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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Apr 20. 2023

"날 좀 내 버려둬요"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

날 좀 내 버려둬요. 왜 이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 거요?”



소시민의 욕망, 이 조합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아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편견이요, 선입견일지 모른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연 중에 자리 잡은 비굴한 사고는 소시민의 소박한 행복으로만 연결시키라고 자꾸만 부추긴다. 사람들은 분에 넘치는 욕망으로 지닌 이를 곱게 여기지 못한다. 라이 고골의 소설모음집 <<빼째르부르이야기>>(민음사, 2021)에 실린 <외투>는 소시민인 만년 9급 관리가 지닌 욕망, 새 외투로 인해 벌어지는 비극을 해학적으로 그린 단편이다.

 

 주인공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딱히 내세울 만한 능력도 없고, 여가를 함께 보낼 가족이나 친구도 없는 인물이다. 주인공의 유일한 낙은 서류를 베껴 적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이나 인생의 목표 없이 매번 동료들에게 멸시를 당한다. 그러다 얼떨결에 구입했던 외투 하나로 잠시나마 평범한 행복을 맛보나 했지만, 곧 강도를 당한다. 힘겹게 도움으로 청하러 간 고관에게도 매서운 질책만 들을 뿐이다. 천재적인 작가, 고골은 이러한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모습을 불쌍하면서도, 더없이 비굴하며 욕망에 물든 이중적인 모습으로 그려놓았다.


 이런 점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전문가들 역시 각각 다른 서평을 쏟아내는 이유다. 책 표지가 인상적인 문학동네의 서평이다. 옮긴이 이항재는 “작가의 시선에는 삶의 목표가 고작 외투인 비루한 인간에 대한 쓴웃음과 멸시도 배어 있다”<외투>(p.79, 문학동네)라며 주인공의 분에 넘치는 욕망을 비판했다. 반면, 민음사의 옮긴이 조주관은 주인공 아까끼가 “사회의 계층적 위계질서 속에서 낮은 지위”<외투>(p.296, 민음사)를 차한 ‘작은 인간’이며 ‘관료제도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외투’라는 소재로 19세기 러시아 관료 체계를 비판한 점이다. 이 외투는 비단 개인의 단순한 옷에 대한 욕망만이 아니라 ‘관료제의 폐해’가 숨어 있다. 작품에서 9급 관리의 옷을 입은 주인공은 본인보다 높은 관료에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항변하지 못한다. 그러다 유령이 된 이후 그의 외투를 강탈하며 자신의 한계성을 극복했다. 이런 독특하고 신비로운 요소 때문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라고 말하며 이 작품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주인공 아까끼의 외투에 대한 욕망은 동정을 받아야 할까? 아니면 멸시를 받아야 할까? 사실 장만했던 외투는 본래 ‘본인이 원해서’ 가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가지고 있던 헌 외투가 너무 낡아 수선하러 재봉사인 빼뜨로비치에게 갔을 뿐이다. 주인공은 외투 수선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고, 반강제적으로 새 외투를 사라고 강요받았을 뿐이다. 그렇게 장만한 새 외투는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는 열쇠이자,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아까끼의 유일한 잘못은 관료제도 속의 무기력한 모습이다. 그는 만년 9급 관리로,  새로운 일을 맡기보다는 글자 하나하나를 써 내려가는 ‘평범한 정서 업무’만 맡았다. 주변에서 “그를 아무렇게나 대해”도 대응하지 않았고, 도를 넘어 지나치게 굴 때에야, “날 좀 내버려 둬요. 왜 이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 거요?”(p.58)라고 외쳤다. 그는 좀 더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면, 새 외투에 대한 욕망이 덜 낯설게 독자들에게 다가왔을까?


 가진 자, 있는 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이다. 간신히 가진 새 외투조차 제대로 지니지 못하고 어이없게 빼앗긴 아까끼의 모습에서 요즘 회자되는 억울한 이들을 다시 발견한다. 이들의 잘못은 분에 넘친 것을 원한 욕망 때문일까? 아니면 불쌍한 이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 때문일까? “날 좀 내 버려둬요, 왜 이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 거요?”라고 외치는 아까끼의 음성이 귀에 선하다. 마음대로 되지 않은 세상, 답답한 속내를 해학으로 풀고 싶은 이들이라면 이 책을 펼쳐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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