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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을 허용하다

by 하늘진주

매일 새벽마다 산책하러 가는 공원은 지은 지 1년밖에 안 된 곳이다. 주변 동네의 다른 오래된 공원과 달리 깨끗하고 잘 정리된 모습이 마음에 들어 요사이 자주 찾았다. 며칠 새 비가 촉촉이 내려 공원 안의 나무며 풀, 꽃들이 한층 습기를 머금었다. ‘톡’ 치면 각각의 촉촉한 색들이 손끝에 잔뜩 묻어날 것처럼 파릇파릇한 생명력이 가을의 공원을 곱게 수놓았다. 게다가 이곳은 매일 공원 관리자가 열심히 가꾸고 관리를 하는 탓인지 들를 때마다 쓰레기 하나 없었다.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잘 정돈된 공원의 아침을 바라보며 구김 없는 저마다의 오늘 하루를 계획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산책에서는 반듯하게 잘 정리된 보드 블록 위로 어제까지는 눈치채지 못했던 초라한 풀 하나가 불쑥 솟아 있는 것이 보았다. 조금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풀은 그 비좁은 보도블록 틈새로 용케 자리를 잡은 눈치였다. 제 보금자리를 잡으려면 좀 예쁘게 잡던지, 엉기성기 참 어설프게 뿌리만 삐죽 내린 모양새였다. 쓰레기 하나, 먼지 한 톨이 없이 반들반들하게 빛나는 하얀 보드 블록 위의 저런 잡초라니…. 그랬다. 그 순간, 그 풀은 꼭 잘 정돈된 공원 환경을 망가뜨리는 잡초로 보였다.


‘저걸 뽑아야 하나? 아니면 모른 척 두어야 하나?’

바람에 조금씩 하늘거리는 잡초를 보고 있자니 ‘뽑을까? 말까?’ 자꾸만 손가락이 꿈질거렸다. 공원 설계자의 정확한 계산으로 짜인 질서 정연한 보드 블록 위에서 뜬금없이 자신의 왕성한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 저 풀은 이상한 이방인이었다. 지금 당장 저 잡초를 뽑아버려도 누구 하나 신경을 쓰지 않을 하찮은 존재였다. 차라리 저 잡초가 생각을 조금만 달리해 다른 많은 풀처럼 나무들 귀퉁이에 얌전히 자리를 잡았으면 조금이라도 눈총을 덜 받았을 터였다. 괜히 잡초는 인간이 잘 가꾼 보드 블록 위에 자리를 잡아서 지나는 뭇사람들의 눈 흘김을 한꺼번에 당하고 있었다.


미련한 잡초를 들여다보며 혼자 한참을 멈춰서 구시렁거렸다. 그러다 문득 보드 블록 너머에 나무 옆 귀퉁이에 자리 잡은 또 다른 풀들이 보였다. 사람들이 허용한 범위에서 얌전하게 자리를 잡은 식물들이다. 그 풀들과 그 잡초의 거리는 1m도 채 안 되는 짧은 거리였다. 똑같은 색깔, 비슷하게 하늘거리는 몸짓, 풀들은 형제처럼 닮아 있었다. 그런데도 왜 나는 보드 블록 위의 풀은 ‘잡초’라고 부르며 눈에 거슬려하고, 보드 블록 바깥의 풀을 ‘자연의 선물’이라며 마음 편히 바라보는 걸까? 다른 점이라곤 보드 블록 위에 있고 없고의 차이일 뿐인데 말이다. 오직 저 풀이 사람이 가꾸고 만들어 놓은 영역에 감히 발을 디뎠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못마땅하게 여겨도 되는 걸까? 만일 그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몇 년 전 제주도의 사려니숲길을 가족들과 함께 걸은 적이 있다. 거대한 숲길 양쪽을 따라 서어나무, 때죽나무, 편백나무, 삼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자리 잡고 있었다. 빽빽한 숲길에서 남 나무들이 저마다 뿜어내는 청정한 공기를 마시며 숲을 거닐다 보면 지금까지 쌓였던 모든 스트레스와 불안들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 숲에서도 울퉁불퉁한 황토색 흙길을 따라 다양한 풀들,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있었다. 흙길에 곳곳에 자리 잡은 풀을 보면서 한 번도 ‘잡초’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았다. 사려니숲길 곳곳에 피어있는 풀은 잡초가 아니라 아름다운 숲 풍경을 완성하는 무대장치였다. 오히려 ‘나’라는 인간이 그곳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잡초’와 같은 존재였다. 나무와 꽃과 풀들이 이루어 놓은 평화로운 세상에 불쑥 나타난 시끄럽게 떠드는 오만한 덩어리 말이다.


무엇인가를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누가 결정하는 걸까? 지금까지 공원은 오직 인간만이 이용할 수 있다 믿었다. 공원을 이루는 새, 나무, 풀들은 인간의 마음을 흡족시키는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틈새에 파고든 자연의 손짓, 생명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순간 부끄러움이 확 밀려왔다.


손부채질로 두 뺨의 열기를 식히며 보드 블록 위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 잡초는 사려니숲에서 보았던 풀들처럼 강한 생명력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그이는 차가운 사각 돌의 비좁은 틈새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의지를 옹골지게 풍기며 바람결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 이곳에 무사히 자리 잡은 넌 잡초가 아니라, 풀이었구나.’ 이름부터 시원한 바람이 풍기는 풀. 오늘도 내일도 이 친구가 무사히 잘 살아 있기를 바라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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