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진주 Sep 05. 2023

수험생의 번 아웃

'번 아웃'은 ‘Burnout Syndrome’, 한자어로 ‘소진(燒盡)’으로 회사 업무나 개인적인 일에서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와 피로를 느끼고 일에 대한 열정, 목적, 성취감을 잃는 증상이다. 내 경험상 이런 '번 아웃'은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비해 결과물은 형편없고 ‘나 외에는 모든 사람들이 모든 일을 잘하고 있다’라고 느낄 때 종종 생긴다.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이른바 마음의 감기라고나 할까?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심하게, 혹은 약하게 지나간다.


 큰 애가 2.4주 기숙사(2주에 한 번 집으로 스케줄)를 신청한 첫 주말, 아들의 교복을 비롯한 빨랫감을 갖다 주고 온 남편이 걱정스레 말했다. 아들의 상태가 ‘번아웃’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은 제자리인 듯싶고, 곧 있을 실질적인 수능이라고 할 수 있는 9월 모의고사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번 아웃’이라는 ‘출구’를 스스로 마련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짐작했다.


 하지만 남편의 말을 곰곰이 곱씹어 생각하니, 아들의 증상이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한 것은 담임 선생님과의 수시 상담 이후부터였다. 기이하게도 반에는 아들과 비슷한 성적에, 같은 학교, 같은 학과를 가고 싶은 학생이 있었다. 그것도 아들보다 유리한 수시 전형을 쓸 수 있고, 수학을 좀 더 잘하는 친구. 어쩌면 선의의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지만, 막상 내 아들의 상황이 되고 보니 속상하기만 했다. 한 고등학교에서 같은 대학 지망에 같은 학과 지망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수시 경쟁에서만큼은 합격 가능성이 없었다. 아들은 십 대의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좌절을 맛보고 ‘회피’를 선택한 듯싶었다.


 대학입시를 위해 쓸 수 있는 수시 원서 카드 6장, 말로만 들으면 수능 성적 한 번으로 결정되는 정시보다 훨씬 학생들에게 ‘공평’하고 ‘선택의 폭’이 넓은 제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쓸 수 있는 원서 카드가 많지 않다. 올해 처음으로 도입된 ‘자기소개서 폐지’와 ‘각 종 수상기록’ 삭제로 엄마들의 입김과 치맛바람은 줄었지만, 여전히 수시원서는 ‘학교에서 가능성 있는 학생들의 잔치’였다. 성적순으로, 가능성 위주로 본인의 아이들의 순위가 뒤로 밀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수능 대박’이라는 신기루를 쫓을 수밖에 없다.


 고1, 2까지 열심히 놀던 아이들도 고3이 되면 눈을 번득이며 공부하기 시작한다. 올 1년으로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아는 탓이다. 주변의 모든 관심과 수능에 대한 압박, 불확실한 미래로 마음의 병이 심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3 아이 들치고 한 번쯤 안 아픈 아이들이 없다. 고3이 되기 전까지 거의 병치레가 없었던 큰 애도 올해도 들어 몇 번이고 병원 신세를 졌다. 목표가 뚜렷하고 완벽주의자형 아이들이 흔히 겪는 마음의 감기이다.


 초보 고3 엄마로서 지금까지의 일들을 돌이켜 보면, 고3 엄마, 생각보다 견딜만했다. 특히나 큰 애처럼 자기의 꿈과 가고 싶은 대학, 확과가 확고하다면 생각보다 챙겨야 할 일이 생각보다 덜하다. 어차피 여러 가지 다른 대학입시 정보를 공부하고 알려줘도 아들의 선택은 ‘No'일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더 어렵다. 한 가지 목표로만 매진하던 녀석이 수시원서를 쓰기도 전에 본인의 의지와는 다른, 주변의 상황으로 좌절을 맞는 다면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원래 인생은 좌절의 연속이야’라며 인생의 쓴 맛을 알려줘야 하나, 아니면 ‘다음에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거야’라며 다독거려야 할까?


 오늘로 수능까지 D-72일째, 번 아웃을 걸린 듯한 아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