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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Dec 03. 2022

글은 어떻게 써야 할까?

 글은 어떻게 써야 할까?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으면 쓰려는 글에 대한 상념은 항상 진실과 허구 사이에서 서성거린다. 어느 정도의 솔직함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사회의 소란함을 염두에 둔 허구로 생각을 가려야 할지 매번 혼란스럽다.


 얼마 전 사람들과의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 <유키즈 온 더 블록>에서 인기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의 주요 등장인물인 손석구는 글쓰기에 관한 생각을 이렇게 밝혔다. 평소에 글쓰기를 즐긴다는 그는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글쓰기가 생각보다 어렵다고 밝혔다. 나 역시도 개인의 글쓰기는 '자기를 가장 잘 드러낼 때 가장 큰 울림을 준다'라는 의견에 동의하지만, 그 '100% 솔직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글을 쓰는 행위는 한 템포를 멈춰서 자신에 대해 사색하고 돌아보는 일을 전제로 한다. 최소한의 화장 없이 아무런 꾸밈없는 얼굴로 거울을 쳐다보거나 생각하지 않고 두서없이 내뱉는 말을 녹음해서 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완전 날 것의 모습, 전혀 정돈되지 않은 자신의 목소리를 듣기가 얼마나 괴로운지를 말이다. 그처럼 '솔직하게 본인을 돌아보고 글을 쓰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게다가 남에게 자신의 글을 드러낼 경우는 더욱 그렇다.


 예전 ‘안녕, 나의 에세이’ 수업에서 수진 선생님이 그랬다. 다른 사람을 주인공으로 그 삶을 풀어내는 것은 소설, 본인을 주인으로 삶과 경험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에세이라고 말이다. 물론 두 장르 모두 꾸준한 습작과 다양한 책 읽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작품과 차별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경험이다.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특별한 경험에서 빚어 나온 사색이 글쓰기의 가장 좋은 재료이다.


 한때 동화와 소설과 같이 허구로 쓰는 글쓰기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과거형'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지금도 역시 상상의 세계를 만드는 일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소설 쓰기와 같은 허구 글쓰기의 욕망은 '나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고 솔직한 생각을 밝히기가 두려워 스스로 찾아낸 자구책이다. 만들어 낸 '허구의 인물'들을 통해 그동안 세상에 대한 모든 불만들, 짜증들, 호기심들을 마음껏 쏟아내고 싶었다. 누군가 "실제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 그런 생각을 하다니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라고 불평이라도 할라치면, "소설은 소설로 봐주셔야죠."라며 으스대며 대꾸를 하는 상상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소설 쓰기에서 동화 쓰기로, 동화 쓰기에서 에세이 쓰기로 '글쓰기의 보헤미안' 마냥 이리저리 유랑하기 시작했다. 긴 호흡으로 글쓰기 시간 확보가 어려운 탓도 있지만, 경험 부족에서의 상상력 고갈 때문이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참신한 소재와 주제라고 야심만만하게 글 한 편을 뚝딱 써내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꼼꼼히 원고를 다시 살펴보면 어디선가 다 들어본 이야기고 허접하기 짝이 없다. 그런 일들이 하나둘씩 쌓이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보다 뛰어난 작가들' 투성이다. 모두가 글을 쓰는 세상에서 굳이 나까지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 갑자기 '글 쓰는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이 확 밀려온다.


 글 쓰는 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주 얇은 백지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자신감'과 '회의감' 사이에서 줄타기한다. 아주 극소수의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인물들을 빼고는 '원래부터 잘 쓰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는 세상의 이야기를 자기 관점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본인의 경험과 성찰을 솔직하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 글은 맛깔스럽다. 글쓴이가 누구도 지니지 못했던 특별한 경험 이야기를 썼다면 문장력과 문체 따위는 상관없다. 어차피 독자들은 경험하지 못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기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 그렇다면 특별한 경험도, 생각도 없는 사람은 글쓰기를 멈춰야 할까? 아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쓰게 되어 있다. 솔직함과 가식의 경계선에서 어느 선까지 자신을 드러낼지 고민하고, 자신감과 열등감 사이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갈등하며 글을 쓴다. 다른 이가 알아주지 않아도 공감받지 않아도 쓸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작가, ‘쓰는 인간’이다. 백지의 세상에서 내 자취를 남기고 싶은 욕망으로 계속 쓸 수밖에 없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5분, 10분, 30분을 글을 쓰고 있는 동안만은 온전히 나에게, 내 생각에 몰입할 수 있다. 그래, 지금은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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