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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Mar 06. 2023

이제 엄마도, 고3 엄마의 마음으로 바뀌셔야죠

‘기상 30분 전 곤히 잠든 친구를 깨울 적마다 나는 망설여지는 마음을 어쩌지 못합니다. 포근히 몸 담고 있는 꿈의 보금자리를 헐어버리고 참담한 징역의 현실로 끌어내는 나의 손길은 두 번 세 번 망설여집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2022/돌베개>


 올해 주말 아침은 항상 아들의 시끄러운 핸드폰 노랫소리 알람으로 시작된다. 요즘 유행하는 팝송부터 고등학생 아들이 듣기에는 어색한 트로트, 잔잔한 발라드까지, 즐겨 듣는 노래 목록에 있는 가수들이 돌아가면 목을 터져라 노래를 불러댄다. 그런데도 아들 녀석은 도통 잠에서 깰 줄을 모른다. 두꺼운 방문 너머 거실에까지 노랫소리가 이렇게 시끄럽게 울리는데도 말이다. 그럴 때면 바로 지척의 알림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잠에 취해 있는 아들을 깨워도 될지 매번 고민이다. 저렇듯 행복한 꿈의 세계에서 고단한 공부의 현실로 불려 들려도 될지, 항상 망설여진다.


 “엄마, 이제 저도 고3이니, 그냥 막 깨우셔도 돼요.”

 아들은 고3이 되고 난 후 주말마다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몇 번의 주말 동안 정해진 시간에 매번 내가 잠을 깨우지 않으니 건넨 말이다. 몇 번 형식적으로 아들을 깨우다 너무 곤히 자는 모습에 조용히 이불만 덮어주고 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솔직히 평일에는 빡빡한 공부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주말에 몰아서 부족한 잠을 충전하는 아들이 너무 안쓰럽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은 옆에 곤히 잠든 동료를 깨우며 느낀 감정을 ‘망설임’이라 표현하며 사색을 했다. 나 또한 그런 마음을 고3이 된 아들에게 느끼고 있다. 큰 애는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을 나이, 19살, 그리고 입시전쟁 최전방에 다다른 우리나라의 고3이다.


 흔히들, 아이가 고3이 되면 부모와 합을 맞춰 1년을 잘 보내야 한다고들 말한다.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벙어리 3년’의 지독한 인내의 시간이 아이가 고3이 되는 이 한 해 속에 모두 함축되어 있다. 긴 여행도, 왁자지껄한 가족 행사도, 모두 수능 뒤로 미루었다. 사실, 아이가 고3이 되기 전만 해도 유난스러운 고3들의 일상 이야기를 들으면, ‘뭐, 굳이 저렇게까지 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공부야, 아이가 하는 거지, 엄마가 할 게 뭐 있나?’라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막상 아이가 고3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니, 모든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아직은 오지 않은 미래,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 기간에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의 연속이다.


 얼마 전에 대한민국 입시환경을 배경으로 한 로맨틱 드라마 <일타 스캔들>이 끝났다. 그동안 무거운 연기만 했던 전도연이 오랜만에 가벼운 로맨스 코미디를 연기한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였다. 드라마를 보면 흐뭇하게 미소 짓게 했던 부분은 정경호와 전도연의 풋풋하고 아름다운 로맨스였지만, 계속 곱씹어 보게 만든 장면들은 아들 나이 또래의 친구들이 치열하게 공부하는 환경과 그런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는 엄마들의 모습이었다. 외동딸의 의대 입시를 위해 '돼지엄마'처럼 주위 엄마들을 이끌며 밤낮으로 입시 뒷바라지에 힘쓰는 수아 엄마, 학교 시험지 유출까지 해 가며 아이의 성적에 독하게 매달렸던 선재 엄마, 아이의 행복을 최고로 생각하며 전적으로 아이에게 모든 결정을 맡기는 해이 엄마 등등 저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주위에서 찾으면 찾을 수 있는 엄마들의 모습이었다.


