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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Aug 30. 2023

<김미경의 마흔 수업>(김미경, Aware books/

이미 아는 맛, 그래도 맛보고 싶은

 '이미 아는 맛, 그래도 맛보고 싶은'/<김미경의 마흔 수업>(김미경,  Aware books/ 2023)


사실 절박한 사람들의 마음을 ‘요리조리’ 흔드는 자기 계발서책들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성공하고 싶다면 이렇게’, ‘살을 빼고 싶다면 이렇게’라는 현란한 제목들에 이끌려 산 책들이 몇 권이었던가? 사회 초년생이었던 20대부터 40대의 현재까지 ‘빌려’ 보고 ‘사’ 보고, ‘버린’ 책들만 합해도 아마 수백 권이 넘을 것이다. 출판시기마다 책표지와 출판사들은 각각 달라도 자기 계발서들이 저마다 주장하는 내용들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현재 나를 돌아보고  바로 실천해라’, 항상 그 책들의 내용들이 ‘그 나물에 그 밥’ 임을 너무도 잘 알면서도 매번 출판사의 화려한 상술에 속아 넘어가는 호구 중에 ‘상 호구’가 바로 나였다.


 한동안 읽지 않았던 자기 계발서, <김미경의 마흔 수업>(김미경, Aware books/2023)을 동네 엄마들의 북클럽을 위해 또다시 구입했다. 거의 40대~50대로 이루어진 독서회원들은 이 책을 읽고 토론하며 다른 책들을 읽고 토론할 때보다 훨씬 더 큰 목소리와 감정으로 대화에 임했다. 이미 알고 있음 직한 내용들, 감정들로 이루어진 자기 계발서, 그녀들은 왜 이 책을 읽으며 그토록 많은 울분들과 감정들을 토했던 걸까?


 <김미경의 마흔 수업>은 현 40대를 위한 응원과 토닥거림이 가득한 책이다. 저자는 글의 초반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각 역할의 무게를 견디며 본인의 삶에 대한 불안감으로 힘든 마흔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그녀는 대부분의 주부들이 30대까지는 ‘일, 결혼, 출산’ 등 인생의 중요한 선택으로 정신이 없다가 마흔이 넘으면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들을 갖는다고 말한다. ‘이게 맞나?’라는 소소한 질문부터 ‘남들도 나처럼 이렇게 힘들게 사나?’라는 그동안의 삶들을 조망해 보는 질문들이다. 마흔을 넘어가는 나이는 ‘잘못 살아온 걸까?’까지 갖가지 물음표들과 아픈 성찰들로 힘들어지는 시기이다.


 저자는 그럴수록 그동안의 30년 전의 고리타분한 ‘인생 설계 방식’을 재정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삶의 주기를 “20~30대를 청년, 40~50대를 중년, 60대 이후를 노년”(p.39)로 구분하던 3단계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현재 점점 젊어지는 중년층의 문화에 맞춰 “이제는 100세 시대의 황금기를 40대가 아니라 60대로 정의”(p.44)하고, 꿈의 양상에 따라 생애 주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꿈을 중심으로 생애주기를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20세까지는 유년기, 20대부터 40대까지의 30년을 첫 번째 꿈을 가지고 뛰는 ‘퍼스트 라이프 First Life', 50대부터 70대까지의 30년은 두 번째 꿈을 가지고 뛰는 ‘세컨드 라이프 Second Life' 그리고 80세부터 100세까지가 노후다. 지금 40대들은 퍼스트 라이프의 마지막 10년을 사는 중이고, 이제 60세가 된 나는 세컨드 라이프의 중반기에 들어섰다.(p.40)


 그러면서 김미경은 마흔의 다양한 불안을 겪고 있는 주부들에게 다양한 공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윗세대와 아랫세대에 치이며 스스로를 ’ 낀 세대‘라 자조하는 40대 이 “1960년대 생과 1990년대 생의 뇌 구조와 문화를 모두 이해”하는 “두 세대 사이의 ‘중심’”(p.73)이라고 말한다. 마흔 세대들이 “아직 대학생이거나 사회 초년생”(p.74)이었을 때 한 나라가 부도위기에 처했던 IMF 사태가 벌어졌고, 그들이 견뎌온 급변하는 사회 변화로 이 세대들이 새로운 학습에 대해 민감해졌다고 전한다. 그렇기에 저자는 40대야 말로 그 어떤 세대보다 변화와 학습과 세대를 연결하는 소통 능력이 뛰어난 세대라고 말한다.


 40대는 어린 시절 그 누구보다 경제적인 풍요를 누렸고, 직장인으로 사회에 나가는 시점에서 경제의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경험을 했다.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단체 시위를 거부하고 “난 알아요!”의 서태지 음악을 즐기던 자유로운 보헤미안들이 하루아침에 대학을 졸업해도 직업을 구하기 어려운 첫 번째 세대가 되었다. 그 이전까지 구태 연연하게 보장되었던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상황에 따라 언제 잘릴지 모르는 문화가 고착화되었다.


 치열하게 살아온 마흔의 주부들을 향해 저자는 마냥 달콤한 응원만을 늘어놓지 않는다. 그녀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지만 “정작 내가 없어”(p.96) 진 40대 엄마들에게 이제라도 본인의 꿈을 이루려면 책상을 놓을 공간과 준비할 시간을 확보하라고 말한다. 저자는 가족들을 위해 공간과 시간을 양보했다고 해서 “가족들은 내 배려를 고마워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의 권리라고 착각한”다고 이야기한다. 김미경은 “공간과 시간을 희생하면서까지 가족에게 모든 걸 양보하고 내어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p.139)라고 단언한다.


 <김미경의 마흔 수업>은 익히 아는 맛으로 가득한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40대의 엄마들, 주부들, 여성들은 이 책을 읽으며 때로는 분노하고 울고, 웃으며 그동안 못했던 감정들을 토로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런 유의 자기 계발서는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두렵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즉효약이다. 이런저런 인간사로 위로가 필요한 40대의 주부들,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그려보고 싶은 성인 이상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아는 맛이지만 그래도 괜찮은 맛이 담겨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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