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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Mar 31. 2023

숨통이 트이는 바람

 날카로운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여름, 울창한 나무 아래에서 맞는 시원한 바람 한 조각은 짜증 나는 날의 기억을 한순간에 바꿔준다. 그 속에서는 느끼는 바람은 청량하고 맛있다. 여름이면 찾게 되는 우유빙수의 알갱이 하나하나가 공기로 변한 듯, ‘싸아’하고 불어오는 한줄기의 바람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시원하고 달콤하다. 그런 바람이 있기에 힘겨운 하루가 그런대로 견딜만한 시간으로 변한다. 그렇게 마음의 추억으로 조금씩 쌓인다.


 황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다가 갑자기 ‘바람’이라는 단어에 꽂혔다. 휴남동 서점의 영주는 이렇게 말한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거든. 아, 이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바람을 좋아해서 얼마나 다행인가. 저녁 바람만 맞으면 숨통이 확 트이는 기분이 들어 얼마나 다행인가. 지옥엔 바람이 없다는데 그럼 여기가 지옥은 아닌 듯하니 또 얼마나 다행인가. 하루 중 이 시간만 확보하면 그런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우리 인간은 복잡하게 만들어졌지만 어느 면에선 꽤 단순해. 이런 시간만 있으면 돼. 숨통 트이는 시간. 하루 10분이라도, 한 시간이라도, 아, 살아 있어서 이런 기분을 맛보는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시간.”(p.194-195)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황보름, 클레이하우스, 2022)


 느닷없이 영주의 말에서 뻗어나간 상념은 ‘바람’이라는 말의 어감이 아니라 ‘숨통이 확 트이는 기분’이라는 표현에 ‘턱’ 하니 멈췄다. 나도 이렇게 꽉 막힌 감정이 풀리는 시간은 언제일까? 여러 가지 고민들로 속이 많이 답답해지는 올해이다.


 큰 애가 고3이 되고 보니 그동안 무시했던 여러 가지 불안들이 구체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마냥 믿고만 있었던 아이의 내신도 그 녀석이 원하는 학교의 학과를 지원하기에는 부족하다. 수시를 지망하기에는 내신이 까딱까딱하고 정시를 기대하기에는 내 불안이 들썩들썩한다. 아무리 아이를 믿고, 학교를 믿으려 애써도 결국은 걱정만 한가득 남을 뿐이다. 그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시간 날 때 아이가 원하는 학교, 학과 정보들을 살펴본다.

 

 이렇게 올해의 입시 정보를 수집하는 나를 보는 주변에서의 반응은 두 가지다.  ‘아이 공부는 아이가 알아서 해야지’와 ‘그래, 엄마가 챙겨줄 수 있는 것은 챙겨줘야지.’라는 반응이다. 항상 시끄러운 주변의 반응에서 중심을 잡기가 참 어렵다.

 

 얼마 전에 종영한 <일타 스캔들>에 나온 입시생 엄마들은 너무 아이들에게 ‘올인’하고 집착하는 이미지로 그려졌다. '인과응보'처럼, 극 중에서 ‘치맛바람’, ‘콧바람’을 일으키며 아이들을 위하는 엄마들은 꼭 안 좋은 결말을 맞거나, 아이들에게 배신을 당했다. 그런 엄마들의 불행을 보는 것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치맛바람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지녔던 불안을 이해하는 탓이다.

 

그런데 다들 왜 그 불안의 원인들을 살피지 않는 걸까? 왜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근원적인 원인은 살피지 않고 오로지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만 비난할까? 또 속이 꽉 막힌다. 올해는 해결되지 않는 불안으로 또 답답증이 쌓인다.


 마음에 시원한 바람을 채울 시간이다. 불안이 극도로 쌓일 때쯤, 일주일 한 번, 올해 고3인 큰 애 친구들의 엄마들과 수다를 떤다.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아도,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같이 만나서 이야기하고 운동하고, 커피를 마시는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다. 그들과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난 후, 동급생 엄마의 자격으로 만났다. 아이들에 대한 비슷한 고민들, 공부와 앞으로의 일에 대한 걱정을 서로 나누다 우리는 어느새 같은 길을 가는 동지가 되어 있었다. 또 그렇게 대한민국 고3 수험생 엄마들이 되었다. 그 많은 수다 속에는 실질적인 고민들을 해결할만한 단서는 아무것도 없지만, 그저 함께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확 트이는 듯하다.


 엄마들의 이런 불안을 해소할 날은 과연 올까?  2023년 3월 28일 자로, 교육부에서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행기본계획 발표를 했다. 3월 모의고사를 치르고 첫 공식발표다. 이제 정말 ‘수능’ 조금씩 다가온다는 것이 실감 난다. 답답한 불안 속에서 숨통을 조금씩 트이는 시간을 가지면 입시에서 해방될 날을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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