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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표 넷째 형님

by 하늘진주

다른 지역에 계시는 넷째 형님을 방문하기 위해 아침에 분주하게 서두르다 보니 벌써 10시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잠이 많은 둘째를 깨워 학교를 보낸 후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를 했다. 여느 때와 비슷한 일상, 딱히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시간이 후딱 지나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같은 수도권에 살고 있지만 형님들과 왕래가 빈번하지 않다. 명절에 몇 번, 어른들 생신, 큰 이벤트가 있어야지만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뿐이다. 하긴 같은 피를 가진 친형제들도 동일한 생활권에 있어도 바쁘다는 핑계로 못 만나는 상황이니 형님들은 오죽할까?


어제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는 자리에서 전화를 받았다. 경남 창원에 사시는 둘째 형님이었다. 형님은 조심스레 우리 가족의 안부를 묻고는 안산에 사시는 넷째 형님이 아프다는 소식을 전했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걸리는 질병, 암. 그것도 유방암 4기라는 이야기였다.

항상 천사처럼 시댁행사의 모든 궂은 일을 도맡아 하시던 넷째 형님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집온 막내동서를 다독이며 무한한 인내심으로 시댁일을 알려주었다. 나이 차이가 큰 형님들에 비해 바로 윗 동서 형님이라 의지하고 많이 따랐다. 그러다 아이들이 자라고 저마다 개인 일정이 바쁘면서, 명절 때마다 오고 가는 시간이 다른 탓에 통 소식을 몰랐다. 최근 친정에 우환이 있다는 이야기를 풍문으로만 들었는데 그런 일이 있을 줄이야... 아무리 가족이라도 가정의 내밀한 이야기, 그것도 친정과 관련된 이야기는 섣불리 물을 수가 없다.


그렇게 소식을 전한 둘째 형님은 넷째 형님을 보기 위해 창원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형님은 넷째 형님이 아직 항암치료를 받기 전이라 현재 컨디션이 좋으니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말했다. 다른 일정이 없으면 말이다. 당연히, 무조건 달려가야지. 전화를 끊고서 바꿀 수 있는 일정을 바꾸고 안산으로 가는 차편을 알아보았다.


그날 저녁, 넷째 형님은 톡을 보냈다. 방향치에 뚜벅이인 막내가 사는 지역의 차편이 마땅치 않을 텐데 어떻게 오냐는 걱정이었다. 염려 말라고 너스레를 떨며 답장을 보냈다. 자신의 몸 걱정만 해도 모자랄 시간인데 형님은 항상 본인보다 남부터 배려하신다.


넷째 형님의 소식을 전해 들은 남편은 잘 위로하고 오라고 했다. 하지만 솔직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달변가라면 형님께 마음의 위안이 될 말을 찾을 수 있을까? 형님을 보고 연신 눈물만 짓다 올지도 모르겠다.

형님을 빨리 뵙고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힘든 일이 있어도 마냥 참고 견디는 넷째 형님을 생각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안산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또다시 넷째 형님의 카톡을 받았다. 형님은 유달리 춥다는 12월 첫날 아침, 추위에 길 나서는 막내인 내가 염려가 되었는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넷째 형님은 차비를 보내며 '꼭 택시를 타고 오라'고 당부했다.


형님의 드넓은 착함이 더 큰 보답으로 대접받을 수 있기를 쉼 없이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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