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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Nov 10. 2022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적정한 나이

‘나이’라는 것은 참 요상한 것이 사람의 용기를 조금씩 갉아먹는다. 뭔가를 시도하거나 도전하고 싶을 때마다 불쑥 튀어나와서는 ‘지금 그 나이에?’라는 말로 사람을 주춤거리게 만든다. 처음에는 ‘그래도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미약하게 대꾸하다가도 계속 반복되는 ‘나이’ 공격을 듣다 보면 , ‘그래, 이 나이에 무슨, 그냥 이대로 살지 뭐,’라며 현재 상태에 머무르게 만든다. ‘나이’, 형체도 없어 잡을 수 없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쥐락펴락, 요동치게 만드는 묘한 것이다.


 얼마 전에 친한 동생이 가게를 접었다. 1년 전에 개업해서 이제 제법 주문도 많고 앞으로 뻗어나갈 일만 남은 가게였다. 하지만 동생은 일하는 동안 고질병이었던 디스크가 더 심해졌고 계속 물과 재료와 씨름하다 보니 손의 습진이 악화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정말 아쉽지만, 눈물을 머금고 가게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며칠 전, 그런 동생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모인 자리,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저마다의 공감을 건네며 그녀를 위로했다. 이런저런 따뜻한 말들이 오가던 중,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그래도, 너는 좋은 직업이다. 몸을 쓰지 않고 머리만 쓰면 되니 말이야.”


 이 말을 듣고 처음에 든 생각은 물음표였다. ‘내 일이 매우 편해 보이는 걸까?’라는 생각과 함께 작은 불퉁한 생각들이 슬며시 올라왔다. 사실, 강의하고 글을 쓰는 데는 다른 직업처럼 그렇게 많은 장비가 필요하지 않다. 이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개인 노트북, 수업에 필요한 참고 자료 책들, 필기구, 그리고 이리저리 굴려야 하는 머리만 있으면 수업 준비는 완성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수업에 대한 아이디어나 생각들이 안 떠오를 때는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다’라고 말이다. ‘그냥 정해진 일 매뉴얼대로만 일하고 생각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아니다. 물론 막상 그 일을 해보면 그 직업 나름의 고충이 많을 테지만 말이다.


 그래서, 가끔은 일을 그만두는 이유에는 나이가 문제인지, 체력이 문제인지, 참 알쏭달쏭할 때가 많다. 흔히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정년퇴직’이라는 단어가 콕 박혀 있다. 회사의 고용주들은 대체로 60세, 65세의 숫자가 일자리에서 물러나기에 적당한 나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은 더 일할 수 있고, 아직도 체력이 넘치는 것 같은데 ‘그놈의 나이’ 때문에 더 일할 수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항상 언제 떠날지,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긴장의 살생부를 늘 마음속에 품고 다닌다.


 섬세한 심리묘사의 글로 유명한 김금희 작가의 <경애의 마음>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등장인물 경애는 항상 회사의 부조리한 상황을 참지 못하고 앞장서서 이야기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는’ 회사에 대항하기 위해 회사 앞에서 홀로 1인 시위를 한다. 하지만 그런 경애 역시 그녀를 외면하고 지나치는 회사 동료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견뎌야 할’ 이성의 온도, 그녀는 그 차가운 온도를 그렇게 표현한다.


 그 차가운 온도를 유지하는 것에는 ‘나이’와 가족, 일상의 유지가 가장 큰 에너지원을 차지한다. ‘지금 이 자리를 나간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상황에서 다른 일을 해도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어쩌지?’라는 생각은 자꾸만 사람의 마음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일상의 온도는 안정되고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부끄럽지만 다른 부조리를 향해 두 눈을 찔끔 감고 차갑게 외면할 때도 있다. 비겁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글을 쓰는 행위가, 글로 표현하는 활동이 다른 신체적인 직업보다는 그나마 나이 들어도 손쉽게 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생각에 동의한다. 바로 그런 이유로, 가능한 한 자주 글을 쓰며 내 마음을, 정신을 섬세하게 유지하도록 훈련하고 있다. 모두가 당연시하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마냥 침묵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요즘도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마음속에서, 머릿속에서 넘쳐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적기가 좀 두렵다. 지금 우리나라는 모든 생각과 의견 교환이 자유롭게 허용이 되는 나라일까? 가끔은, 특히 요즘은 의아함과 동시에 의문점이 든다. 각각의 의견들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누구의 의견도 손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강 대 강’의 의견만이 살아남는다. 정작 중요한 문제의 본질은 살펴보지 않은 채 곁가지를 향해서만 날카로운 칼을 들이민다. 그럴수록 ‘백’ 없고 ‘돈’이 없는 불쌍한 국민은 억울함으로 속만 타들어 간다.


 나중에 나이가 좀 더 먹고, 그때까지 계속 글을 쓰고 있다면 정말 솔직한 이야기를 마음껏 쓰고 싶다. 지금처럼 소심하게 끄적거리지 말고, 말이다. 그렇게 나이가 들면 누가 뭐라고 이야기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을 테다. 내 글을 주시하는 그들도 결국에는 ‘늙은이 주책 어린 잔소리’ 정도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지금 소심하게 정말 할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나는 비겁하다.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나이 핑계로 침묵하고 있지만, 실은 안다. 자꾸 침묵하다 보면 정말로 이야기해야 할 때 아무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어느 나이가 되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런 나이가 오기는 할까? 그때가 어서 오기를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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