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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Dec 05. 2022

<17세의 나레이션>과 2022년의 나

 나의 십 대 시절은 어땠을까? 얼마 전 이다혜 기자가 "나의 십 대는 무엇으로 남았나"라는 제목으로 쓴 <17세의 나레이션>의 서평을 읽었다. 이 만화는 강경옥의 작품으로, 중고등학교 시절, 엄청나게 집중하며 읽었던 책이다. 처음에는 ‘어, 만화책도 서평이 될 수 있나?’라는 호기심으로 서평을 읽었다가, 이내 몇십 년 전 행복했던 추억 속으로 흠뻑 빠져들었다.


 그 당시 만화방과 오락방이 불량한 청소년들이 몰려드는 집합지로 인식되던 시절, 만화책과 게임은 공부를 시키려는 부모님들이 가장 싫어하는 ‘기피 1순위’이었다. 하지만 두 살 위의 오빠는 부모님 몰래 동네 게임방에서 동전을 넣고 하던 게임에 심취했고, 나는 빌려보던 만화책들에 푹 빠져 있었다. ‘우리에게 금지된 것들’이 왜 그렇게 매력으로 보였는지 모르겠다. 숨이 막히도록 답답하고 암울한 사춘기 시절, ‘유일한 오아시스’ 마냥 파고들었던 만화가가 바로 강경옥이었다.


 “나의 십 대는 무엇으로 남았나”라는 서평에서 이다혜 기자는 이 작품이 '국산 청소년 소설이 부재하던 시절, 한국에서 둘도 없이 귀한 성장만화’였다고 설명한다. 그 당시 '순정만화라면 모두가 연애 물이라며 깎아내리던' 오빠도 유일하게 인정하는 순정만화가가 바로 강경옥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 만화가는 참 독특한 작품세계를 가진 작가이다. 그녀는 당시의 다른 순정만화가와 달리, 아름다운 그림체에 힘쓰기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에 치중하며 이야기를 전개했다.

 

 <17세의 레이션>도 얼핏 보면, 17세인 주인공 세영의 소꿉친구 현우를 향한 짝사랑 이야기로만 읽힌다. 하지만, 만화책 장면 하나하나에 표현된 세영의 대사들을 한 구절씩 꼼꼼히 읽어 내려가면 이내 그 등장인물의 마음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특히 강경옥은 그 당시 유행했던 가요와 주인공의 대사를 적절히 연결하며 인물들의 마음에 깊이 젖게 만드는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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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너는 내게 묻지만

대답하기는 힘들어

너에게 이런 얘길 한다면

너는 어떤 표정 지을까

언젠가 너의 집 앞을 비추던 골목길 외등 바라보며

길었던 나의 외로움에 끝을 비로소 느꼈던 거야.


<사랑일 뿐이야.-이상우>

ㅡㅡㅡㅡㅡㅡㅡㅡ


 특히 만화 속 거리에서 울려 퍼지던 그 당시의 유행가 <사랑일 뿐이야>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짝사랑의 아픔에 힘들어하던 세영의 마음을 잘 드러내는 장치였다. 세영은 역시 이 유행가의 가사를 하나하나 음미하며 '사랑 노래'에서 그녀의 인간관계로의 성찰로 발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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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이잖아.

 이건 남녀의 사랑을 노래한 거지만

 난 결국 인간관계와 같다고 생각해.

 애정도, 우정도…. 사람의 만남도

 언제나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거 같아.

 좋아하고 상처 입고 미워하고 분노하고

 실망하고 감동하고 슬퍼하고


 그래서... 어느 노래에서든

 자신에게 맞는 가사를 골라낼 수 있을 거 같아.

그래서일까?

가끔은 분위기 있는 노래를 들을 땐

그 당시 감정 상태 때문이지만 눈물이 날 때가 있어.

그 순간은 그 음악의 주인공인 것 마냥...

 하지만 기분 좋은 느낌이야, 그건...

 

<17세의 나레이션, 강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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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당시 17세였던 내가 <17세의 나레이션>의 세영에게 흠뻑 빠졌던 이유는 그녀가 완벽하지 않아서였다. 인간관계에 서툴렀고 삐걱거리며 괴로워하던 모습에서 난 동질감을 느꼈다. 그녀가 이상우의 <사랑일뿐이야> 노래를 들으며 ‘그 음악의 주인공인 것 마냥’ 그 상황에 젖어들었다면, 나 역시도 매사에 무뚝뚝하고 서툴던 만화 속 세영이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에서 다시 일어설 용기를 찾으려 노력했다. 매사가 서툴고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하기가 너무도 무서웠던 그 시절이었다. 부모님의 기대에 하나도 부응하지 못하는 나는 매일 나 자신을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만 생각했다.


 17세의 열등감 가득했던 내가 지금은 만화 속 세영과 현우의 나이와 비슷한 사춘기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다. 이제는 나 역시도 한없이 크고 높아만 보였던 그 당시 부모님의 나이가 된 것이다. 현재의 나는 미래를 위해 ‘공부해라’ 다그치던 부모님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얼마 전 노트북을 반납하고 시험공부를 했던 둘째의 최종 성적이 나왔다. 예전의 성적보다는 분명 오르기는 했지만, 막상 수치로 된 결과를 보니 살짝 아쉬움이 밀려왔다. “몇 점만 올렸으면 더 좋은 점수가 나왔을 텐데….”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왔다.


 아이의 상황을 온전히 바라보기보다는 오로지 성적과 결과만을 보니 마음과 다르게 자꾸만 욕심이 눈앞을 가린다. ‘하라는 공부를 하지 않고 게임에, 웹툰에 빠져들던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불안하고 걱정이다. 30년 전의 '17세의 일상'과 30년 후의 '17세의 일상'이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랍다. 매번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동안 나도 모르게 길러진 ‘어른의 마음’이 자꾸만 훼방을 놓는다.


 10대였던 과거의 나는 40대가 된 지금의 내게 무슨 말을 할까? ‘지금 잘하고 있다’라고 격려를 할까? 아니면 ‘사춘기였던 너를 생각해’ 보라며 다그칠까? 다시 한번 더 <17세의 나레이션>을 읽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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