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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un 14. 2023

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이라는 기존의 통념을 부정하며 진정한 ‘진화의 승자’는 환경에서 잘 적응한 자가 아니라 ‘다정한 자’였다는 관점에서 인류의 진화와 생존을 설명하는 책이다. 가장 넓은 땅을 차지했던 여행꾼 호모 에렉투스와 매머드를 때려눕힐 만큼 강하고 똑똑한 사냥꾼 네안데르탈인을 제치고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호모 사피엔스가 최후의 승자가 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저자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끝내 살아남았던 결정적인 이유로 ‘소통, 협력, 다정함’을 들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후손에게 물려준 다정함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친밀하고 다정한 사람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다. 언제까지나 ‘배려와 공감’으로 주위 사람들을 대하는 일만 지속되면 좋으련만, 가끔은 상대방의 ‘다정함’을 믿고 ‘막’ 행동하는 사람이 있어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런 상황은 ‘그 사람은 다정하니까 이해해 줄 거야.’, ‘그 사람은 마음이 넓으니까 이해할 거야.’라는 마음으로 행동할 때 생기는 부작용이다. 또, 다정함이 ‘만만함’의 대명사로 비치는 때도 있다. 이런 상황은 상대방의 지위나 상황이 나보다 아래라고 여겨 친절함으로 대하기보다는 내 감정을 모두 분출할 때이다. 이 두 가지 경우는 서로 비슷한 듯 하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다정한 사람들을 ‘막’하게 대하는 경우는 대개 서로의 관계가 너무 가까울 때이다. ‘가족’이니까, ‘연인’이니까, ‘친한 친구’이니까 ‘이 정도의 감정, 툭탁거림은 받아줄 거야’라는 마음으로 내지르는 상황이다. 이 경우는 보통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대할 때 ‘특별한 관계’를 바탕으로 감정을 쏟아낼 때가 많다. 생각해 보면 사춘기 시절, 어머니께 변화무쌍한 십 대의 기분에 따라  짜증 내곤 했다. 내심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왠지 엄마는 날 이해할 거야, 날 무조건 받아줄 거야’라는 기분으로 행동했던 것 같다.


 다정함이 ‘만만함’으로 비칠 때는 상대방의 상황, 형편이 나보다 아래라고 생각되는 경우이다. 이런 상황은 앞서 언급했던 ‘특별한 관계’에서 윗사람이 무한한 ‘다정함’으로 인내하고 허용하는 경우와는 다르다. 이 일은 보통 상대방이 나보다 ‘아래’라고 생각하기에 무작정 감정을 쏟아낼 때 생긴다. 그런 행동 저편에는 ‘네가 기분이 나빠한들 네가 어쩔 건데?’라는 마음이 깊숙이 깔려 있다. 본인의 감정 분출구가 되는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말이다.


 얼마 전 참 속상한 일이 있었다. 온라인 수업 중 예기치 못했던 한 아이의 행동으로 아이들 사이에 사건이 생겼다. 교사였던 나는 수업 시간에 쫓겨 그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뒤늦게 그 일을 전해 들은 학부모는 엄청 분노했다. 이후 그 상황을 수습하고자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노력을 했다. 그리고 난 후 겨우 연결된 통화에서 그분은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일방적으로 나에게 여러 가지 부정적인 감정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10분이 넘는 통화시간 내내 모든 일을 책임을 지고 중재해야 하는 입장에서 나는 무조건 ‘미안하다’고 말했다. 물론 ‘다른 어머니의 사과’도, ‘내 사과’도, 그 어떤 말도 먹히지 않은 채 결국 차갑게 통화가 끊기고 말았지만 말이다.


 전화를 끊고 난 뒤 많은 복잡한 감정들이 몰려왔다. 그 사건으로 인한 그분의 기분, 감정을 이해하지만, 1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쏟아냈던 일방적인 분노에는 ‘강사에 대한 존중’은 하나도 깔려 있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무심히 일을 처리할 수 있나’에 대한 분노와 사건을 일으킨 다른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충만되어 있었다. ‘나라도 그 입장이라면 그럴 수 있을 거야’라는 마음이 들다가도 모든 사과와 대화들을 단절한 채 분노만 쏟아내는 모습에는 좀 공감하기 어려웠다. 내 일이, 내가 만만하게 보였던가? 사실 그분은 전혀 일면식이 없었고, 어떤 계기로 오직 ‘글’로만 연결된 사람이었다.  


 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이번 일을 계기로 주변의 사람들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해 대하고 있을까? 사람들의 조건과 상황, 외모, 능력 등등에 따라 인간관계를 차별하고 있지는 않을까? 더 이상은 ‘예의’, ‘다정함’, ‘공손’, ‘친절함’이 ‘만만함’의 대명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차갑고 매서운 돌풍의 바람이 아니라 온화하고 다정한 햇빛이 사람들의 마음을 한 꺼풀씩 벗겨내는 인간관계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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