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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un 16. 2023

글 쓰는 행복감

 자신이 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 어떤 기분일까? 얼마 전 단톡방에서 아는 선생님이 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은 많은 이의 축하를 받으며 얼굴을 붉혔고, 주말에 대형서점에서 사인회를 하니 시간이 되면 오라는 말을 수줍게 건넸다. 선생님이 그 책을 내기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낸 사실을 알기에 마음껏 축하를 하면서도 한 편으로 부럽다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글을 쓰는 일은 참 묘하다. 처음 글을 쓸 때만 해도 ‘책을 낸다는 것’, ‘작가가 된다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를 위해 글을 쓸 수 있어 기뻤고, 그동안 마음을 어지럽혔던 꿀꿀한 생각들이 머리와 손가락의 움직임으로 조금씩 정리되는 상쾌함이 좋았다. 그저 그런 마음으로 글을 썼을 뿐인데, 어느 순간 글 쓰는 나는 ‘출간 작가’라는 명제에, ‘사람들의 호응’이라는 생각에 함몰되어 있다. 나만을 위해 썼던 글이 다른 사람의 반응을 살피는 글이 된 순간부터 글쓰기가 두려워졌다.


 주변에는 이런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사물을 관찰하고 자유자재로 이끌어 내는 글 솜씨에 감탄했던 A도, 온화하고 아름다운 감수성으로 읽는 이의 추억여행을 이끌었던 B도, 과거의 사건을 생동감 있게 풀어내 ‘와 이분은 소설을 쓰면 좋겠다’라고 내심 부러워했던 C도 ‘왠지 요즘 글이 안돼’라며 글쓰기를 어려워했다. 그나마 그들이 한 번씩 드문드문 글을 올릴 수 있는 것도 ‘일주일에 1번을 글을 올리기’라고 정한 ‘에세이클럽’의 강제성 때문이었다. 만약 서로에게 이런 규칙이라도 없었으면 ‘이 일은 제 길이 아닌가 봅니다’라고 외치며 이미 ‘글 세계’에서 떠났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그저 좋아서’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글 세계’에서 들어온 순간부터는 ‘글 쓰는 것이 좋다’라는 마음만으로 글을 계속 쓰기가 어려워졌다. 골방에 앉아서 혼자만의 ‘글 공간’에 젖어 있다가 사람들이 웅성대며 서성이는 또 다른 ‘글 세계’에 접어들었다. 그곳에서는 수천 명, 수만 명의 사람들이 꼭대기 위에 걸려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향해 뜀박질하고 있었다. ‘도태되면 안 된다’, ‘어떻게든 저곳까지 올라가야 한다.’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말이다.


 이렇게 계속 글을 쓰다 보며 조금씩 사람들의 부류가 나눠진다. 첫 번 째는 엄청난 미련을 지닌 채 조금씩 글쓰기를 정리하는 사람들이다. 삶이 바빠서, 사람들의 반응에 지쳐서, 그리고 끊임없이 속삭여 대는 열등감의 유혹에 휩싸여서 글쓰기를 멀리한 이들이다. 그들은 “원래 재능이 있는 사람들만 작가가 되는 거지 뭐”라고 읊조리며 글 쓰는 마음을 조금씩 접는다. 이솝우화 속의 담 너머의 잡을 수 없는 신포도를 바라본 여우의 쓰라린 심정을 헤아리면서 말이다.


 두 번째는 혹은 매일매일 마음을 다독이며 습관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꼭 성공하고 말 테다’라는 강력한 의지로 쓸 수도 있고 아니면 ‘글을 쓰지 않으면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을 것이 없어’라는 절박한 심정일 수도 있다. 그들은 매일 일상에서 보고 들은 모든 생각들을 재료 삼아 꾸준히 글을 쓴다. 흔히 ‘오래 버티다 보니 작가가 되었어요’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부류이다.


 사실 엄청난 천재적인 재능과 유려한 글 솜씨로 ‘쓰기만 하면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작가는 극히 드물다. 간결하고 명쾌한 글 솜씨로 많은 작가 지망생들의 존경을 받는 조지오웰 역시 본인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 가?’에서 평생 동안 가졌던 ‘글쓰기’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았다. 어쩌면 사람들의 글재주는 ‘종이 한 장’의 차이일수 있다. ‘계속 쓰느냐’, ‘쓰지 않는 냐’, 끝까지 버티는 글은 꾸준히 쓰는 ‘엉덩이의 힘’과 매일매일 새롭게 글 쓰는 의지를 다지는 ‘회복탄력성’으로 탄생한다.


 황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서점입니다>에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나온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하며 ‘행복’과 ‘행복감’에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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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말한 행복은 전 생애에 걸친 성취를 말해요. 화가가 되기로 결정했다면, 평생에 걸쳐 위대한 화가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위대한 화가가 된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산 게 되는 거예요. ”(p.236)


 "일생 동안 공들여 만든 성취, 좋아요. 그런데 아리라는 분의 말이 나중에는 이렇게 이해되더라고요. 그가 말하는 행복이란 마지막 순간을 위해서 긴 인생을 저당 잡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요. 마지막 순간에 한 번 행복해지기 위해 평생 노력만 하면서 불행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요. 이렇게 생각하니까 행복이란 게 참 끔찍해졌어요. 나의 온 생을 단 하나의 성취를 위해 갈아 넣는 것이 너무 허무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이제 행복이 아닌 행복감을 추구하며 살아야지 하고 생각을 바꾼 거예요.”(p.236-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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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되고 본인의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것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최고의 행복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행복’의 반대가 꼭 ‘불행’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평생을 걸쳐 본인의 꿈을 성취하지 못하더라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좌절하는 순간, 그리고 또다시 마음을 다독이며 일어서는 시간들, 그 모든 순간들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모두 행복감이다. 지루하고 힘든 혼자만의 글쓰기 싸움, 비록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행복한 목표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글 쓰는 순간순간의 행복감이다. 그런 마음으로 계속 글을 쓰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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