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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Dec 07. 2022

'꼰대이즘'과 '깨달이즘'

 나이가 들면서 쌓이는 것은 나잇살과 함께 ‘꼰대력’이다. 나잇살은 본인이 굳게 마음을 먹고 운동과 식이조절을 하면 빠지지만, 꼰대력은  쉽사리 알아챌 수 없게 조금씩 몸과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기에 알아차리기도 쉽지 않다. 혹시라도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서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마음을 한 번이라도 먹어봤다면, 어쩌나! 이미 당신의 마음속에 꼰대력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꼰대라는 말이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았는지는 알 수 없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꼰대는 주로 학생들이 사용했던 은어로, ‘권위를 행사하는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뜻을 담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이 단어는 해외에도 알려졌는데, 2019년 9월 23일 영국 BBC방송은 자사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오늘의 단어'로 'kkondae(꼰대)'를 소개했다. 그 의미를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다른 사람은 늘 잘못됐다고 여김)'이라 풀이했다.


 나이가 든 사람들이 세월 속에서 터득한 자기 경험과 지식을 경험이 적은 젊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무시한 채 본인의 경험과 지식만이 ‘최고’라고 여기는 몇몇 꼰대들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여건과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일삼으며 본인의 경험과 업적만을 강조한다.


 비단 이런 꼰대력은 중년 이후의 사람들에게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환경에서 먼저 경험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꼰대력은 쉽게 형성된다. 이제 겨우 18살의 큰 애는 자신이 졸업한 중학교에 다니는 동생의 옷차림을 보고 ‘나 때는 말이야’라며 말을 꺼냈다. 둘째는 중학교 3년 내내 체육복을 교복 삼아 입고 다녔다. 그런 동생을 보며 큰 애는 자신이 중학교 다닐 때는 ‘교복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무조건 선생님께 지적을 당했다’라고 말했다. 남편 역시 회사에서 본인의 신입 시절과 다르게 나이 어린 사람들이 상황에 맞지 않은 주장을 강하게 밀어붙이거나 개인 일정을 중시하는 모습을 볼 때 어떻게 그들을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현재 ‘꼰대’는 젊은 사람들이 꺼리는 1순위이다. 나이 든 사람들이 어린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애써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도 '더는 꼰대로 불리지 않겠다'라는 그들만의 노력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MZ세대들 사이에서도 ‘역 꼰대’라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 꼰대’는 필요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을 무조건 꼰대로 치부하며, 소통을 차단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자기표현이 강한 MZ세대 중 일부는 자기 생각만이 정답이라고 우기며, 선배나 상사를 이용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고 한다. ‘꼰대’든 ‘역 꼰대’든 자기 생각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문제이다.


 2022년 12월 6일 브라질과 대한민국의 8강전을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월드컵 축구 일정은 마무리가 되었다. 둥근 공이 통통 튕기며 여러 진영을 오갈 때마다 대한민국 국민은 흥분과 열광의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그 기간에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과 함께 ‘아무리 해도 어쩔 수 없구나’라는 절망감을 동시에 느꼈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만큼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인간의 모습들이 잘 드러난 드라마도 없었다. 세계적인 명성을 지녔음에도 욱한 감정을 못 이겨 상대팀에게 욕을 퍼부은 선수, 자신의 명성보다는 오로지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수, 오로지 경기 결과에 따라 계약기간을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였다 하는 축구협회 등등, 짧은 기간 동안 여러 편의 드라마를 보았다. 그 수많은 드라마 속 사람들이 '꼰대냐 꼰대가 아니냐'로 갈리는 기준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이 월드컵 기간에 후배들을 배려하고 위하는 마음의 최고봉은 당연코 손흥민 선수이다.


 사실 이 월드컵 시작 전까지 손흥민은 어렴풋이 이름만 알던 선수였다. 하지만 이번 경기들에서 그가 후배들을 대하는 진솔하고 따뜻한 태도를 보며 진정한 리더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손흥민 선수는 이미 유럽의 선진 축구를 경험하고 있음에도 자만하거나 자기 의견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는 세계적인 선수들 앞에서 긴장한 후배들을 다독이며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에게 빛날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어쩌면 무척이나 힘들었을 이번 월드컵 경기, 손흥민은 선배로서 의연한 모습을 보였고 맡은 바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꼰대가, 역 꼰대가 비난을 받는 이유는 아마도 자기 의견과 경험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자만심 때문일 것이다. 세계적인 선수라고 칭해지던 선수가 뭇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이유도 역시 그의 오만한 행동 때문이다. 본인의 빛나는 경험과 마음에 취하면 취할수록 다른 사람들의 기분과 마음은 절대로 헤아릴 수 없다. 자신만의 ‘꼰대이즘’에 젖어서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손흥민 선수는 일찌감치 ‘꼰대이즘’에서 벗어나 ‘깨달이즘’에 도달한 사람인 듯싶다. 사실, ‘깨달이즘’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없다. ‘꼰대이즘’의 반대말이 ‘깨달이즘’이 아닐까 내심 생각해볼 뿐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을 존중하고 본인이 항상 옳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자각하고 있는 생각, 이것이 바로 내가 정의하는 '깨달이즘'이다.


 정신없이 선수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었다. 축구는 전혀 모르지만,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월드컵에서의 기쁨’을 계속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인가가 바꿔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알겠다. ‘이기는 축구 보기’에서 ‘축구 즐기기’로, ‘꼰대이즘’으로 꽉꽉 막힌 관행에 익숙한 수직 구도의 축구계가 ‘깨달이즘’으로 넓혀진 수평 구도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이건 비단 축구계의 문제만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꼰대력은 나이와 함께 야금야금 쌓이는지라 피하기가 너무 어렵다. 조금이라고 이 꼰대력이 덜 쌓이려면 계속 열린 마음으로 공부하며 깨어있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자기 의견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볼 마음이 되어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하지 않을까 싶다.


 본인 경험만을 앞세워 젊은 사람의 의견을 뭉개버리지 않고, 진부한 의견이라며 선배의 말을 무시하지 않는 서로가 '말 잘 통하는 세상'을 진심으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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