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쉴 새 없이 때리는 따귀 속에서 우선 견디기
2023년 3월 전국 모의고사
이 세상에 우주가 쉴 새 없이 때리는 운명의 따귀 속에서 잘 버티고 견뎌 결국 성공적인 삶을 쟁취한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잘 모르겠다. <하루 쓰기 공부>의 브라이언로빈슨은 ‘우주가 때리는 따귀 속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견하여 자신만의 보물을 캐보라’고 말한다. 그게 쉬운 일이면 많은 사람들이 저토록 흐린 얼굴로 자신의 삶 앞에서 빌빌거리며 서 있을까?
우선은 그 역경을 버티고 견디는 것까지는 해볼 만하다.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겠지’, ‘이 또한 지나갔지’라는 마음으로 애써 받았던 생채기를 숨기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 상처를 또렷이 들여다보고 도려내며 새살을 돋게 하는 것은 또 다른 힘겨운 노동이다. 가능했다면 이름이 알려진 몇몇 소수의 영웅들 외에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빛나는 ‘승리자’로서 기다란 역사의 두루마리에 기록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수십만 년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아직까지도 알렉산더, 나폴레옹, 소크라테스 등, 몇몇 인물들이 우리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자신 앞의 역경을 똑바로 바라보고 넘어서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오히려 가상세계 속 소설의 주인공들이 더 우리네 현실을 잘 드러낸다. 지나친 부성애로 임종 직전까지 두 딸의 얼굴을 보지 못했던 고리오 영감, 가족들을 위해 사방을 다니며 힘들게 떠돌이 외판원 생활을 하다가 끝내 벌레로 변해 ‘팽’ 당한 그레고리, ‘안 하는 것을 택하겠습니다’라고만 외치다 결국 감옥에서 죽은 바틀비 등, 이런 인물들이 역사 속의 영웅들보다 우리네 이야기이자 실시간 사연들이다. 뛰어난 재능, 넘쳐나는 부와 명예, 그런 것들은 오로지 저 너머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뿐이다.
앞서 언급했던 거창한 악재가 아니더라도 소소한 걱정들이 넘쳐나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각기 처한 상황에 따라 ‘돈 걱정’, ‘건강 걱정’, ‘아이들 걱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그래도 끝이 보이는 걱정들, 고민들은 견딜 만하다. ‘도전’이 아니라 ‘인내’가 더 맞는 불안과 걱정들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들이다.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2023년 3월 23일, 전국 고등학생들의 첫 모의고사가 실시된다. 갓 고1이 된 둘째 녀석은 “졸리다”라고 연신 툴툴거리며 집을 나갔고, 고3이 큰 애는 몇 주 전부터 ‘떨린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겉으로는 ‘3월 모의고사’보다 ‘6월 모의고사’가 더 중요하고, ‘9월 모의고사’가 수능과 유사한 실전시험이라며 밑밥을 깔아 두었지만, 막상 3월 모의고사의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녀석들도 나도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입시 전문가들은 ‘이번 평가를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실력을 판단하고 향후 맞춤형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전국 고등학생 입시생들의 점수가 만천하에 까발려진다. 그리고 그 성적이 미래의 진로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한 자 한 자 풀어내는 아이들의 손가락이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릴 것이다. 이리보고 저리보아도 보이지 않는 정답들, 풀어야 할 문제들이 태산처럼 쌓인 시험지, 오늘 그 녀석들이 제정신을 붙들고 돌아올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더불어 이후 어떤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자가 아닐까?
캄캄한 입시 터널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한 녀석은 이제 몇 개월 뒷면 그 어두컴컴한 입시터널을 지나 환한 빛으로 나갈 것이고, 또 한 녀석은 칠흑처럼 어두운 입시 아궁이 속으로 떠밀리듯 걸어갈 것이다. 지금 세상에는 주의를 기울어야 할 여러 가지 일들로 시끄럽지만, 입시생들을 둔 부모들은 눈과 귀를 꼭 닫은 채 오로지 아이들만 바라보고 있다. 혹 윗분들의 ‘실험정신’으로 또다시 아이들의 입시 정책이 바뀌지나 않을지,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늘어나지나 않을지 노심초사하며 웅크리고만 있다. 입시생 아이들을 두기 전에는 ‘우리나라 교육계가 어떻고’, ‘이런 암기위주의 시험 따위는 다 없어져 버려야 해’라는 신랄한 발언들을 소신 있게 해 댔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사소한 말 한마디, 반응 하나하나가 일으킬 나비 효과를 알기에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마냥 모른 척 해도 좋을지는 확신이 가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의 옛날 수험생시절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현재의 행태는, 우주가 내리는 역경들 속에서 실제로 외쳐야 했던 수많은 학부모들이 그저 견디고 버티기만 했던 침묵에 대한 결과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생채기를 다시 들여다보고 치유할 용기는 없다. 지금 말고, 우리 아이들의 입시 때 말고, 다른 시기에 바뀌라고 간절히 외치고 싶다. 이미 매번 바뀌는 정부의 교육전문가들이 외치는 너무나 많은 실험들이 우리들의 시험제도를 스쳐 지나갔다. 그때마다 별다른 결과를 얻지 못했고, 앞서 진행했던 교육정책들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매번 휴지조각이 되었다. ‘백년지대계’니, ‘교육이 미래의 자산’이라는 말은 정치에 따라 그들의 입맛에 맞게 다른 뜻으로, 다른 시험제도의 결과물로 바뀌었다.
몇 시간 뒤면, 이제 아이들의 얼굴과 말에서 오늘의 시험 결과를 알게 될 것이다. 그 순간 난 어떤 표정으로 아이들을 대해야 할까? 수능까지 D-238일, 쑥과 마늘을 씹는 곰의 심정으로 이 역경을 헤쳐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