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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Feb 06. 2023

고등학교 배정과 나비효과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는 어느 한 곳에서 일어난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에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이다. 주로 변화무쌍한 기후 현상을 설명하는 데 쓰인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간혹 사람의 인생에서 예기치 못한 일을 겪고 난 후 ‘그때 그랬어야 하는데….’라며 과거 일을 후회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과거의 사소한 행동이 현재나 미래의 큰 변화를 일으킨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라도 결과를 부정하고 싶은 인간의 안타까운 발버둥이다.


 얼마 전, 둘째의 고등학교 배정 결과가 나왔다. 결국 아들이 원했던 고등학교로 진학하지 못했다. 너무 예상치 못한 일이라 한동안 온 가족들은 충격으로 멍해 있었다. 가장 괴롭고 힘든 사람은 바로 둘째였지만, 나 역시도 그 결과를 마음 편하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날부터 ‘나비효과’에서의 작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과거에 있었던 고등학교 신청서 쓸 당시의 행동들을 자꾸만 곱씹어 보고 있다. ‘만약 신청서를 쓸 당시 둘째가 원하지 않아도 가까운 남고를 썼다면 어땠을까?’, ‘둘째를 좀 더 공부를 많이 시켜 특목고를 지원해 봤다면 어땠을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혹시나’라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지금 사는 지역은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아이들의 중학교 성적과는 상관없이 철저하게 추첨운에 따르고 있는 셈이다. 물론 둘째가 중학교 성적이 아주 뛰어나게 잘 나왔다면 기숙사형 특목고에 한 번쯤 지원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큰 애를 보내본 결과, 좋은 고등학교를 보냈다고 ‘만사형통’의 좋은 일만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어 일찌감치 둘째는 집 앞의 일반 고등학교로 보낼 그거라 마음먹은 터였다.


 학교 배정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집 앞의 고등학교를 보내면 ‘둘째의 공부 습관을 잡을까?’, ‘어떻게 하면 고등학교 1학년 초반에 등수를 잘 받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만 했었다. 애초에 둘째가 다른 고등학교에 갈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 결과를 확신했다.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니…. 하지만, 둘째는 원하는 고등학교에 가지 못했다. 배정된 곳은 집에서 꽤 거리가 있어 20~30분 이상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학교였다. ‘설마, 이 학교가 되겠어?’라며 빈칸 메우는 심정으로 적어 내려간 학교였다. 그랬다. 아들은 학군 내의 5 학교는 모조리 떨어지고, 12 구역 중 6 지망으로 신청한 학교로 배정되었다.


 둘째 학교의 예비소집일 날, 씁쓸한 마음으로 배정받은 학교가 어디에 위치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이와 함께 길을 나섰다. 학교 이름만 들어봤기에 가는 길도, 교통편도 모두 생소했다. 중간중간 서는 마을버스 정류장마다 예비 고등학생들이 오르며 버스 안에 설레는 소음을 더 했지만, 아이의 얼굴도, 내 마음도 한없이 어둡기만 했다. 왜 이렇게 모든 일이 다 암울해 보이는지…. 그렇게 우르르 아이들과 함께 내린 정류장, 맞은편 건널목을 보니 노랗게 염색한 2~3명의 남자아이가 삐딱하게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이 “일진인가?”, “일진”이라는 조심스러운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뭐야, 이 학교는 일진들이 많은 학교인가?’ 이미 마음속에서는 둘째가 울면서 학교 옥상으로 올라가 ‘돈을 뜯기고 있는 상상’이 어지럽게 펼쳐졌다. 아, 어떡하지.


 불안한 마음으로 둘째를 교문 안으로 들여보내고 근처의 카페에 앉아 따뜻한 바닐라 라테를 시켰다. 달콤한 음료가 추운 몸 안을 스르르 흘러 들어갔지만, 자꾸만 솟아오르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누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는 친구들이 거의 없는 학교에 적응해야 할 둘째에 대한 안타까움, 고등학교 3년 내내 버스를 타고 통학해야 할 아이에 대한 걱정. 그동안 아이에게 신경 쓰지 못했다는 엄마로서의 미안함 등등…. 나란 인간은 걱정으로 둘러싸인 ‘걱정 인간’이었다. 그저 둘째의 고등학교 배정이 어긋났을 뿐인데, 이 한순간의 삐걱거림에서 난 아직 생기지도 않은 모든 불안한 미래를 ‘퉁’ 치며 가늠하고 있었다. 둘째는 앞으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그렇게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한 시간 정도 카페에 앉아 있으니 둘째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까 교문에 들어가기 전보다 훨씬 밝은 목소리였다. “엄마, 어디 계세요?”


