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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Mar 24. 2023

그 녀석과 나의 생각의 거리

어제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던 2023년 3월 모의고사가 끝났다. 시험이 끝난 직후의 늦은 오후, 그 난이도가 어땠는지는 굳이 직접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길을 오가는 고등학생들의 표정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럭저럭 성적이 잘 나온 아이는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기쁨으로 입 꼬리가 계속 실룩거릴 테고, 시험을 잘 못 본 친구는 계속 다른 친구의 성적을 확인하며 현재 본인의 위치를 가늠할 것이다. 거리를 오가는 많은 아이들의 얼굴들을 조심스레 관찰하면서 집에 도착했다. 오자마자 세상에서 제일 궁금한 둘째의 표정이 떡하니 눈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뭘까?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저 얼굴이라니. 결국 녀석을 옆에 붙들어 앉히고서 본격적으로 ‘취조’하기 시작했다.


 “오늘 시험 잘 봤니?”

 “그냥요.”

 “국어는? 수학은? 영어는?”

 “그럭저럭요.”

 “한국사는?”

 “그냥 반타작했어요.”


 참고로 둘째는 암기과목을 정말 싫어한다. 중학교 시절 아들은 중간고사 ‘사회’ 시험을 치기 전날, 아빠가 농담 삼아 건넸던 “우리 사회가 너무 엉망이니까, 이 과목은 못 봐도 괜찮아.”라는 말을 찰떡같이 믿고서 공부를 등한시한 녀석이다. 역사 시험 보기 전날에도 연신 ‘왜 남의 나라 일들을 굳이 아무 관련이 없는 대한민국 학생인 자신이 알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찡찡거리던 아들이다.


 일찌감치 3월 모의고사를 치기 전 날, 둘째는 “한국사는 기대하지 마세요”라고 소신발언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 성적이 궁금한 이유는 무엇인지. 사실 주변 엄마들의 정보통으로 이번 3월 모의고사 한국사 시험은 ‘참’ 쉬웠다는 소식을 접한 터였다.


 “반타작? 이번 한국사 시험, 엄청 쉬웠다는데?”

 “에이, 엄마는.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반타작이나 했으니, 잘했지 않아요?”


 이걸 잘했다고 해야 하나, 혼을 내야 하나? 정말로 둘째는 본인이 받은 3월 모의고사 한국사 점수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 녀석과 나의 생각의 거리는 참 멀다. 3월 모의고사를 보기 전, 엄마는 그 성적으로 대학입시가 정해지지나 않을까? 혹 아들이 절망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건만, 정작 그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3월 모의고사는 하고 많은 시험들 중의 하나 일뿐, 그 결과에 전혀 마음이 상해있지 않았다. 생각보다 잘 안 나온 3월 모의고사 가채점 결과를 두고 엄마는 ‘반밖에 안 맞으면 어떡하니?’라고 걱정하고 있고, 그 녀석은 ‘반이나 맞았네?’라고 흐뭇해하는 실정이다. 지금 둘째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의 걱정스러운 ‘간섭’일까? 아니면 본인이 알아서 하기를 기다려주는 ‘믿음’일까?


 걱정했던 둘째가 3월 모의고사 결과를 전혀 신경 쓰지 않으니, 그동안 마음이 졸였던 나 역시도 마음이 ‘턱’ 하니 풀려버렸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찾아오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라는 뜻이다. 엄마는 ‘반이나 틀렸다’며 걱정하지만, 아들은 ‘반밖에 안 틀렸다’라며 좋아라 한다. 현재 그 녀석과 나의 생각의 거리는 딱 이 정도다. 똑같은 결과를 두고서도 아들과 나는 생각이 다르다. 언제쯤이면 이 생각의 폭을 줄일 수 있을까? 그 녀석도, 나도 서로 생각을 맞춰가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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