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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Dec 12. 2022

<현실 속 판타지, '재벌집 막내아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JTBC 드라마 <재벌 집 막내아들>이 조만간 시청률 20%를 찍을지도 모르겠다. 이 드라마는 재벌가의 온갖 궂은일들을 도맡아 하던 흙수저 주인공이 의문의 죽임을 당한 뒤 다시 그 집안의 막내아들로 회귀하여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2회 차의 삶의 살고 있다는 설정으로 주인공은 이미 미래에 일어나는 일들을 다 알고 있다. 그는 본인의 지식을 이용하여 막대한 부와 권력을 조금씩 쌓아간다. 시청자들은 그런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며 이 드라마에 열광하고 있다. 실제로 주인공이 위기에 처하는 장면만 방영되는 날에는 ‘너무 고구마다,’, ‘재미없다’라는 댓글이 쇄도하다가도 주인공에 의해 재벌가의 사람들이 곤경에 처하면 시청률이 상승하는 일이 벌어진다. 평범한 사람들은 실제로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무엇이든 손쉽게 해치우는 ‘먼치킨’급 주인공을 보며 새로운 영웅을 꿈꾼다. 그렇다. <재벌 집 막내아들>의 주인공, 진도준, 그는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영웅이다.


 이 드라마는 현실에서의 성공 신화를 거부한다. ‘성실히’, ‘꾸준히’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성공의 정상’에 이룰 수 있다는 판타지를 부정한다. 사실 주인공 진도준은 원래 현실의 성공 신화 규칙을 그대로 답습한 인물이었다. 흙수저인 진도준은 매우 뛰어난 성적으로 대학을 진학할 능력이 있었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학업을 포기한다. 그는 특유의 성실함과 좋은 머리로 열심히 노력하여 남들이 부러워하는 재벌가의 비서로 취직한다. 이른바 소시민들이 꿈꾸는 성공 이야기다. 하지만 그뿐이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모습과 다르게 진도준은 온갖 허드렛일을 담당하며 결국에는 처참하게 재벌가에서 ‘팽’ 당한다. 요즘은 드라마 속에서도 흙수저로 태어난 이상 아무리 노력해도 재벌이 될 수 없다. 이제는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


 드라마 속 재벌가 손자는 한 기업의 상무를 취임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 자리가 몇십 년이 걸리는 자리라고 들었는데, 갓 들어온 자신이 차지해서 송구하다. 어쩌겠느냐, 태어나보니 회장의 손자인걸.”

이 말처럼, 이미 금수저와 흙수저의 출발선은 ‘평사원’과 ‘상무’의 자리처럼 어마어마하게 벌어져 있다.


 사회 속의 불평등, 불합리한 점을 다 따지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런데도 모든 흙수저가 침묵하며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다’라는 현실 속 판타지 성공 신화를 간직하는 것은 그래야지만 이 불평등한 현실에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흙수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라고 닦달하는 것은 그나마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공부’라고 생각하는 까닭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진행되었던 화물연대의 파업이 끝났다. 이를 두고 신문사들마다 별 소득 없이 ‘빈손’으로 끝났다는 보도를 내놓았다. 그리고 파업의 핵심 쟁점이었던 ‘안전 운임제’에 대한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채 파업이 종료되면서 당분간 이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사실 이 화물연대 파업은 카타르 월드컵 기간에 진행되어 국민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들이 왜 파업을 진행하는지, 왜 많은 국민의 불만들을 감수하고 거리로 나섰는지 알려지지 않은 채 말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 화물연대 파업의 목적이 ‘돈을 더 받고자 하는 욕심’인지, 아니면 ‘귀족 노조의 연례행사’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미 우리도 ‘재벌가’와 비슷한 눈높이로 모든 상황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겁난다.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 진도준은 재벌 순양가의 비자금 세탁으로 인한 주식 조작으로 피해를 본 서민들을 보며 할아버지 진양철에게 그 상황을 아냐고 묻는다.

  할아버지는


 “도준이 너는 평생 서민으로 살 일이 없다. 진양철이 손주 아이가. 어디 가서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라. 남들이 손가락질한다. 고양이 쥐 생각한다고.”


 라고 말하며 서민들의 비참한 상황을 웃어넘긴다. 재벌들에게 서민들의 상황은 그저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일 뿐이다.


 <재벌 집 막내아들>, 이 드라마는 분명 재미있다. 진도준의 활약을 보며 ‘내가 과거를 알고서 재벌집으로 태어났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싶은 환상을 품게 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TV 전원을 끄고 현실로 돌아오면 평범한 삶, 그래로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파헤쳐야 할 현실들이 첩첩산중이다. 그저 묵묵히 바라보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 소시민들은 차라리 망각을 택한다. 재벌가에서 2회 차의 인생을 사는 주인공 진도준, 과거를 알고 있다는 지식으로 막대한 부를 쌓고 있는 인물, 그를 추앙해야 할지 아니면 시기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

 

 그래도 드라마 속에서 그가 이기적인 재벌가를 상대로 벌이는 ‘사이다’ 행동은 통쾌하다. 재벌가들에게 바보처럼 당하지 말고 계속 ‘사이다 복수’를 해 줬으면 좋겠다. 우리를 대신해서 말이다. 어찌할 수 없는 요즘 현실에서 소시민들이 '먼치킨' 주인공에게 거는 유일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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