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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May 23. 2023

2024년 입시전쟁에 참가 중인 고3 큰 애를 보며

 로이스 로리의 4부작 중 하나인 <기억 전달자>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다룬 소설이다. 한 해에 태어나는 아기들의 수는 딱 50명, 그 아이들은 엄마, 아빠로 구성된 ‘기초가족’에게로 배정된다. 그리고 아이들의 성별은 아들, 딸 한 명씩이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성향에 따라 교육을 받고 원로들의 세심한 관찰을 받으며 미래의 직업이 선정된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계획된 사회, 혼란이 더 이상 끼어들 수 없는 곳이다. 처음 이 소설을 접했을 때는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감시되고 통제된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주인공 조나단의 마지막 선택에 박수를 보냈고, 그 이후 통제된 사회가 무너지는 모습에 쾌감을 느꼈다.


 가끔은 우리나라도 <기억전달자>의 세계처럼, 참 견고한 계급의 울타리에 둘러싸인 사회 같다. 조나단의 커뮤니티처럼 음식, 가족 수, 직업, 기억, 역사 등 사람이라면 지닐 수 있는 모든 것이 통제되는 곳은 아니지만, 역시 우리 사회에도 ‘돈’이라는 절대 권력이 존재한다. 현대사회는 명예, 유명세, 사명감 등이 모두 ‘돈’에게 굴복당하는 모양새다. 공부를 ‘쫌’ 한다는 학생들은 모두 ‘의. 치, 약, 한(의대, 치대, 약대, 한의대)’를 지망하고 그야말로 피 터지는 전쟁 중이다. 고고한 꿈을 꾸어도 부족한 시간에 파릇파릇한 아이들에게 ‘돈’의 맛을 너무 일찍 알려준 것은 아닌지 미안해지기까지 한다. ‘돈보다는 꿈을 찾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라’라고 이야기하고 싶어도 현실이 그렇게 녹록지 못하다.


 누구보다는 사명감이 높아야 접근할 수 있는 의사라는 직업도 ‘돈’을 많이 벌지 않았다면 이토록 많은 학생들이 지원을 할까 싶다. 몇 년 전 유명 S 의대에 진학한 조카가 말했다. “의대에는 세 부류의 친구들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부모가 병원을 운영하는 경우, 공부를 잘해서 오는 경우, 그리고 정말 진정한 의술을 펼치려고 오는 경우, 그런데, 신기하게도 진정한 의사가 되고 싶어서 오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이다.


 사실, 대학 전공 선택이 ‘돈’에 좌지우지된 것은 요즘의 일만은 아니다. ‘돈’과 관련이 없는 순수 학문을 선택할 수 있는 ‘문과’에 비해 직업 선택에 수월한 ‘이과’가 인기가 많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시중의 책들이 아무리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소리쳐도 현실의 벽 앞에서는 이과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세상은 움직이는 것은 ‘인문학’ 지식을 장착한 기업 운영자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실리적인 지식을 장착한 이과생들이다.


 요즘 유명 대학들의 2024년 입학 설명회를 듣고 있다. 얼마 전에는 S대의 입학 설명회를 다녀왔고, 저번 주에는 Y대의 입학 설명회를 다녀왔다. 2024년은 특히나 학력 인구가 다른 해에 비해 가장 적다고 알려진 해이다. 그런 이유로 재수생을 비롯해 N수생들이 참여하는 정시비중이 예년보다 높고 경쟁률도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한다. 대학 입학 전문가들 역시 현 고등학생들은 정시보다는 수시를 도전해야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정시야 재수생들이 더 유리하고, ‘현역’이라 불리는 고등학생들은 수시를 지원해야 좀 더 유리하다고 한다. 입학 관계자들이 펼치는 각종 화려한 차트와 통계자료들의 예시를 보면서 조금 불안한 큰 애의 내신을 생각하며 자꾸만 씁쓸해졌다. 결국에는 성적이고 내신이었다. ‘내신이 치열한 학교’에서 선호하는 ‘정시’는 또다시 재수생들의 축제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


 2024년 입시에서 재수생과 현수생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가운데, 큰 애도 역시 ‘의. 치, 약, 한’의 경쟁에 끼어들었다. 왜 그 녀석이 갑자기 마음이 달리 먹었는지는 알 수 없다.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위에 있다는 ‘의. 치, 약, 한’(의대, 치대, 약대, 한의대)의 경쟁, 극도의 스트레스를 견디고 엄청난 공부와 치열한 노력을 해야지만 승리의 깃발을 뽑을 수 있다는 그 전쟁터에 아들이 올해 참여한다. 그런 아들을 보면서 무엇을 도와줘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등학교 선택을 내신을 잘 받을 수 있는 학교로 보내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100점을 받지 않으면 1등급을 받을 수 없고, 1등과 꼴등의 구분이 거의 없으며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모두 ‘의, 치, 약, 한’을 지망하는 곳, 바로 아들이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다. 하지만 큰애는 지금의 고등학교 친구들이 엄청나게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결코 3년 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차라리 모든 직업들이 <기억전달자>에서처럼 이미 정해졌다면 학생들은 좀 더 편하게 대학의 전공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물론, 그것은 지금까지 역사에서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워온 조상들의 노력에 대한 배신이다. 이렇게 아이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 있다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가 조금은 열린 가능성으로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곳이라는 증거다. 그 속에서 지켜보는 부모는 그저 잘하면 ‘칭찬’하고, 좌절하면 ‘잘한다’라고 응원하는 수밖에 없다. 그 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다가올 2023년 9월이면 수시 원서를 쓰고 11월이면 수능을 치른다. 12년 동안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할 때이다. 얼마 전 혼자 힘으로 어떻게든 자신의 한계를 넘으려고 애쓰는 큰애가 인강의 교재 2권을 샀다는 카카오 톡을 보냈다. 교재비 52000원을 아이의 통장으로 부치며 생각한다. ‘인강보다는 지금이라도 대치동의 일타강사에게서 강의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섣부른 생각을 해보다 마음을 접는다. 괜히 말을 했다가 지금 혼자만의 싸움 중인 아이의 의욕을 꺾을까 봐 두렵다. 홀로 아등바등하는 아이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이번 주말에 그 녀석이 나오면 이번에는 더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맛있는 것을 사줘야지. 아들아,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조금만 더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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