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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Mar 09. 2023

코로나 팬데믹 이후, 우리의 봄은 어떻게 다가오는가?

 아이들의 새 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째다. 겨우내 고요하고 잔잔했던 일상들이 3월의 개학과 동시에 “준비 땅”을 외치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매일 두 녀석의 학교에서 날아오는 각각의 공문들에, 문자에, 정신을 차리기가 어렵다. 뭐, ‘새 학기의 봄은 이래야 제맛이지.’라고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유난히 이런 분위기에 정신을 못 차리는 내 모습에 의아함마저 느낀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코로나 이후, 이렇게 ‘정상적인 새 학기’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2023년 신학기는 일상처럼 해 오던 ‘코로나 증상 자가 진단’ 없이 등교하는 첫해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학교 가기 전 습관적으로 핸드폰 앱을 켜고 자신의 몸 상태를 입력했다. 그런데도, 작년 3월은 각 학교마다 코로나 확진자들로 넘쳐났고, 이러다가 ‘다시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공포감마저 들었던 달이었다. 그랬던 일상이, ‘정말로 신기하게도’, 코로나 팬데믹이 찾아오기 전, 3년 전 일상으로 서서히 돌아가고 있다. 휘몰아치는 바이러스의 폭풍우 속에서 언제쯤 마스크를 끼지 않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날이 올까 싶었다. 그런데, 그때가 바로 태풍이 지나가기 전, 마지막 몸부림의 시간이었나 보다. 마스크를 끼지 않는 첫봄이 정말로 우리에게 찾아왔다.


 특히 2005년생 둘째는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정상적인 학교생활이다. 그 녀석은 중학교에 진학하던 해, 갑자기 코로나가 발생하여 초등학생의 티를 하나도 못 벗은 채로 2020년 6월에야 입학했다. 온라인 수업을 번갈아 하며 거의 2년 동안을 ‘반백수’로 학교생활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작년 2022년, 코로나 팬데믹의 끝물에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로 중학교를 졸업했다. 코로나 기간 내내 유난히 “학교 가기 싫다”, “집에서 온라인 수업하고 싶다”를 입에 달고 살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갑자기 올해부터 20~30분 거리의 고등학교를 매일 새벽마다 버스를 타고 가려니 거의 죽을 맛일 테다. 오늘도 현관문에서 학교에 나서는 아이를 가만히 안아주며 배웅하자니, 둘째가 피곤한 얼굴로 시무룩하게 고개를 푹 숙인다. “더 자고 싶어요.”라면서 말이다. ‘에구, 그래도 어쩌겠냐?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올 시기이란다’라는 속의 말을 차마 다 끄집어내지 못하고 묵묵히 둘째의 등을 토닥였다.


 많은 사람에게 큰 상처를 남겼던 코로나 팬데믹이 지났다. 우리의 일상도 조금씩 예전의 분위기로 돌아가고 있다. 혼란스럽고, 괴로웠고, 힘들었던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희망찬 나날이 가득 찰 줄 알았는데, 닥치고 보니 그것도 아니다. 갑자기 들이닥쳤던 코로나 팬데믹이 지나고 나니, 각각의 또 다른 시련들이 기다리고 있다. 함께 ‘으쌰으쌰’하며 혹독한 겨울을 견뎠지만, 따뜻한 봄날의 햇살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았다. 공동의 위기 앞에서 느꼈던 연대 의식은 저 멀리 접어두고 이제는 저마다의 삶에서 각자의 해방일지들을 써 내려가야 할 차례이다.

 

 코로나 팬데믹의 망각에서 한 꺼풀 벗어난 우리나라는 ‘참 오묘하고 이상한 나라’였다. 학교 폭력으로 다른 아이를 상처를 준 아이가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최고의 대학에 버젓이 이름을 올렸다. ‘정말 훌륭하고 멋진’ 권력을 가진 부모 덕분에 말이다. ‘빽도, 뭣도 없이’ 고등학생을 키우는 부모는 그저 ‘아이가 학교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지내기를’이라고 소원을 빌지만, 굳이 그렇게 애태우지 않아도 되었다. 힘과 권력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얼마든지 ‘신분 세탁’이 가능하고 어떠한 위기 앞에서도 벗어날 구멍이 있는 나라였다.


 현재 작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막냇동생은 ‘너무 바쁜데…. 회사에서의 갑질 때문에 힘들어’라는 카톡을 보냈다. 결혼과 육아로 회사 경력이 단절되었던 동생은 몇 년 전 힘들게 재취업에 성공했다. 웬만하면 웃으며 갑질하는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 강단이 있는 동생인데, 그렇게 말할 정도면 많이 힘든 모양이었다. 막내는 이 직장에서 그만두면 나이 때문에라도 다시 들어갈 일터가 없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다. 엄마의 손이 필요한 어린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누구나 선망했던 직장을 과감히 그만뒀고, 지금은 아이들의 교육비를 벌기 위해 다시 취업전선에 나섰다. 그렇게 찾은 바깥세상은 예전보다 녹록지 않았다.


 얼마 전 정부는 “근로자 건강권 보호 강화"를 명분으로 1주에 최대 69시간까지 노동할 수 있는 ‘유연근로시간제’를 발표했다. ‘근로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이라는 목적으로 5년 전에 시행되었던 ‘주 52시간 근무제’가 다시 개편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뉴스를 보자마자 남편에게 물었다. “노동시간이 변경된다는 데, 당신네 회사는 괜찮아?” “상관없지. 그냥 예전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되지 뭐.” 남편은 담담히 반응했다. 예전처럼 이라….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기 전 남편의 일과는 항상 아침 7시 출근에, 밤 10시 퇴근이었다. 어쩌다 정말 빨리 오면 밤 9시, 밤 11시를 넘어서 퇴근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또다시 예전의 각박한 노동 현장으로의 회귀이다. 다시 정부가 노동자가 ‘엄청’ 일할만한 환경을 만들겠다는데 말 잘 듣는 ‘국민’의 입장에서 어떻게 말릴 수 있겠는가.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겨울이 지나고 난 봄날을 묘사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 밖에는 봄이 와 있는데 우리는 겨울 안에서 머무적거리고 있다. 흔쾌한 봄날 아침 인간의 모든 죄는 용서를 받는다. 그런 날은 모든 악덕에 대한 일시 휴전의 날이다.”(p.464)

<월든/은행나무/2022>


 혹독한 겨울은 지났지만, 봄날의 햇살이 두껍게 얼은 각각의 얼음덩어리를 녹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어떤 이는 ‘올해가 지나면 괜찮을 거야’라고 말할 테고, 또 다른 이는 ‘아무리 지나도 봄날은 찾아오지 않을 거라’ 울부짖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그래도 봄은 다른 희망을 또다시 품어볼 수 있는 가능성의 계절이다’라는 사실이다. 아직 정해진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달이다.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할 수 있고, 미워했던 누군가를 다시 용서할 마음을 품을 수 있는 화해의 달이다. 봄이 한 해의 시작이라 참 다행이다. 올해의 겨울이 후회로 가득 찬 시간으로 채우지 않기 위해, 따스한 봄기운에, 또다시 희망의 바람을 실어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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