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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Oct 26. 2022

때로는 글을 계속 쓰는 용기가 필요하다

 같이 에세이를 쓰는 단톡방에서 뜻밖의 소식이 들렸다. 올해 동서문학상 수필 부분에 나와 다른 문우가 당선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당시에는 그날의 수업 준비로 정신이 없었기에 덤덤히 그 소식을 넘겼다. 나중에 바쁜 일이 끝나고 생각해 보니 3000편이 넘는 응모 수필 중에서 내 수필이 선택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무척 기뻤다. 그래서 이곳저곳, 가족, 친구들, 아는 지인에게 소식을 전하며 마구 ‘자랑질’을 해댔다. 하루 동안 오직 내 기분에 취해 하늘 위로 붕붕 날아다니듯이 걸어 다녔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큰 상도 아니었고, 그저 작은 상 하나 받은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하루아침에 이렇게 글 쓰는 기분이 달라질 수 있다니, 참 놀라웠다.


 사실 이번에 당선된 수필은 평소에 느꼈던 글쓰기에 대한 수많은 고민이 담긴 글이었다. 같이 동화를 창작하는 문우들의 공모전 수상 소식, 그런 그들을 향해 느끼는 나의 열등감, 바쁜 생업으로 점점 도태되어 현실과 타협하는 나의 모습, 그런데도 글을 계속 써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알알이 박혀 있던 글이었다. 글을 쓰겠다고 선언한 뒤 바라본 글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길게 늘어진 글 쓰는 세상의 계단 일층에는 나처럼 글을 쓰겠다는 사람들이 다닥다닥 몰려 있었다. 그리고 이층, 삼층을 오를 때마다 글에 대한 고민과 열정으로 사람들은 쉼과 전진을 거듭하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몇 층 일지 모르는 높다란 그 꼭대기 층에 오를 수 있는 사람들은 오직 소수일 뿐이었다. 글쓰기에 대한 수많은 걱정과 고민, 자신의 글쓰기 재능에 대한 자기회의를 벗어던진 사람들만이 초연한 얼굴로 글을 쓸 수 있었다. 모든 시간과 노력을 오로지 글에만 바친 채 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 어떻게 보면 정말 대단한 일이요,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니다. 그래서 종종 글쓰기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해야 할지 참 고민스럽다. 엄청나게 문학적으로 뛰어난 글, 한 단어만 읽어도 소름이 끼치게 멋진 글, 사실 그런 글들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 우리가 읽는 대부분 글은 모두 독자의 취향에 달린 것이라 아무리 재미있게 읽었던 대단한 문학가의 글도 다른 사람에게는 지루하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오히려 소박하게 담담히 적어 내려간 평범한 촌부의 글이 더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래서 글이란 게 참 어렵다. 누군가에게 대단한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분리수거해야 할 재활용 쓰레기로 취급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글을 계속 쓰기 위해서는 남다른 마음과 용기가 필요하다. 바쁜 생업에도 놓지 않고 글을 쓰겠다는 마음, ‘나에게 재능이 있을까?’, ‘나의 글을 다른 사람들이 읽어줄까?’라는 자기 회의에 빠지더라도 ‘현실의 포기’에 타협하지 말고 빠져나올 수 있는 용기가 말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런 마음과 용기가 아닐까 싶다.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오헨리 단편의 <경찰관과 찬송가>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추운 겨울을 ‘섬’이라고 불리는 블랙웰 교도소에서 따뜻하게 보내고 싶었던 주인공 소피는 감옥에 갈만한 이런저런 일들을 구상한다. 그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시키고는 한 푼도 안 내고 경찰관에게 인계되는 계획, 하지만 이 일은 레스토랑 문턱을 넘어서기도 전에 초라한 입성으로 수석 웨이터에게 쫓겨난다. 조약돌을 집어 들어 유리창을 깨는 일, 소박한 레스토랑에 들어가 이것저것 시켜 먹고 ‘배 째라’라는 식으로 난동 부리기, 비열하고 혐오스러운 난봉꾼처럼 굴기 등등 감옥에 갈만한 여러 가지 일을 저지르지만, 그는 끝내 감옥으로 가지 못한다. 그러다 모든 것을 포기한 소피가 오래된 교회를 지나던 중, 찬송가를 듣는다. 그 숭고한 노랫가락에 감동한 그는 다시 잘살아 보리라 결심한다. 바로 그 순간, 소피는 붙잡힌다. 경찰관은 이제는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은’ 그를 붙잡아 치안판사에게 넘긴다. 정말로 원하지 않았던 그 순간에, 소피는 ‘섬에서 금고 삼 개월’ 형을 받는다.


 올해 동서문학상 수필 부문에 글을 응모할 때는 소피와 같은 심정이었다. 글 쓰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에 지쳐서, 나의 재능에 자신이 없어서, 생업과 다른 일들로 바쁜 와중에 ‘글을 계속 쓸 수 있을까?’라는 불안으로 그 글을 썼다. 그리고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온라인으로 원고를 던지듯이 투고하고는 한동안 그 사실을 잊고 지냈다. <경찰관과 찬송가>의 소피처럼, 뭐라도 해 보고 싶었고, 도전해서 안 좋은 결과가 나온 들 아쉬운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소피의 상황과는 다르게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은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항상 그랬다. 이런 ‘무대포’ 정신으로 도전해서 얻은 일이 많다. 브런치 작가로서 글을 계속 쓸 수 있었고 뜻밖의 수상을 받았고, 평생 같이 갈 수 있는 문우들을 만났다. 그저 ‘에라 모르겠다’라고 툭 던진 도전들이 말이다.


 글쓰기를 지속한다는 것,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니고, 어떻게 보면 대단한 일이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 중에서 이것만은 분명하다. 글을 쓰는 것은 내 주변의 모든 일을 글 속에 기록하는 일이다. 일상의 한 장면을 잡아서 글을 쓰면, 쉽게 왔다가 빨리 잊힐 수 있는 평범한 하루의 일상들이 소중하게 박제된다. 화려하게 반짝이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만큼 유명하지 않아도 일상들이 글 속에서 아름답게 빛날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선 주인공인 것처럼, 우리 역시 스쳐 가는 평범한 일상을 배경으로 울고 웃는 주인공이다. 글을 쓰면 그 모든 환상적인 마법이 가능하다. 글을 쓴다는 것, 용기를 내 글을 쓴다는 것은 나태한 일상을 벗어나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기 위한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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