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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버스 안에서

by 하늘진주

몇 년 만에 친정으로 가는 길이다. 올해는 고3 큰 애의 입시에 온 가족의 신경이 곤두서 있다 보니 다른 일정을 잡을 수가 없다. 얼마 전 친정아버지가 수술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도저히 안 가 볼 수가 없었다.


홀로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자연스레 버스 안의 사람들을 관찰하게 된다. 시끌벅적 온 가족이 움직일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다. 아이들과 남편이 있을 때는 사소한 움직임, 기분 하나하나에 반응하며 이것저것 챙기기 바빴는데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해 본다.



혼자 있으니 비로소 다른 사람들이 보인다. 똑같은 장소, 꼼짝달싹 할 수 없는 버스 좌석, 4시간가량을 그들과 동행한다. 여행객들은 저마다 다른 복장, 바리바리 챙긴 짐꾸러미, 도착지에 얼른 다다르길 기다리며 애써 지루한 표정들을 감춘다. 그들은 어떤 사연으로 나와 같은 도착지로 향하는 걸까?

버스 안의 조용한 침묵 속에서 난데없는 호기심만 모락모락 피어난다.



언제부터인가 스쳐 지나가는 곳에서 낯선 이들과 직접 부딪히는 것이 두렵다. 생면부지의 사람들, 분명 그들도 각자의 시간 속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고생한다', '수고한다'라는 따뜻한 눈빛보다는 차가운 외면이라니. 누군가와의 소곤거리는 정담보다는 핸드폰 세계의 익숙한 공간이 정겹고, 한 번도 보지 못한 TV 속 유명인들의 모습이 더 친숙하다.



가까이 있어도 자꾸만 벽이 느껴진다. 한 버스에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어도 우리는 서로에게 낯선 섬이다. 도무지 곁을 보여주지 않는 차가운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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