의 인간들,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런 그림이 먼저 떠오른다.


명절이 시작되면 대중매체에서 저마다 친척들이 만났을 때 해서는 안 되는 말 목록을 뽑는다. 일상적인 대화의 소재로 떠올리기 민감한 문제들,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는 문장들, '결혼, 취업, 성적 등'에 관한 말들, 이 모든 것들은 서로에게 금기이다. 안 그래도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을 더 어려운 지경에 몰아넣지 말자는 최소한의 배려이다. 하지만 이런 배려도 흔히 ‘착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인물에게는 지킬 필요가 없는지 너무도 쉽게 질문을 던진다. 개인사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질문들과 행동들, 그럴 때마다 울컥 감정이 올라오곤 하지만,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나와 친하지 않는 사람이 하는 말, 행동은 그다지 상처가 되지 않는다. 그저 귀찮을 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랑하는 가족들이 건네는 뾰족한 말 한 마디, 무심한 행동은 모든 것이 다 상처가 된다.


내 친정이 보통의 친정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난 후였다. 그전까지는 '눈 뜬 장님'마냥 아무 것도 보지도 생각하지도 못했다. 이상적이고 아름다운인 '친정'의 형상만을 머릿속에 넣은 채, 자주 가지 못하는 '우리 집'을 마음속으로만 그렸다. 그냥 “괜찮니?”, “별일 없지?” 간혹 1~2분 안에 끝나는 친정 엄마와의 짧은 통화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몇 년 후 점점 20인분이 넘는 명절의 많은 노동들이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을 때, 명절이 갑자기 버겁고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익숙지 않은 명절 노동으로 허리는 끊어질 듯이 아팠고, 감정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왜 나만 이런 일을 해야 할까?’ 쉴 새 없이 되뇌다 모든 일이 끝나면 서둘러 친정으로 향했다. 차로 10분 거리의 친정은 내게 둘도 없는 천국이었다. 마냥 기대고 싶었고 '일반적인 친정'처럼 투정을 부리고 싶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괜찮다’, ‘별일 없다’라고 말하던 딸의 모습에 익숙해진 친정아버지는 갑자기 ‘힘들다’라고 말하는 내 종알거림을 너무 듣기 싫어하셨다. “기껏해야 일 년에 2번 와서 노동하는 것이 뭐가 힘들다”라며 역정을 내셨고, 얼른 다시 시댁으로 돌아가라고 호통을 치셨다. 결혼 이후 당신이 농담처럼 ‘딸은 결혼하면 출가외인’이라고 건네던 말을 행동으로 표현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거역한 올해 2월 이후, 그분은 지금까지 나를 자신의 딸이 아닌 남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런 연휴로 이번 추석에는 친정의 문턱을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아이들이 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와 문밖에서 인사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채 차에 올랐다. 나는 감정이 북받쳐 얼굴을 가리며 울었고, 친정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지 못한 채 인사를 제대로 받아주지 않았다고 뒤늦게 화를 내며 사위에게 전화하셨다.


모든 것은 무엇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친정어머니는 항상 내게 전화를 하면 동생들의 안부부터 상세히 물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다 통화 말미에야 “너는 별일 없니?”라고 이야기했다. 다른 상황들로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별일 없어요.” 그 외에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친정아버지가 내 행동 때문에 사위에게 화를 내며 전화한 날, 나 역시도 친정어머니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감정을 토로했다. 말하지 않는다고 모든 일이 괜찮은 것은 아니라고. ‘괜찮다’라는 말 몸속에는 ‘힘들다’라는 수백만의 아픔이 숨겨져 있었다고 말이다. 단지 장녀라서, 이미 다른 일로 속상해 할 ‘엄마’한데 더한 아픔을 짊어지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이다.


나는 미련할 만큼 착하다. 그래서 가끔 그런 나 자신이 너무도 밉다. 자꾸만 다른 사람들의 상황을 헤아리며 나 자신을 더 힘들게 하는 모습이 너무 싫다. 이제는 좀 더 ‘나쁘게’ 살고 싶다. 나를 좀 더 챙기고 가꾸고, 더는 남을 나보다 더 헤아리고 싶지 않다. ‘호의를 권리로 받아들이는 세상’에서는 좀 못되게 살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2년 한가위를 앞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