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 선생님과 다르니까”
자꾸만 어떤 문장이 머릿속에서 흐느적거리며 빙글빙글 돌고 있다. 이 말은 얼마 전 내 수업 보강을 해 준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수업에 들어가자마자 했다는 문장이다. 이미 잡혀 있는 수업 스케줄 때문에 수업 한 시간을 서로 바꿔서 들어가기로 한 터였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이 말을 ‘굳이 왜 학생들에게 했을까?’라는 의문부터 평소 그 선생님은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사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며 그 배우들의 억양과 연기, 표정에 대해 신랄하게 비평을 해대지만, 실제 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이 사람이 어떻고, 저 사람이 어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너무 피곤하다. 물론 어떤 사람 때문에 너무 화가 났을 때는 종종 그 사람의 험담을 하긴 한다. 아주 친한 사람들 앞에서만 몰래몰래 말이다. 그마저도 없으면 ‘세상살이가 너무 고달프다’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인정한다. 별로 좋지 않은 습관이라는 것을. 그렇지만, 만나는 선생님들의 수업 방식, 진행방식에 대해서는 대부분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인다. 저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서 얼마나 힘들게 고민했을지 잘 아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이미 나와 여러 차시를 만난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강조하고 싶었을까?
솔직히 인정한다. 난 흔히 말하는 ‘호랑이 선생님’이 아니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보면 혼을 내기보다는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들어서 먼저 공감해 주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 어떤 면에서는 ‘좋은 사람’인 선생님이지만, 시끄럽게 떠들고 제멋대로 구는 학생들 앞에서는 ‘호구’인 선생님일 수 도 있다. 이런 성향은 여러 학생들이 모인 ‘정글’인 학교에서는 어쩌면 굉장히 힘들 수 있다. 그래서 그 선생님은 미리부터 학생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이미지를 부각하고자, ‘언제든 군기를 잡을 수 있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선생님, 유머가 넘치는 선생님,
사실, 예전에는 이런 선생님 모습을 꿈꿨다. 솔직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학창 시절의 선생님들의 모습은 그다지 없다. 항상 학생들의 군기를 잡았고 가끔은 ‘몽둥이’를 들고 단체 기합을 했다. 여중, 여고를 나왔는데도 그곳에서의 선생님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딱딱했고 엄했다. 그래야 학생들을 잘 다스리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은 것처럼 말이다. 지금처럼 학생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는 분위기는 절대로 아니었다. 혹 나에게도 그런 선생님이 한 분이라도 있었다면 내 학창 시절은 좀 달라졌을까?
“나는 **과 다르다” 는 말은 ‘그 선생님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는 말일 수도 있고, 어쩌면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점’을 언급하고 했던 말일 수 있다. 얼핏 보면 이 문장의 의미가 비슷해 보이지만 완연히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 번째 문장의 의미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나온 말이고, 두 번째 문장은 ‘나’라는 존재를 강조하고자 한 말이다. 그 선생님은 이 두 가지 의미를 다 강조하기 위해 쓴 말일 것이다. 한창 다루기 힘든 중학생들이라 어떻게든 분위기를 ‘확’ 쥐어 잡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어떤 길을 하고 싶을까? 요즘은 새벽 산책길에 이런 질문을 많이 던진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세상, 시간들, 저마다 가꿔 나가는 인생의 모습은 다른 듯 비슷하다. 힘들어했던 일들, 기뻐했던 일들, 좋아하는 일들, 그 모든 것이 다르지 않고 비슷하다. 아주 ‘사소한 것’들만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비슷한 상황에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대하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람을 가지고 대하는 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얼마 전 ‘유키즈 온더 블록’에 나온 배우 박은빈은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해 내야죠.”라고 말한다고 한다. 그녀의 말속에 어떤 일을 겪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최선을 다해서, 마음을 다해서 대하겠다는 의지가 숨겨져 있다. 나 역시도 그렇게 살고 있을까? 회피하고 미워하고 도망치고, 어떨 때는 하루 종일 내가 만든 내면의 얼음 속에 쳐 박혀 있은 적이 없었을까?
“그렇지만 어쩌겠나? 해 내야지.”
이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며 내면의 얼음들을 조금씩 쪼개 본다. 눈앞에 보이는 장애물들, 그 앞에서 자꾸만 부정적인 말의 얼음들, 아주 조금씩 조금씩. 언젠가는 커다란 도끼로 모든 내면을 깨고 자유롭게 날아오를 날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