 그런 엄마들을 보면서 ‘뭐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라고 흉을 보고 싶다가도, 그런 절실함이, 그런 절박함이 너무나 이해가 되기에 마냥 욕을 할 수는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이들과 엄마들을 둘러싸는 기운은 '불안감'이다. 드라마에서는 아직 잡히지 않고 또렷하지 않은 미래로 아이들도 엄마들도 '블랙독'에 쫓기면서 살고 있었다. 어쩌면 TV 전원을 끄고 난 뒤에도 계속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는, 그 어두컴컴하고 두렵고 막연한 ‘불안감’ 말이다.


 드라마 속에서의 엄마들 중에서 가장 마음이 쓰였던 등장인물은 바로 선재 엄마이다. 어쩌면 그 드라마에서 ‘진짜 살인자’보다 더 ‘빌런’(악당)처럼 보였던 인물이었다. 아이 입시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았고, 어떤 상황도 입시보다 중요하지 않았던 엄마. 그녀가 채워야 했던 ‘행복한 가정’은 자칫하면 언제 깨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투명한 유리 속 세계였다. 남에게만 보이는 화려한 세상을 위해 선재 엄마는 모든 사소한 인정, 행복들을 포기한 채 무섭게 내 달리기만 했다. 그 외에 삐걱거리는 위험 신호들은 모두 무시한 채, 그녀는 너무도 위태롭게 그저 버티고 있었다. 유출한 시험지로 죄책감에 빠진 아들이 도움을 처했을 때조차도 모질게 밀어붙이기만 했던 선재 엄마였다.


 “넌 잘 몰라, 이 사회가 얼마나 노골적이고 원색적이고 직업적 포지션을 중시하는 덴지, 선재야, 조금만 거의 다 왔어.”


 “그래서 엄마는 행복해요? 엄마는 좋은 포지션에 있는 사람이라서 그래서 행복하냐고요?”
<일타 스캔들 14회 중>


 그래서일까? 마지막 종영에서의 극단까지 치달았던 선재 엄마와 큰아들의 화해가 너무 다행스럽고 눈물이 났다. 사실 드라마 속 엄마들의 모습이 그네들의 ‘허영심’과 ‘욕심’으로만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습만으로 엄마들이 자기 생활을 포기하며 아이들을 뒷바라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밑바탕에는 언제나 아이들의 행복을 비는 마음이 깔려있다. 물론 표현 방식이 좀 과도하게 표현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적어도 선재 엄마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품었던 신념, 생각들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다.


 올해 수능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요즘, 주변에서 만나는 고3 엄마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감정의 카멜레온 같다. ‘아이가 집에서 너무 공부를 안 한다’, ‘열심히는 하는데 성적이 잘 안 오른다’ 등등 다양하게 아이의 흉을 보고, ‘자기 공부는 자기가 해야지’라며 체념을 하다가, 다시 고3 아이의 체력을 키우는 정보에 귀를 쫑긋 세우며 열정적으로 메모를 시작한다. 이런 엄마들도 정작 아이들 앞에서 '괜찮아'라고 의젓하게 다독거릴 뿐이다. 혹 조바심 나고 불안해하는 본인의 모습이 아이들의 사기를 꺾을까 두려워 ‘애써 강한 척’, 흉내를 내기 바쁘다.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은 어떤 엄마들은 아이의 모자란 성적을 올릴 수 있는 학원을 알아보느라 분주하다. 내신 점수가 걱정되는 엄마들은 마지막 보루일 수 있는 수시논술 학원 정보를 수집하느라 정신이 없다. 올해의 입시 정보를 꾸준히 공부하기도 하고 우리 아이가 갈 수 있는 학교와 전공을 찾느라 머리가 복잡하다. '고3 때 공부는 원래 아이가 하는 거다. 엄마가 크게 신경 쓸 거 없다'고들 하지만, 이때만큼은 그런 생각이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힘겨워하는 아이를 위해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주고 싶은 것이 엄마의 마음이다. 나 역시도 지금 입시의 최전선이 아니었다면, 대입 입시가 이미 지난 입장이라면, ‘네 공부는 네가 해’라고 한 발짝 뒤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그 마음이 잘되지 않는다. 매일 힘들게 공부하는 큰 애를 보고 있자니 무엇을 도와줘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고3이 되면서 점점 말라가는 듯한 아들의 모습을 보니 자꾸만 마음이 아프다. 겉으로는 “괜찮다, 잘 먹고 있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할까? 그래서였다. 평일에 못 자는 잠을 좀 보충하라고 일부러 늦게 깨우고,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 공부하겠다는 아이를 불러 영화를 보고, 외식을 했다. 이런 행동 자체가 아들의 잠재적인 불안감을 자극한 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런 엄마를 보면 아들은 매번 엄마의 기분이 상할까 봐 겉으로는 '괜찮아요. 좋아요'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녀석의 진심은, "그래도 엄마, 이제 저도 고3이니까 너무 그렇게 내버려 두시면 안 돼요. 엄마도 고3 엄마로서의 마음으로 바뀌셔야죠.", 슬며시 대화 끝에 덧붙이는 이 말이었을 것이다.


