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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an 17. 2023

내 집착을 막기 위한 '믿는다'라는 말

 아이들이 사춘기에 들어선 이후, 억지로라도 자주 하려고 하는 말이 있다. 바로 “난 널 믿어”라는 말이다. 물론 안다. ‘현실의 사춘기 아이들이 모든 것을 척척 다 알아서 할 수 있다’라고 믿는 엄마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바보일 것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어쩌겠는가? 서로 마음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나는 오늘도 ‘믿는다’라는 말을 마음에 콕콕 새겨 넣는다. 속으로는 미심쩍은 의심이 가득해도 억지로라도 그렇게 마음을 먹으려고 노력한다.


 “우리 아들들, 엄마는 너희들이 어떤 일을 하든 스스로 길을 잘 찾아가리라 믿는다”

이 문장은 앞으로 있을지 모를, 아이들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싶다는 집착을 막기 위한 나만의 주문이다.


 믿음은 생각보다 키우기 어렵다. 마음속에 자그마한 의심의 틈이 있어도 금방 무너지고 마는 것이 이 감정이다. 핸드폰과 게임기 등 원하는 것들을 사줄 때마다 “정해진 시간에만 할게요”라는 아이들의 수많은 다짐을 들었고 또 얼마나 실망했던가? 뭔가를 약속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이번에는?’라는 믿음과 ‘에이, 그 녀석들이?’라는 의심이 한꺼번에 부풀어 올랐다. 이렇게 매번 실망만 하는 나지만, 매일 아이들에게 “믿는다”라는 말을 내뱉고 믿어주려 노력한다. 굳건히 버티고 앉아 공부만 하기에도 불안한 시기, 아이들에게 베풀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은 그것뿐이다.


 나의 사춘기 시절,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의 말이었다. 주위에는 왜 그렇게 공부를 잘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지…. 중학교 시절 아무리 좋은 성적을 받아도 부모님의 반응은 한 가지였다. “잘했네. 그런데,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빠 동료의 딸 00은 이번에 1등을 했다더라. 너도 다음에는 그런 목표로 더 열심히 공부해라.” 주변에는 공부 잘하는 ‘넘사벽’의 아이들이 넘쳐났고, 설렁설렁, 아무 계획 없이 마음이 내키는 대로만 공부하는 나는 부모님 기대의 속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진학 이후 성적이 떨어지자 부모님은 ‘불신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네가 앞으로 뭘 할 수 있겠니?” 이 말은 자주 듣던 단골 레퍼토리였다. 어쩌다 주변 사람에게서 내 가능성과 능력에 대한 칭찬을 들어도 부모님의 반응은 한 가지였다. “얘가요? 에이, 설마요.” 그럴수록 나는 부모님의 칭찬에 집착했고, 믿음에 목말라했다. 그러다 점차 스스로 지쳐 부모님의 마음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을 멈추었다.


 혼란했던 사춘기 시절,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난 네가 어떤 길을 선택하든 무조건 네 결정을 믿는다”라는 말이었다. ‘공부만 하면 되는 데 왜 그걸 못하니?’라는 말보다는 ‘힘들구나. 무엇이 그렇게 힘드니?’라는 말과 ‘못 믿겠다’라는 못마땅한 시선보다는 ‘우리는 항상 널 믿는다’라는 굳건한 믿음의 눈길이 그때의 나에게 아주 필요했다.


 큰 애가 고3, 둘째가 고1에 진입한 올해, 난 하루에도 몇 번씩 ‘이게 과연 맞을까?’ 고민한다. 혼자 공부하고 싶다고 학원을 끊은 큰 애와 매일 학원 가기 싫다고 툴툴거리는 둘째를 보며 ‘이제 고등학생이니 정신을 바짝 차리라’라고 다그쳐야 할지,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믿음’이란 이상적인 주문으로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데로 내버려 둬야 할지 잘 모르겠다.


 큰 애가 고3이 된 이후 수많은 이야기가 내 귀에 쏙쏙 들어온다. ‘고3쯤 되면 대치동으로 학원을 가야 한다’, ‘겨울방학 때는 대치동 학원가에 오피스텔을 단기간 얻어서 아이가 편하게 수업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더라’, ‘고3 엄마는 미리 학원 정보와 공부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해 줘야 한다.’ 등등  예전 같으면, ‘에이 설마’라며 무시하고 말았을 이야기들이다. 그런 정보들을 마냥 귀 닫고 눈 감으며 모른 척할 수 없는 이유는 ‘혹시나’하는 마음 때문이다. ‘혹시 대치동 학원에 못 가서 나중에 후회하는 것은 아닐까?’ ‘혹시 미리 정보를 알아주지 못한 엄마 때문에 아이가 원망하는 것은 아닐까?’ 아직은 가지 않은 길, 어찌 될지 모르는 미래의 바람 앞에서 불안한 엄마는 쉼 없이 흔들린다.


 그럴 때마다 자주 남편이랑 이야기를 나눈다. 하루 동안 얻었던 불안들, 고민을 마구 쏟아내고 나면 조금은 마음이 안정된다. 뭐, 남편이라고 뾰쪽한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칭, 타칭 ‘아들 바보’인 남편은 오히려 아이들의 교육 문제에서만큼은 확고한 교육관을 가지고 있다. “학원 때문에 아이들을 너무 힘들게 하지 마라.”,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아이들의 몫이다.”라는 생각이다. ‘대한민국의 교육계’를 모르는 너무 이상적인 생각이라며 불평을 하지만, 가끔은 그런 속 터지는 대답들이 불안한 나에게는 위로가 된다.


 얼마 전, 앞으로 대학교에서 공부할 전공을 고민하는 큰 애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네가 원하고 공부하고 싶은 진로를 선택하라’라고. 다른 주변 사람들의 입김에, 부모가 어쩌다 내뱉는 욕심 어린 말에 흔들리지 말고 원하는 일을 하라고.


 오늘도 아이들에게 입 밖으로 내뱉을 ‘엄마는 우리 아이들을 믿는다’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정성스럽게 준비한다. 알맹이 없는 쭉정이처럼 ‘진실한 믿음의 마음’ 없이 팔랑거리는 말일지라도 ‘믿음’이라는 말을 소리 내 말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는다.


 “엄마는 믿는다. 너희들이 어떤 일을 하든, 어떤 길을 선택하든 모두 다 좋은 경험이 될 테고 다 잘 될 것이라고. 계속 너희들을 믿는 엄마가 되도록 열심히 노력할게.”

 

 그렇게라도 말을 해야, 마음을 먹어야 이 불안한 시기가 잘 지나갈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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