 학교 예비소집을 끝내고 나온 아들의 얼굴을 보니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엄마, 가서 보니까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도 한 명 있었어요.” “그래?”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그동안 마음을 까맣게 둘러쌌던 우울한 감정들이 조금 씻겨 나가는 듯했다. 이런 간사한 마음이란…. 어쩌면 그 친구의 집에서도 예상치 못했던 배정 결과에 우리 집과 같은 엄청난 감정의 폭풍들이 휘몰아쳤을 것이다. 같은 처지, 뜻밖의 상황을 맞이한 또 다른 동지가 있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안심이 될까?


 한층 가벼워진 마음으로 둘째와 함께 아침에 내린 마을버스 정류장과는 정반대의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아들에게 집으로 향하는 다른 버스 노선을 알려줄 참이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조금씩 주변의 풍경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일진들이 난무하는 어두침침한 곳처럼 보였는데, 다시 살펴보니 울창한 푸른 나무들로 둘러싸인 한적한 곳이었다. ‘음, 그래도 우리 동네보다는 공기가 좋겠네.’라며 새침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들과 10분을 걸어 시내버스 정류장을 향하는 샛길로 들어가니 우리 동네에서는 보기 드문 붕어빵 포장마차가 보였다. 재료비와 도시가스 상승으로 지금 사는 동네에서는 이미 예전에 사라져 버린 겨울의 간식 가게였다. ‘어, 이 동네에는 아직도 붕어빵 가게가 있네.’라며 무심코 지나치려는 데 둘째가 눈빛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봤다. 아들의 요청에 못 이기는 척 팥 3개와 슈크림 3개를 주문했다. 얼른 준비되기를 기다리며 붕어빵 기계만 노려보고 있었다. 붕어빵 가게 주인 할머니는 그런 손님들을 상냥하게 응대하며 붕어빵을 굽고 있었다. 어쩌면 기다리는 손님들이 재촉하는 눈빛에 대충 익힌 붕어빵을 건넬 수도 있으려만, 할머니는 “조금만 기다려요. 아주 맛있게 구워 드릴게요.”라며 따뜻하게 웃었다. 덕분에 아들과 나는 근래에 드물게 바삭하고 맛있는 붕어빵을 맛볼 수 있었다. 게다가 꽁꽁 얼어붙었던 어두운 마음들이 따뜻한 붕어빵 하나, 할머니의 친절한 말에 조금씩 녹아내렸다.


  참,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요상하다. 지금까지 둘째의 고등학교 배정 이후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 아들은 원하는 고등학교에 가지 못한 상태이고, 그 학교가 여전히 집에서 멀다는 사실조차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둘째와 같은 동네의 친구를 학교에서 만났다는 사소한 ‘나비의 움직임’ 하나가 조금씩 긍정적인 마음을 부풀리고 있다. 앞서 고등학교 배정 결과를 받았을 때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요동쳐서 암울한 미래를 만들었을 때와 반대로 말이다. 참, 나란 인간이 이렇게 가볍게 마음이 바뀔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그렇게 억지로라도 긍정 회로를 돌리고 싶은 의지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언제까지 어둡고 부정적인 마음으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갈무리하기 싫다는 사실이다.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가는 것은 여전히 두렵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길을 가면 또 다른 길이 보이기 마련이다. 이제야 생각났다. ‘나비효과’의 진정한 의미는 ‘사소한 변화가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말이 아니다’라는 것을 말이다. 이 말의 핵심은 ‘아무도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가 없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반복되어 ‘온 세상이 내 것인 양’ 행복 속에 푹 파묻혀 지낼 때도 있고, 때로는 절망 속에 허우적대며 괴로울 수 있다. 사람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세상일이 내 마음대로 흘러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하루하루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뿐이다. 누가 알까? 둘째의 이 학교 배정이 엄청나게 행운으로 작용할지 말이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감정들을 받아 마음의 키를 위아래로 흔들며 우울한 감정들을 까불린다. 우울한 감정들은 저 멀리 날려 보내고 좋은 일들만 남아라. 둘째야 힘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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