 아들이 혼자서 공부하겠다고 학원을 끊은 지도 3개월이 지났다. 혹 다른 가까운 학원을 알아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지만, 그 녀석은 한사코 혼자 공부할 수 있다고 큰소리다. 드라마 <일타스캔들>에서 일타 강사가 '혼자서 공부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라고 이야기할 때마다, 주위 친구들이 대치동으로 학원을 간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불안하다. 우선 아들의 선택이니 믿고 따르고 있지만, 무엇을 도와줘야 할지 잘 모르겠다.

 

 작년 선배들의 수능이 끝나고 고3 아이들을 둔 친구들끼리 물고기 반지를 맞췄다. 일명 ‘고3 반지’라고 불리는 반지이다. ‘이제 드디어 고3 엄마’라는 마음으로, 적어도 올해만큼은 아들의 시간에 집중하겠다는 강한 다짐으로 맞춘 조그만 새끼손가락의 반지였다. 일반 물고기 모양, 혹은 티아라를 쓴 물고기가 엄마의 몸 쪽으로 향하는 모양의 반지를 새끼손가락에 끼면 수능을 치르는 아이에게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정작 이런 미신 따위를 믿지 않는 아들은 ‘괜히 쓸데없는 곳에 돈을 썼다’라며 툴툴거리지만, 보통 때는 믿지 않는 샤머니즘의 힘이라고 빌려서라도 마음속의 불안을 잠재우고 싶은 안타까운 엄마의 마음이다.


 2023년 11월 16일 목요일, 올해 수능일, 이번 해의 모든 일정은 아들의 그 시험에 맞춰져 있다. 물론 수시 합격이 되면 아들의 입시 해방일이 더 빨리 다가오겠지만 말이다. 요즘은 눈치 빠른 아들이 불안한 엄마의 마음을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도록, 겉으로는 ‘씩씩하고 대수롭지 않게’, 그리고 ‘무심한 척’ 흉내를 내며 생활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들킬 어설픈 연기로 말이다.


 아마, 이번 주말에도 핸드폰 알람을 듣지 못하고 곤한 잠에 취한 아들을 안타깝게 바라볼 것이다. ‘자고 있더라도 무조건 깨워달라'라고 이야기하는 아들의 마음속에는 얼마나 커다란 불안감이 바탕에 깔려있었을까? 그럼에도 난 ’깨울까? 말까‘라고 수백 번을 더 망설이다 결국 아들을 깨우지 못하고 내버려 둘 것이다. 몇 시간 뒤 아들은 “엄마는, 진짜! 이제는 정말 고3 엄마로서 마음을 가져야 해요!”라고 툴툴거리며 일어날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주말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자면 좋겠는 걸. 어서 빨리, 공부하다 지쳐 잠든 아들의 ’꿈의 보금자리‘가, 놀다가 지쳐 잠든 ’꿈의 보금자리‘가 되었으면, ’다시 공부하기 위해 깨우는‘ 손길이 아니라 ’홀가분하게 친구랑 놀러 가라‘고 마음껏 흔들어 깨우는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한시라도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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