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서점과 다시 하이 파이브, 할 수 있을까?
우리 동네 서점에 안 가본 지 몇 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간혹 동네 서점을 들르는 날은 미리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지 못해 ‘아주 급하게’ 책을 사야 할 경우, 그것도 아이들 문제집 외에는 사 본 적이 없다. 느긋하게 서점에 들러서 책 매대에 쌓인 신간들을 훑어보고 빈자리에 널브러져 마음에 드는 책을 읽은 적이 언제였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이들의 문제집들만 가득가득 쌓아둔 서점 주인에게 하소연해야 할지, 느긋하게 동네 서점의 책들을 둘러볼 여유가 없는 나를 탓해야 할지 할 수 없다.
솔직히 요즘 내가 즐겨보는 책들이 내 취향인지, 인터넷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의한 선택인지 알 수 없다. 딱딱한 컴퓨터 화면, 혹은 핸드폰 화면 너머로 보이는 책들을 꼼꼼히 살펴보려고 해도 이리저리 뒤적이며 훑어볼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서점에서 ‘미리 보기’로 제공하는 책 정보들은 너무 아쉬울 정도로 적다. 실제로 그 책들이 내 손에 들어오기 전까지 어떤 내용인지 파악하기조차 힘들다. 그래서 매번 인터넷 서점의 MD나 책 리뷰, 서평에만 의존해서 책을 구매할 수밖에 없다. 오직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취향에만 의존하는 책 선택, 이것은 오로지 나의 잘못이다. 모든 것이 바로 내가 동네 서점을 멀리하면서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예전에는 취향에 맞는 책을 고르기 위해서 시간과 품을 많이 들였다. 여유 있는 시간이 생기면 무조건 서점을 향했다. 처음 서점 문을 들어서서 관심이 없는 책이 쌓여 있는 매대부터 좋아하는 책들이 꽂혀 있는 책꽂이까지 한 바퀴 돌다 보며 두 시간이 훌쩍 넘었다. 매번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책들을 가득 쌓아 놓고 정신없이 읽었다. 그러다 지갑 사정에 맞게 겨우 몇 권을 들고일어나면 아쉬움에 한숨부터 나왔다. ‘이 책도 읽어야 하고, 저 책도 꼭 필요한데….’ 어차피 모든 책을 다 사도 읽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돌아오는 내내 두고 온 책들이 아른거렸다. 매번 동네 서점을 들를 때면 미련이 많은 전 애인처럼 한동안 좋아하는 책 주위를 서성거렸던 나였다.
그러다 책 가격을 대폭 할인해 준다는 인터넷 서점을 만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부자’의 느낌을 누리기 시작한 것이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사고 싶은 책들을 모두 사도 동네 서점 책들의 ‘반값’이 안됐다. 게다가 서점에서 제공하는 화려한 사은품과 ‘포인트’까지 차곡차곡 쌓이니 금상첨화였다. 미련스레 동네 서점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파는 것보다 인터넷 서점에서 클릭 한 번으로 결제와 배송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예전의 미련이 가득한 ‘책 애인’이 아닌 클릭 한 번으로 미련을 싹 지울 수 있는 ‘도도한 책 애인’의 탄생이었다. 두고 온 책에 대한 미련도 없었고, 갖고 싶은 책은 언제든 가질 수 있었다. 또 구매한 책이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들 환불이 가능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자본주의의 언저리에서 한동안 ‘책 부자’의 기분 가득 누렸다.
그러다 ‘도서정가제’가 실시되면서 인터넷 서점의 책 가격과 동네 서점의 책 가격이 차이가 없어졌다. 동네에서 책을 사든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든 이제는 상관이 없지만, 난 여전히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산다. 책을 차근차근 톺아보며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는 가장 큰 이유다. ‘클릭 한번’으로 모든 것이 간편하게 해결된다는 경험을 하고 난 후, 무언가를 위해서 시간을 내기가 너무 어려워져 버렸다. 인터넷 장바구니에 가득한 책들이 내 취향보다 다른 사람들의 리뷰와 책 판매량으로 선택된 것임을 너무도 잘 알지만, 인제 와서 책 구매 방법을 바꾸기가 너무 어렵다.
아니, 어려운 걸까? 아니면 하기 싫은 걸까?
‘바쁜 현대사회에서 이게 뭐 어때서?’라며 반박을 하고 싶다가도 잠자코 입을 다문다. 다시 동네 서점으로 들른다면 책을 고르는 그때의 그 여유와 향수를 누릴 수 있을까? 너무 변해 버린 동네 서점, 그리고 그 변화를 자초했던 고객 중 하나였던 나, 이제 와서 다시 동네 서점과 ‘하이 파이브’하며 잘 지내자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