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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an 29. 2023

전문적인 퍼실리테이터로 성장하는 길

 얼마 전 링크 컨설팅에서 진행하는 퍼실리테이션 기본과정을 들었다. 지금 소속되어 있는 강사 모임에서 지원하는 올해 역량강화 프로그램이었다. 이미 예전에 쿠 퍼실리테이션에서 진행하는 이니셔티브 3일 과정을 수료했고 아는 내용들이 많았지만, 굳이 심화과정이 아니라 기본과정을 다시 수강한 것은 추천 때문이었다. 이 과정을 소개했던 분은 다른 사람이 아닌 링크 컨설팅의 주현희 대표의 퍼실리테이션 수업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경험하기를 원했다.


 설날 연휴가 끝나고 때 아니게 몰아친 눈과 혹한으로 피곤한 마음으로 참석한 수업이었다. 사실 큰 기대도 없었다. 하지만 주현희 대표의 퍼실리테이션은 메마른 땅바닥에 가느다란 물줄기가 파고들 듯이 조용히 마음속에 스며들었고, 마지막 3일째 되는 날에는 그분의 팬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하면 당당한 퍼실리테이터로 성장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을 해 오던 내 앞에 앞서 가는 멋진 ‘롤모델’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은 사전적인 정의로 ‘원활하게 진행’, ‘촉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퍼실리테이터는 ‘조직이 더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만은, 아직까지도 참여자들과 교류해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미팅 퍼실리테이션이 참 막막하고 어렵다. 물론 해내고 났을 때의 성취감은 콘텐츠 기반의 러닝 퍼실테이션과 비교할 수 없지만 말이다.


 에르디아 퍼실리테이터로 살아온 지 9년 차다. 처음에는 퍼실리테이션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고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막연히 일정한 프로세스에 따라 책을 읽고 아이들과 느낌을 나누고 사람과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이끌어내는 에르디아 토론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활자 중독’이라 불릴 만큼 책을 좋아해 관련 직업을 선택했지만, 함께 대하는 아이들의 책 읽기에 대한 높은 거부감은 항상 고민거리였다. 열심히 찾아낸 열쇠가 바로 이 ‘에르디아 비경쟁 토론’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이 방식이 러닝 퍼실리테이션 기반의 구성이라는 것을 알았다.


 ‘에르디아 비경쟁 토론(ERDIA)’의 명칭은 “ERNSTER DIALOG” 독일어의 약자에서 따온 ‘진지한 대화’라는 의미다. 지금 소속되어 있는 에르디아 대표님이 2008년에 경기 수원의 작은 동아리방에서 2명의 청소년들과 시작했다는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전국에 1000개의 에르디아 모임을 펼치겠다는 목표로 지금까지 활동해 오고 있다. 처음에는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는 순수한 재능기부 봉사 동아리로 시작했다가 현재는 순수한 봉사 동아리와 수강료를 받고 강의를 진행하는 공인 에르디아 단체로 구분이 되어 있다.

 

  공인 에르디아 단체는 지역 에르디아에서 최근 1년 동안 10회 이상의 주도적인 퍼실리테이션 경험과 공인에서 주최하는 책함성 기본과정과 심화과정을 수료해야 지원이 가능하다. 게다가 공인 퍼실리테이터 자격을 계속 유지하려면 지역 에르디아에서 10회 이상의 재능기부 수업은 꼭 해야 한다.   ‘선한 영향력’을 널리 펼치려는 에르디아 대표의 숨은 의도다. 그 영향으로 공인 에르디아 퍼실리테이터들은 지금까지도 몇 년째 지역 에르디아 재능 기부 수업을 이어오고 있다.


 아직은 애정과 선생님들에 대한 의리로 매달 재능기부 수업에 참여하고 있지만 참 버거울 때가 많았다. '대체 에르디아가 무슨 단체냐?'라는 가족들의 원성도 많이 들었다. 매달 1번의 정기적인 수업을 위해 참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다.


 기본적으로 퍼실리테이터는 참여자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믿는 바탕에서 프로세스를 진행한다. 신념은 거세게 출렁이는 물 위을 버티게 해 주는 디딤돌이다. 이 마음이 흔들리면 일을 진행할 수가 없다. 거기에 더불어 에르디아가 추구하는 또 다른 가치는 선한 영향력이다. 중립을 지키며 모든 사람이 한 방향이 나아가게 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어떻게 항상 ‘선한 얼굴과 마음’으로 모든 참여자들을 이해하며 대할 수 있을까?  참여자들이 항상 ‘자발적이고 성실한 학습자’이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 아닐까? 실제현장에서 접한 환경은 좋은 경우도 있지만 힘겨울 때도 많았다. 그럴수록 고민하는 점은 ‘어디까지 인내하고 이해해야 할까?’였다. 사실 이번 연수를 접하기 전 주로 선택했던 방식은 ‘친절함을 가장한 인내’였다. 몸을 낮추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기를 원했다. 그러다 보니 간혹 의뢰를 받는 과정에서 의뢰자의 무리한 요구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수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선한 영향력을 추구하는 탓이었다.


 3일째가 되는 날, 30분짜리 워크숍 시연 후, 주현희 대표는 에르디아 선생님들의 이런 점을 특이하게 여겼다. 그분은 에르디아 선생님들이 굉장히 힘든 상황에서 퍼실리테이션을 해 온 점을 공감하고 한 마디 덧붙였다. “퍼실리테이터는 리더이자 조력자입니다” 너무 고객들에게 맞출 필요도 없고 상황에 따라서 3P(Purpose 목적, Product 결과, Participant 참여자)에 따라 거부할 수 있어요. 이 일, 하루 이틀 할 것 아니잖아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막혔던 속이 ‘펑’ 터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퍼실리테이터로서 걸어온 길은 혼돈의 연속이었다. ‘난 그렇게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고, 이 길이 재미있지만, 가끔은 여러 가지 여건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았다. 처음에는 이 길이 ‘내 일이 아닌 것 같다’며 방황도 많이 했다. 뭔가가 확실히 잡히지 않는 흐릿한 지금 상황에서 뜨거운 열정과 신나는 흥으로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그분의 모습은  참 멋져 보였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무슨 일에 열정을 쏟고 싶은 지 잘 모르겠다. 어떤 일에 흥미가 있다면 금세 빠져버리는 ‘금세빠’로서 자기 일에 열정을 가지고 삶을 사는 사람이 좋다. 독서와 글 쓰는 일이 좋아서 하루가 바쁘게 사는 사람, 운동이 좋아서 빠져 있는 사람, 퍼실리테이션이 좋아서 고수 퍼실리테이터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든다.

 

 예전에는 꼭 한 길, 한 직업으로만 성공해야 갰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요즘은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은 생각이 크다. 현재 읽고 있는 조지 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 나왔던 작가의 경험들처럼 시간과 상황이 되는 한 제한을 두지 않고 많은 일에 도전하고 싶다. 뭐, 한 분야의 최고봉의 전문가로 성장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죽는 그날에는 많은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다.


 퍼실리테이터로서의 보다 나은 성장, 그리고 꾸준한 독서와 글쓰기, 올해의 목표는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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