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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Dec 13. 2022

줄어드는 출생률이 가져온 나비효과

 우리 아이들은 각각 2005년생, 2007년생이다. 큰 애가 태어나던 해는 가장 적은 출생률을 기록했고, 둘째가 태어나던 해는 ‘600년 만에 찾아온다는 황금돼지 해’의 속설로 아이들이 아주 많이 태어났다. 그런 이유인지 큰 애를 키우던 해와 둘째 양육하던 시기는 각각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큰 애가 태어난 후 유모차를 끌고 나가면 길 가던 어르신들은 저마다 걸음을 멈추고 따스한 얼굴로 아이와 나를 쳐다봤다. “정말 우리나라의 애국자”라는 덕담을 건네며 육아에 서툰 초보 엄마를 조금이라도 도와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에 반해, 둘째는 이미 배 속에 있을 때부터 경쟁의 시작이었다. 매달 정기적으로 찾아가야 하는 산부인과는 산모들로 늘 붐볐고, 태어난 후에도 거리는 비슷한 또래 아기들로 넘쳐났다. 둘째가 유치원에 갈 때는 원생들을 ‘모셔가던’ 큰 애 때의 분위기와 달리, ‘혹시나 우리 둘째만 유치원에 못 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으로 노심초사하며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이런 기이한 현상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주변에서 올해 수능을 치른 고3들이 일찌감치 재수를 결심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2005년생인 우리 큰애가 고3이 되는 내년은 ‘사상 최저의 수험생들이 수능을 치를 해’라고 알려졌다. 그런 영향인지 재수, 삼수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이 다시 찾아오지 않을 ‘로또 같은 내년’, 2024년만을 학수고대한다고 한다. 물론 그런 재수생들이 절대로 시험을 치를 수 없다고 다짐하는 해는 당연히 둘째가 고3이 되는 2025년이다.


 황금돼지해인 둘째가 유치원, 초등학생,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는 매번 멀쩡한 교실의 구조를 바꾸고, 반의 개수를 늘리는 이상한 현상들이 벌어졌다. 실제로 아이들의 학교 공개 수업에 참여할 때도 비교적 한적한 큰 애의 교실 분위기와 비교해, 둘째의 반은  빽빽한 콩나물시루의 교실 분위기 그 자체였다.


 그런 일들을 여러 번 겪고 나니 ‘매번 줄어드는 출생률의 위기’라는 말이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호들갑을 떨며 각 나라의 출생률을 비교해 제시하는 자료들이 거짓처럼 느껴졌다. 더 솔직히 말하면,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는 육아에 정신이 없어서, 이렇게 수험생이 되었을 때는 교육에 신경 쓰느라, 우리나라의 출생률은 어떻게 되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KBS 9시 뉴스(2022.12.13.)를 보니 그동안 무시했던 출생률 저하에 대한 ‘나비효과’가 드러난 듯싶어 두려웠다.


 그 뉴스는 수도권 한 대학병원의 소아청소년과의 입원 진료가 2022년 12월 12일을 기점으로 중단된다는 내용이었다. 한 마디로 진료할 의사 선생님들이 없는 탓이다. 출생률 저하와 '저수가' 정책 등으로, 이 병원을 포함해 전국 대부분 수련 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모집은 올해도 미달로 마무리되었다. 실제로 응급실을 찾은 5세의 한 아이는 최근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소아과 의사가 없어 진료를 못 받고, 다음 날 아침에서야 다른 병원에서 급성 폐쇄성 후두염 진단을 받기도 했다고 했다. 아이들의 출생률 저하는 전공의들의 소아청소년과 기피 현상을 불러왔고, 이는 곧 소아 응급의료의 공백으로 이어졌다.


 이런 현상은 비단 의료계의 문제만은 아니다. 올해 7월에는 정부가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교육에 쓰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 가운데 3조 6천억 원을 떼어내 대학 등 고등교육에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방침으로 교육계의 반발을 샀다.(2022년 7월 7일, 한겨레 뉴스) 학력인구 감소를 이유로 교육교부금 삭감을 주장해 온 재정 당국이 이를 구체화한 것인데, 당장 예산이 삭감되는 전국 시 ·도 교육감들은 교육의 질적 하락이 우려된다며 반대 견해를 밝혔다.


 여러모로 출생률 저하, 학력인구 감소가 불러온 나비효과이다. 그렇다고 출산이 가능한 가임 부부들에게 아무런 대책이 없이 무작정 아이를 낳으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 역시도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어릴 때는 잔병치레 때문에 밤을 꼬박 새웠고, 병원을 자주 들락거렸다. 조금 컸을 때는 교육 문제, 학원비 고민으로 가계부를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한숨을 많이 쉬었다. 지금도 역시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 번듯한 직업을 갖고 가정을 꾸릴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이 경쟁이 치열하고 험난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말이다.


 그런 치열한 고민을 하는 동안 우리 정부가 나에게 준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격을 부여하는 주민등록증과 각종 세금뿐이다. 뭐, 그와 동시에 나라를 걱정하는 여러 가지 사회 고민들과 골칫거리를 안긴 것들을 생각하면 어쩌면 이득도 혜택도 없는 ‘제로섬’일까? 지금까지 우리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정부가 나에게 무슨 혜택을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정부 역시 ‘너희 애들은 너희가 키워라’라는 암묵적인 무시를 했지, 체계화된 양육 제도와 교육 비전으로 불안한 부모들을 안심시키지 못했다. 애초에 ‘무턱대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라는 표어를 제시했던 정부였다. 그런 만큼 아이들을 출산하고 기르는 일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일이었다.


 나날이 줄어드는 출생률이 이제는 국가의 존망마저 뒤흔들 모양이다. 전문가들은 통계청의 2022년 9월 5일 발표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 현황 및 전망’을 인용하며, 2070년 기준 전 세계에서 고령인구가 생산연령 인구보다 많아지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할 것으로 전망됐다며 아우성친다. (2022년 9월 5일, 경향신문) 2050년에는 출산율 꼴찌인 한국이 인도네시아·이집트·나이지리아 등 인구 대국에 밀려서 경제 규모가 세계 15위권 밖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2022년 12월 12일, 중앙일보)


 그런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드리우는 우울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출산율 저조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젊은 세대들의 결혼문화를 부추기고 부부들의 출생률을 상승시키는 어떠한 희망적인 징조가 보이지 않는다. ‘잘되면 내 탓, 못되면 너희 탓’이라는 놀부 심보가 정부 안에 가득한 탓일까? 아니면 눈앞에 닿힌 일들을 이기고 싸워내느라 백년지계를 세울 여유가 없는 탓일까? 괜스레 이 시국에 자식을 낳은 부모들의 불안감만 커진다. 우리 아이들, 앞으로 이 사회에서 잘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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