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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Apr 05. 2023

글쓰기 마음 충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핸드드립으로 한 잔 우려 마셨다. 요즘은 오전에 여유 있을 때마다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다지 커피를 즐기지 않는데도, 하루에 1잔~2잔씩 마신다. 어쩌다 방심하고 있다가는 3잔을 훌쩍 넘어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따뜻한 음료가 목구멍을 넘어 스르르 흘러가는 감각을 느낄 때면 어느새 다시금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이 커피 한잔, 일정한 의식 같은 이 습관이 어쩌면 하루치의 평온한 마음을 충전하는 힘이다.


 얼마 전에 투고했던 글 한 편이 월간지에 실렸다. 편집장님은 감사의 표시로 20편의 월간지를 집으로 보냈다. 내 글이 실린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무척 기뻤고 놀라웠다. 이미 함께 글을 쓰는 문우들의 단톡방에서는 ‘축하한다’라며 여러 차례 축하 인사도 받았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 간사하다. 막상 월간지 속 여러 사람의 글 속에 섞여 있는 내 글을 보니 너무 초라해 보였다. 단독으로 읽었을 때는 빛났던 내 글이, 여러 편의 글 속에 묻혔을 때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그저 평범한 넋두리로만 보였다.


 많은 사람이 글을 쓰는 요즘이다. 어쩌면 ‘문학’의 꿈을 꾸는 대부분의 사람들, 혹은 자기 책 한 권을 남기고 싶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장소에서 글을 쓰고 있다. 나 역시도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고, 지금도 그 질린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이 글 쓰는 공간의 변두리에서 버티는 중이다. ‘버틴다’, 어쩌면 이 문장이 지금의 내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처음에는 마냥 글 쓰는 것이 재미있었다.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이 늘어나고 이런저런 반응을 보여줄 때마다 재미있었다. 이제 글 한 줄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미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양, 내 마음은 하늘 높이 솟구쳐 있었다. 남편에게도 ‘자기도 신이 내린 꿀 팔자’를 시켜줄게’라며 큰소리를 땅땅 쳐댔다. 막 글을 쓰기 시작한 당시에는 매일 1편 혹은 2편씩 생각나는 내용들, 하루 동안 보고 느꼈던 내용을 정신없이 써댔다.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글을 쓰는 습관이 잡히고 보니 점점 내 글의 빈약함, 어설픈 작문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멋진 글을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또 다양한 작품들을 읽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이런 숨은 노력 없이 그저 바쁜 일상에 대해 하소연하는 글쓰기로는 도저히 글이 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또 다른 노력을 시작했다. 에세이 수업을 들었고, 토론과정을 기본부터 고급과정까지 수료했다. 그리고 글쓰기에 갈급한 수많은 문우를 만났다.


 그런 일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느꼈던 감정은 하나다. 글쓰기는 결국 ’작문 스킬‘이나 ’상상력‘이 아니라 글쓴이가 ’무엇을 진실로, 절실하게 쓰고 싶은가? ‘하는 점이다.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처절한 무언가, ’정말 쓰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사람만이 결국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유명해진다. 아쉽게도, 그동안 그저 평범하게 살아온 나에게 평생에 걸쳐 남기고 싶은 절실한 소재가 없었다. 누구나 느끼고 경험한 일들, 그저 평범해 보이는 일상들을 글로 끄적거렸다.


 그렇다면,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은 평생 작가가 될 수 없는 걸까? 아니다. 그들에게도 방법이 있다. 정말 오직 이 글쓰기 하나에만 모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밤낮으로 글쓰기에 ’올인‘을 하는 일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정말 유명한 작가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재즈바를 운영하던 일본 남자가 야구 경기를 보러 가서 ’갑자기 소설을 쓰겠다‘라고 마음먹어 유명한 소설가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다. 그래도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보다 이런 성공류의 신화들이 뭇사람들에게 어설픈 동기부여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루키 역시,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소설가가 될 수 있어요. 사실, 소설가가 되기 위한 장벽은 낮아요. 모두에게 오픈이 되어 있지요. 하지만, 그 길을 끝까지 계속 간다는 것은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해요.”


 재작년 한 잡지에 글 한 편을 투고해서 원고료로 2만 원을 받았다. 이번 월간지 투고에서는 원고료로 20편의 월간지를 받았다. 아직은 유명하지도 않고 평범한 내 글이 남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가치이다. 생각이 많아진다. 그런 씁쓸한 마음 탓인지 요즘 남편에게 ’열심히 회사를 잘 다녀라‘고 이야기하는 횟수가 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조만간에 남편을 위한 ‘신이 내린 꿀 보직’을 마련할 가능성이 없으니 말이다. 나 역시도 글쓰기를 하던 초반에 들었던 헛바람을 다 빼고 다시 본래 일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아직은 ‘글쓰기’를 향한 꿈만을 위해 내달리기엔 자신이 없다. 그런데도 글쓰기를 지속하고 싶은 마음은 구질구질한 미련일까? 아니면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까? 물론 ‘글은 내 삶이자 인생이에요’라는 거창한 사명감은 없다. 그저, 쓰고 싶고, 죽기 전에 책 한 권 남기고 싶은 마음? 이게 다다.


 어느새, 따뜻하게 우렸던 아메리카노가 차갑게 식어 버렸다. 습관처럼 컵 안에 뜨거운 물을 다시 채워 넣었다. 새롭게 아메리카노를 내리기보다는 물을 채워서 끝까지 우려먹는 것을 선호한다. 맛이야 상관없이 한번 내린 아메리카노는 끝까지 책임을 지는 편이다. 처음 마실 때보다는 싱겁긴 해도, 따뜻한 기운에 마음이 금방 따스해진다. 내 글쓰기도 이런 모양새다. 주변의 상황에 따라 금방 식기도 하고, 약간의 동기부여로 바로 충전되기도 한다. 한 번 우린 아메리카노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우려먹는 것처럼, 글 쓰고 싶은 마음이 계속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마지막 한 방울이 희석되기 전까지, 아마도 계속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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