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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Nov 22. 2022

꿈은 이루는 걸까? 아니면 시도하는 걸까?

 자신이 갖고 있는 꿈은 목적을 달성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걸까? 아니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시도하는 과정이 의미가 있는 걸까? 알 수가 없다.

요즘 들어 헛헛한 감정이 조금씩 든다. 이는 보나 마나 또다시 12월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항상 연말, 혹은 12월이 가까워지면 허한 감정이 마음속에서 삐죽이 솟아오르곤 했다. 1년 365일, 뭐하나 이룬 것이 없이 이렇게 또 1년이 지났다는 생각에 괜스레 마음이 서글펴졌다. 나이의 숫자가 점점 커질수록 꿈에 대한 열망은 더 커져만 간다.


 꿈을 완전히 이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겪는 소소한 결과물에 의미를 두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수많은 책들을 읽고 글을 쓰고 도전하고, 이 모든 것들은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과정이다. 그 꿈이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야 할 길이 많은 나는 무작정 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그 꿈들을 다 이루었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누군가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서 꾸준히, 열정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어떤 이는 수많은 가능성의 꿈들을 염두에 두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향해 달려가면서 일상들 속에서 꿈을 지켜나가려 용쓰면서 점차 내 꿈이 무엇인지 까먹었다. 내 꿈이 뭐였더라?


 우선은 좋은 글, 울림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만 막연히 가졌다. 어떤 이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책을 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이는 공모전에서 수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꿈들은 모두 다른 누군가가 주장하는 꿈들이다. 정작 나는 스스로 어떤 꿈을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글을 쓰는 것이 좋았고, 누군가 내 글쓰기를 알아주었으면 좋겠고, 매일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면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미 나는 그 꿈을 이룬 셈이 아닐까?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선생은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는 김지수 작가의 물음에 "집이 아니라 길 자체를 목적”으로 삼으라고 답한다. 이어령 선생은 “꿈이라고 하는 것은 꿈 자체에 있는 거라네. 역설적이지만, 꿈이 이루어지면 꿈에서 깨어나는 일밖에는 남지 않아.”라면서 “꿈이라는 건, 빨리 이루고 끝”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계속 꿈을 지니고 지속하고 그 꿈에 대한 갈증을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계속 도전하고 시도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뭔가가 하나씩 결론 맺어지면 허전한 마음이 드는 걸까?

 

 이번 주면 몇 개월 동안 줄기차게 매달려 오던 일들이 하나씩 마무리된다. 다른 일들과 겹쳐서 정신없이 바빴고 힘들었던 나날들. 끝나고 나면 좀 편안한 마음이 들 줄 알았는데, 지난 주말부터 자꾸만 허한 기분에 달달한 주전부리만 찾아대고 있다. ‘끝났다’의 편안함이 아니라 아쉬우면서 기묘한 기분이다.


  결국 시시포스의 고행처럼 계속 도전하고 힘들어하고 다시 시도하는 그런 인생을 살아야 하는 걸까? 꿈은 목적을 달성하도록 계속 나아가야 하는 걸까? 아니면 몇 % 의 여지를 남기고 또 다른 목적을 다시 만들어야 하는 걸까?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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