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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의 싸움 개

by 하늘진주

‘오늘은 안 마주칠 수 있을까?’

요즘 현관문을 나설 때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층수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1층에서 올라오면 Ok, 어쩌다 우리 집보다 위층에서 내려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괜스레 긴장이 된다.


“크르르”

아, 진짜, 또 부딪혔다. 우리 아파트 싸움 개. 그 녀석은 여전히 흰자위를 번득이며 나를 노려본다. 그것도 주인아줌마의 품에 안전하게 폭 안긴 채 말이다. 그 강아지는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는 내내 자꾸만 ‘으르렁’ 거리고 있다. 또 조금만 다리만 움직여도 뒤집어질 듯이 짖어대겠지? 아, 정말, 싫은 녀석이다.


그 녀석은 겉보기에 참 사랑스러운 외형을 지녔다. 여성의 품에 폭 안길 만큼 귀여운 체구, 하얀 눈처럼 보슬보슬한 폭신한 털, 검정 구슬처럼 뽀얗고 맑은 눈, 누구라도 호감을 가질만한 엄청 귀여운 강아지이다. 어린 시절 개에게 물린 기억 때문에 세상의 모든 개를 무서워하는 편이지만, 신기하게도 그 녀석만큼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참 사랑스럽구나.’라며 절로 눈이 갔다. 그만큼 예쁜 강아지였다. 그러나 그런 훈훈한 감정도 잠시, 그 ‘까탈스러운’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세상에 둘도 없는 원수처럼 짖어댔고 온몸으로 날뛰었다.


껄끄러운 첫 만남 후, 내 어떤 모습이 그 녀석의 심기를 건드렸을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옷차림, 향기, 행동, 외모? 처음에는 미안하게 여기며 멋쩍게 웃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예쁘다고 계속 쳐다보지 말고 엘리베이터 구석에 얌전히 있어야지’라고 이렇게 다짐도 했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그냥 성격이 ‘못된’ 거였다 성질머리 더러운 그 강아지가 날뛰는 대상은 딱히 ‘나’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체구가 있는 아저씨든, 상냥한 미소를 보내는 아줌마든, 할머니 손을 꼭 붙들고 유치원에 가는 꼬맹이든, 그 녀석은 어느 특정 대상을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을 보기만 하면 으르렁거렸고 쉴 새 없이 짖어댔다. 12명만 타도 숨이 콱 막히는 ‘그 좁은 엘. 리. 베. 이. 터 안에서!’ 말이다. 움직이는 네모의 좁은 상자 안에서 그 강아지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었다.


고약한 그 녀석의 성격을 깨달은 이후부터 야멸차게 행동을 바꿨다. 예전에는 조금이라도 그 강아지의 관심을 끌고 싶어 눈이 마주칠 때마다 비굴하게 웃었지만, 요즘은 차갑게 고개를 돌린다. 흥, 너도 외면당하는 고통을 느껴보라지. 그러면서 속으로 엄청 욕을 해댄다. ‘저놈의 성질머리!’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층수 번호만 헤아린다. 그러면 그 녀석과 나 사이에는 ‘으르렁’ 소리가 가득한 차가운 침묵만이 흐른다.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과거 냉전시대 소련과 미국의 아슬아슬함과 같은 긴장이 그 녀석과 나 사이에 흐른다. 손바닥에 송골송골 맺히는 초조함의 땀이 엘리베이터의 느릿한 움직임과 함께 조금씩 바닥으로 떨어진다.


사실, 그 강아지의 주인아줌마도 문제다. ‘문제 자식 뒤에는 문제 부모가 있다’는 말처럼, 이는 강아지 양육에도 해당되는 말인 듯싶다. 아줌마는 좀처럼 그 녀석을 품 안에서 내려놓지 않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밖에서 산책을 시킬 때도 말이다. 주인아줌마는 그 녀석의 고약한 성질머리를 알아서인지, 아니면 더러운 땅바닥에 못 내려놓을 만큼 귀한 자식이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주인은 그 녀석을 항상 따뜻한 품속에 꼭 안고 다닌다. 한마디로, 그 강아지는 제 발로 걷는 모습을 보인 적 없는 우리 아파트의 왕족 강아지다.


그런데, 참 우연찮게 그 녀석의 발이 땅에 닿아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마침, 주인아줌마는 강아지의 목줄을 길게 늘어뜨린 채 다른 볼일을 하고 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마냥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귀신같은 강아지는 낯선 눈길을 알아채고 나를 향해 큰소리로 짖기 시작했다. 순간 놀란 마음에 몸을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나를 눈치챈 아줌마는 요란하게 움직이는 그 녀석의 목줄을 살짝 붙들었다. 그리고는 아주 상냥한 목소리로 강아지에게 말했다. “어머, 아가야, 그러면 안 돼~” 단호하게도 아닌 세상에 둘도 없이 다정한 목소리였다. 그리고는 내게 미소를 지었다. ‘어머, 우리 애가 실수했네요. 하지만 우리 개가 사랑스러우니, 괜찮죠?’라는 속내가 풍기면서 말이다. 얼른 본인의 말에 동조하라는 듯이 눈짓을 보냈다.


그 만남 이후부터 마음속에서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던 그 녀석에 향한 얄미움의 실선들이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급기야는 그 강아지와 마주치기만 해도 모든 행동들이 ‘꼴 보기 싫은’ 미움의 물살로 바뀌었다. 주인아줌마는 본인이 좋으면 다른 사람들도 강아지를 무조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어이가 없었던 그 일 이후, 그 녀석의 ‘싸가지 없던 성격’이 어쩌면 눈치 없는 주인의 영향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 들기 시작했다.


매일 엘리베이터의 층수를 확인한다. 그 싸가지 없는 개가 사는 층수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었다가 내려오면 또다시 고민의 시간이다. 지금 탈까? 아니면 나중에? 그 녀석은 이런 내 마음 따위는 신경도 안 쓸 것이다. 이건 오로지 나 혼자만의 싸움이다. 항상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소망한다. 제발 아침부터 그 녀석을 만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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