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큰 애의 마지막 학원비를 결제했다. 내년 고3이 되는 아들은 올해까지만 영어 학원에 다니고 모든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참이었다. 그 대신 인강을 이용해서 모자라던 공부를 채우겠다고 말했다. 며칠 전, 평촌의 대형학원 입시설명회를 다녀온 엄마의 낯을 붉히는 발언이다. 설명회의 입시 전문가는 고3 1년은 1분 1초가 모자라는 시간이라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눈이 혹할만한 커리큘럼과 올해 입시 결과와 문제 적중률을 들이대며 불안해하는 많은 엄마의 눈과 귀를 현혹했다.
어쩌면 아들도 혼자 공부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으로 모든 학원을 끊겠다고 선언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릴 때부터 똘똘한 구석이 있는 아들이지만, 그 녀석도 고등학교 첫 입시 때는 무척 불안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보통 때의 담담한 모습과 다르게 많이 조급해했고, 모든 일에 자신이 없어했다. 생전 처음 받아 보는 점수로 좌절하는가 싶더니 조금씩 마음을 추슬렀다. 시험 기간마다 커피를 마시며 새벽까지 공부하고, 평소에도 자기에게 부족한 부분들을 하나하나 계획을 세워서 하며 조금씩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아들이 고3 1년을 온전히 스스로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것에는 그런 지난한 경험과 시행착오들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동안 아들의 노력과 고민을 알기에 빗발치는 학원의 유혹에 눈과 귀를 닫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물론 걱정은 되지만 말이다.
항상 매년 연말 중 며칠은 몸살감기로 고생을 하곤 했다. 별다른 이유 없이 마음과 몸이 아팠다. 그럴 때면 내 마음은 지금까지 하던 모든 일을 다 접고 무조건 쉬라고 종용했다. 책을 보던, 멍을 때리던, 유유자적하며 자신에게 집중하라고 소리쳤다. 몸이 아픈 다음에야, 마음이 어두컴컴한 우울 속으로 끝없이 침전하고 나서야 다시 새롭게 시작할 마음이 생긴다. 마치 호수 위에 하릴없이 서성이던 낙엽이 물 위를 무작정 배회하다 어디선가 떨어지는 돌을 맞고서야 다시금 새로운 방향을 정해 나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2022년 12월의 모든 일정이 끝나기 전에는 ‘엄마는 이래야 하기에’, ‘이 일은 어차피 해야 하니까’, ‘지금까지 하던 일이니까’,라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모든 일을 이어 왔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줄 알았고, 이렇게 안 하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지금까지 만들어 온 일들, 해 온 습관들이 ‘최선’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아니어도 어차피 모든 일은 ‘누군가’로 대체가 가능했고, 그 일이 아니어도 ‘어떻게든’ 솟아날 구멍이 있었다. ‘내가 아니면 안 돼’, ‘이 일이 아니면 안 돼’라는 오직 나만의 오만이자 착각이었다. 어떤 일에서, 어떤 역할, 다른 사람들의 인정에서 자존감을 세우거나 가치를 찾아서는 안 되는 거였다. 나의 가치와 만족은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었다.
혼자만의 시간은 스스로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혼자만의 고독을 통해서 찾지 않으며 절대로 알 수가 없다. 큰 애는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 고3 과정을 혼자 공부하겠다고 이야기하며 지금까지의 자신의 공부를 스스로 정리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 이런저런 학원들에 다녔을 때는 선생님들의 숙제에 치여 본인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없었다며 말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해야 할 일들, 여러 가지 경조사들, 해야 하는 의무들에 치여 ‘나’라는 인간에 대해 한 발짝 물러나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동안 나의 본질보다는 ‘남들에게 보이는 이미지’, ‘해야 하는 일들의 의무’에 급급해 나를 재촉했던 것은 아닐까? 매년 연말마다 몸과 마음이 아프고 힘들어지는 이유는 잠시 쉬어가라며 스스로가 일으키는 ‘돌팔매질’ 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2022년도 1주일 정도 남았다. 내년을 맞이하며 앞으로 내 인생에서 더하고 빼고, 나누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떤 인생을 꾸미고 싶은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혼자만의 고독을 지니는 기간, 내 속을 비우고 다시 채워갈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