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일요일 내내 흐리고 비가 왔다. 어젯밤부터는 강한 바람과 함께 빗줄기도 제법 굵어져 태풍이 몸을 불려 내 앞에 금방이라도 와닿을 기세다. ‘오늘은 긴 우산을 쓰고 갈까?’, ‘신발은 어떤 것을 신고 가지?’ 이런저런 나갈 준비를 하면서도 지금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며칠이 지나면 시작될 추석이다. 그 생각들이 오로지 오랜만에 만나 뵐 친척들, 시부모님들, 친정 부모님들 만나 뵐 마음으로 들뜬 기분이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나 역시도 어쩔 수 없는 명절 음식을 할 걱정으로 스트레스 가득한 보통의 ‘대한민국 주부’다.
처음 태풍 ‘힌남노’가 추석이 시작되는 주에 온다는 것을 알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두 가지였다. 직접적인 태풍 영향권에 드는 부모님 지역에 대한 걱정과 추석 이틀 전에 미리 부모님 댁에 들렀다 간다는 형님네 가족 생각이었다. 남편에게 슬며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을 건넸다. “태풍이 온다는 데, 형님네도 미리 가시기는 어렵겠다. 그렇지? 그러면 추석 때쯤 오시려나?” 그러자 남편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그때는 태풍도 물러간 뒤라 별문제가 없을 거야. 아마 원래 일정 때문에 움직이실걸?”
사실 형님네가 추석 전에 미리 들러 부모님을 뵙든, 나중에 뵙든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명절이 아니라면 큰 이야깃거리도 아니다. 어차피 부모님 방문하는 것은 각자의 일정에 따라 언제든 바꿀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되면 명절 때 일한 노동력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내가 시집을 온 이후 어머님은 항상 ‘큰 손’을 자랑하시면 ‘아들들, 손자들’을 먹이기 위해 음식 재료들을 듬뿍 마련해 놓으셨다. 사실 장정 5형제를 키우셨으니 그 정도는 기본적으로 음식을 해야 다 한입씩 먹을 수 있었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형님들이 명절 전에 같이 와서 허리를 조아리며 음식을 했다. 그때는 형님들과 거의 20~30분의 명절 음식 하기가 좀 힘들었지만 그래도 할 만했다. 게다가 나는 서열상 막내여서 눈치를 보며 심부름을 하거나 재료 손질, 설거지하면 되었기에 큰 부담이 없었다. 어쩌다 직접 전을 부치는 임무를 받아도 형님들 네 분과 나눠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하며 그 많은 전 부치기도 뚝딱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노릇인지 형님들이 한 분 두 분, 아이들의 입시 핑계, 다른 일들을 핑계 대며 명절 오는 일정들이 달라지면서 점점 힘들어졌다. 어떤 형님은 아이가 고등학생이라는 핑계로 몇 년째 아주버님과 둘째만 보내기도 하고, 어떤 형님은 명절 당일에 도착해서 인사만 지내고 가 버리기도 했다. 어머님의 음식 재료를 점점 줄지 않는데, 같이 일할 형님들은 오지 않아 그 일거리는 모두 우리 가족들의 차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착한 효자’인 남편과 입시에 부담 없는 학년이었던 우리 아이들 덕분에 항상 명절보다 훨씬 일찍 시댁에 도착했다. 그 음식 재료 앞에서 아등바등하시는 어머님을 도와 전을 굽고 나물을 무치고 나면 형님들 가족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동서, 수고했다”라며 칭찬을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 칭찬들이 고이 들리지 않았다.
드디어 올해는 나도 ‘고등학생 수험생 엄마’라는 타이틀로, 명절의 노동에서 벗어나나 싶었는데, 반갑지 않은 형님들의 소식이 하나둘 들려왔다. 한 형님은 아주버님이 아파서 못 오시고, 또 다른 형님은 이번에도 역시 일찍 내려갔다 인사만 드리고 명절 전에 올라오신다고 한다. 또 다른 형님은 미리 전화를 걸어 언제 내려오냐고 물어보신다. 형님은 다른 일정이 있어 추석 당일에 잠깐 얼굴을 볼 수 있을 거라며 말이다. 어머님은 분명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준비 하나도 안 했다”라며 이야기하실 테지만, 내심 안다. 부엌 곳곳에, 장독대 곳곳에 놓인 것은 산더미 같은 나물거리며, 전, 산적 재료들이다. 어쩌면 올해도 우리 가족들은 ‘빨리 오지 않는 형님네 가족들’에 대해 툴툴거리며 기름내를 마음껏 맡으며 전을 부칠지도 모른다.
이런 상상을 하니 갑자기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지난주 내내 ‘성난 곰’처럼 계속 인상을 찌푸리고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인 남편에게 신경질을 냈다. 그런 나를 본 남편이 내 기분을 눈치챈 양 다시 묻는다. “그러면 추석 당일에 내려갔다가 그다음 날에 올라올까?”라고 말이다. 겉으로는 아닌 척했지만, 남편의 제안이 꽤 솔깃하다.
한편으로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하는 일들 때문에 화가 내는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다. 미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고, 실제로 시댁에 가면 요리할 재료며, 노동량이 전에 비해 적을 수 있는데, 난 왜 미리 화부터 내고 있을까? 으레, 명절을 앞둔 주부라면 이렇게 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올해 추석 때문에 내가 마음이 불편한 것은 그 명절의 노동이기보다는 추석 이후 있을 스케줄들을 잘 준비 못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면서 말이다. 또 명절 때 일하는 것이 힘들기보다는 ‘나 혼자’만 일하고 개인 일정을 핑계 삼아 당당할 수 없는 소심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나는 거면서 말이다. ‘원래 명절은 그래’, ‘으레 주부는 스트레스받아’라는 마음속에 내 본심을 숨겨 두었다. 사실은 그게 아니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