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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ul 31. 2023

'비틀비틀' 불운한 시람들에게 힐링을 선물하는 책

<비틀비틀 아저씨>(미래아이, 2023)

 얼마 전 SBS 드라마 <악귀>가 인기리에 종영했다. 시청자들은 매회 펼쳐지는 김은희 작가의 뛰어난 필력과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김태리를 비롯한 주연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에 감탄하며 일찌감치 이 드라마의 성공을 예측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이 드라마의 폭발적인 인기를 굳건히 다진 것은 ‘악귀’라는 오컬트 장르를 이용해서 사회 속 힘 있는 자들의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낸 현실감 넘치는 주제이다. 작가는 아동 폭력인 염매란 과거 악습을 시작으로, 가정 폭력, 보이스피싱, 불법사채업 등 악귀 같은 사회악의 손에 휘둘리는 힘없는 사람들의 삶을 세심하게 조명했다. 안타깝게도, 이런 불행들은 ‘돈’ 없고 ‘백’ 없는 사람들에게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온갖 불운들이 한꺼번에 몰아칠 수 있다. 사사키 마키가 쓰고 그린 <비틀비틀 아저씨>(미래아이, 2023)는 하루 동안 온갖 사건사고를 겪는, ‘운이라고 지지리도 없어’ 보이는 한 아저씨의 이야기다.


 노란색 중절모에 흰색 양복을 잘 차려입은 아저씨는 먼 곳에 사는 친구에게 쓴 편지를 부치러 집을 나선다. 하지만 그는 나오자마자 계단에 있던 하얀 공을 밟으며 주르륵 미끄러지고 만다. 안타깝게도 그의 불운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길거리에서 머리 위로 난데없이 카펫이 떨어지는가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낯선 강아지 목줄에 발이 묶여 끌려 다닌다. 아저씨는 축제 중인 돼지 떼와 아이들에 휘말리고 또 아끼던 노란색 중절모도 자동차 바퀴에 납작하게 깔린다. 새하얗게 빛났던 그의 하얀 양복은 점점 더러워지고 아저씨의 표정 역시 어두워진다. 그래도 그는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애써 마음을 추스르며 하지만 쉽지 않다. 하루 종일 그의 뒤를 따라다니던 불행은 그 순간마저 평온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마지막 불운이 찾아온 순간 그는 내내 억눌렀던 감정을 참지 못하고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비틀대는 불운 속에서 아저씨는 어떻게 될까?


 <비틀비틀 아저씨>의 주인공은 그저 친구를 위한 편지를 부치러 집 밖을 나섰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아저씨를 따라다니며 차례차례로 찾아오는 온갖 사건들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의 비정한 단면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1초 1분이 아까운 순간에 꼭 바로 앞에서 버스가 놓치고, 잘하려고 마음먹은 순간에 꼭 실수 하나 때문에 일생일대의 기회를 망친다. ‘앞으로 깨지고 뒤로 깨질 만큼’ 서러운 하루, 이런 불운한 날은 미리 예고하며 찾아오지 않는다. 아무리 낙천적인 사람도 이런 불행 앞에서는 ‘와, 정말 인생이 왜 이렇지?’라는 말을 절로 토로할 수밖에 없다. 편지를 부치러 나가며 담담했던 그림책 속의 주인공 역시, 예상치 못한 불운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표정이 점점 어두워진다. 그는 수많은 불운 속에서 애써 부정적인 감정을 감추지만 결국 마지막 불행 앞에서는 왈칵 울음을 터뜨린다.


 이렇게 ‘비틀비틀’ 거리는 아저씨’를 구원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뜻밖에도 한 소녀의 작은 관심이다.(어떻게 그를 위로했는지는 책에서 찾아보시길) 그는 아이의 그런 위로를 받고서야 온몸을 조아리며 감사를 표한다. 누군가에게는 소소한 관심이었지만, 이미 어두운 마음의 바닥까지 침몰한 그에게 그 위로는 태산보다 큰 것이었다. ‘비틀비틀’ 대는 현실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은 어쩌면 소소한 관심일 수 있다. 드라마 <악귀>에서 나약한 주인공 구산영이 강력한 악귀에게서 몸을 되찾을 수 있었던 비결은 마지막 순간 깨달은 삶의 작은 의지 때문이었다. 그녀는 홀로 설 수 없을 만큼 고단한 현실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지만, 마지막 순간, 삶의 의지를 되찾았다. 그 깨달음의 작은 손길이 주인공을 구원했다. <비틀비틀 아저씨>의 주인공 역시 몰아치는 불운 속에서 괴로웠지만, 우연히 접한 한 소녀의 따뜻한 손길로 인해 불행한 마음의 속삭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세상살이는 힘겹고 외롭지만 같이 있기에 또 세상은 살아갈 만하다.


 <비틀비틀 아저씨>는 만화풍의 귀엽고 밝은 색감의 일러스트라 다양한 연령이 접근할 수 있다. 초등 저학년과 같이 읽을 때는 ‘비틀비틀 아저씨’와의 즐거운 모험담을 나눌 수 있고, 고등학생 이상 성인들과 이 책을 읽을 때는 부조리한 인생 속에서 희망을 찾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하루 동안 되는 일이 없어 괴로웠던 사람들에게 힐링의 책, <비틀비틀 아저씨>을 선물한다.


#비틀비틀아저씨#사사키마키#미래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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