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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Nov 09. 2022

고등학생 친구들과 함께 읽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요즘 오산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고1, 2 친구들과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으로 5차시 독서토론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늘로써 3차시 수업을 시작할 참이니 그래도 친구들과 그럭저럭 책 속의 여행을 잘하고 있는 셈이다.


 솔직히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아이들이 한 번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책이다. 아마 이 점은 성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책은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김지수 작가가 나눈 인터뷰 내용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았다. 오랜 암 투병으로 죽음을 옆에 둔 이어령은 사랑, 용서, 종교, 과학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아주 많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래서 분명 좋은 책임은 분명한데, 책 내용을 따라 다보며 이리저리 쏟아지는 대화의 주제들로 머리가 멍해진다.


 저자 김지수는 이어령 선생과의 인터뷰 경험을 이렇게 묘사한다.


 “선생님은 라스트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당신의 지혜를 ‘선물’로 남겨주려 했고, 나는 그의 곁에서 재앙이 아닌 생의 수용으로서 아름답고 불가피한 죽음에 대해 배우고 싶어 했다. (중략) 우리는 사전에 대화의 디테일한 주제를 정해두지 않았고, 그날그날 각자의 머리를 사로잡았던 상념을 꺼내놓았다. 하루치의 대화는 우연과 필연과 황금분할로 고난, 행복, 사랑, 용서, 꿈, 돈, 종교, 죽음, 과학, 영성 등의 주제를 타고 변화무쌍하게 흘러갔다.”(프롤로그에서)


 ‘사전에 대화의 디테일한 주제를 정해두지 않았고, 그날그날 각자의 머리를 사로잡았던 상념들’이 무 하는 글이라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책을 아이들과의 독서 토론 책으로 선정하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 물론 가장 큰 걱정은 ‘아이들이 과연 이 책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으로 올해 마지막 독서토론 수업 책으로 삼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올해, 2022년, 아이들에게 ‘삶과 죽음, 인생’ 등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여러 가지 화두에 대해 생각거리를 주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공부하기도 바쁜데, 다른 거 생각할 여유가 있겠어?’


 ‘어차피 책도 잘 읽어 오지 않을 텐데 그냥 독서 토론하기 편한 책으로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학업에 바쁜 고등학생 친구들과 독서토론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항상 책을 읽어 오는 문제로 작은 소동이 벌어지곤 한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아이들이 다 책을 읽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무리 모범생인 친구들도 시험 준비며 수행평가에 시달리다 보면 종종 책을 다 못 읽었다며 겸연쩍게 웃는 일이 많았다.


 솔직히 처음에는 아이들의 이런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책을 읽지 않고도 독서토론 수업이 가능할까?’하는 생각에 매번 수업 들어가자마자 긴장하며 책을 읽었는지 확인하곤 했다. 종종 이런 의문점이 든다. 나 역시도 ‘책을 읽지 않으면 독서토론 수업이 안 될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아이들이 이런 책을 잘 이해 못 할 것’라는 선입견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프레임에 갇혀 사는지 스스로 깨달아야 해. 어린애 눈으로 보면 직관적으로 알아. ‘어, 이상하다!

 그런데 고정관념의 눈꺼풀이 눈을 덮으면 그게 안 보여. 달콤한 거짓말만 보려고 하지.”(p.98)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그래서인지 요즘은 아이들이 책 읽고 못 읽고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수업 시작 전에 아이들이 정해준 범위까지 책을 읽어왔는지 확인을 한다. 하지만 그건 수업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할지 정하기 위해서이다. 책 내용이 잘 파악이 안 되었다면 책 내용 파악에 좀 더 집중을, 책을 읽어왔다면 좀 더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기 위한 준비를 위해서 말이다. 내 역할은 아이들이 책을 읽어왔는 지, 안 읽어왔는지를 따져 묻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책 내용을 잘 파악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돕는 것이 내 역할이자 의무이다.


 이 책을 잘 읽어오지 않아도,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잘 성장하고 있다. 간간이 던져 주는 작은 힌트와 미션으로 아이들은 내용을 잘 파악하고 자기가 궁금한 것들을 질문으로 녹여낸다.

아이들의 질문으로 만든 토론들
아이들의 질문으로 만든 토론들



 다시금 잊고 있었던, 퍼실리테이터라면 반드시 숙지해야 할 퍼실리테이션 원칙을 되뇌어 본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현명하고, 올바른 일을 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하고 싶어 한다.”


 믿어주면 사람들은 그만큼 잘할 수 있다. 오늘도 아이들과 즐겁게 이 책으로 수업을 할 것이고 우리 아이들은 그만큼 한층 더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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