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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Nov 22. 2021

눈먼 자의 페미니즘

<매일 충전 30분 글쓰기> 2021년 11월 22일 09:02-09:40

요즘 여성의 권리, 차별,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있다. 얼마 전 이준석, 장혜영 의원의 논쟁에서 보듯이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는 사회적으로 남녀 갈등을 부각하는 개념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원래 이 단어는 ‘여성의 특징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는 뜻의 라틴어 ‘페미나(femina)’에서 유래한 말로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던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며,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의 권리와 주체성을 확장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이론 및 운동을 가리킨다고 한다. 19세기에 이르러서야 겨우 여성들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고 21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여성에 대한 사회적 관념과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 중이다.


 사실 원래부터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아 일부러 찾아서 읽은 것은 아니다. 이상하게도 최근 독서 모임에서 요구하는 책들이 다 페미니즘에 관한 책들이어서 며칠째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그중 한 독서 모임에서는 그 책들을 읽고 난 뒤 자신이 사회에서, 가정에서 당했던 차별 경험을 쓰는 숙제를 주고 있다. 하지만 난 계속 그 숙제를 못 내고 있다. 차별을 당한 경험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슨 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이다. 그동안 쌓아왔던 차별들, 서러움들이 켜켜이 쌓여서 건드리기만 하면 터질 것 같아 꾹꾹 눌러 두고만 있다.


 대한민국 여성으로 살면서 남녀 차별을 안 당해 본 여성이 과연 있을까? 가정 내에서,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많은 차별을 당했을 것이다. 특히 가까운 가족들이 저지르는 차별은 세상에서 가장 마음이 아프다. 올해 80세 가까워지는 우리 친정아버지는 21세기인 요즘도 ‘출가외인’ 운운하시며 친손자와 외손자를 차별하신다. 그리고 아예 대놓고 나랑 같이 있는 신랑에게


 ”딸보다는 아들이 최고지. 이 외손자들은 자기 엄마가 없으면 내 산소에라도 찾아올까? 아니지. 딸은 아무 소용도 없어.“


 시댁에서는 받는 상처는 그냥 무시하고 잊을 수 있지만 친정아버지의 말씀들은 내 존재 자체가 성별에 의해 무시되는 것 같아 매번 마음이 아프다.


 한번 크게 반항했다가 더 완고하게 바뀌신 친정 부모님을 보며 그냥 마음을 비웠다. 알면서도 모른 척, 모르면 더 모르는 척해야 편하기에 묵묵히 감내하며 살았던 것 같다. ‘벙어리 삼 년, 장님 삼 년, 귀머거리 삼 년’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자꾸만 이런 책들을 읽다 보면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홀로 눈 뜬 의사의 아내처럼 될까 두렵다.


 어제도 매 끼니 나만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을 보며 솟구치는 분노를 눌렀다. 그러면서 우리 남자 가족들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페미니즘’으로 남녀와의 갈등을 유발하고 싸움을 붙여서는 안 될 것이다. 남녀 차별에 둔감한 그들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 온 사회가 나쁜 것이다. 지금 난 ‘페미니즘’ 책으로 현실을 인식하는 눈을 반쯤 뜨고 있지만, 이 눈을 다시 감을지, 다시 뜰지 아직 고민해 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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