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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Sep 23. 2023

새 밥솥으로 바꾸며

 얼마 전에 TV에서 인기리에 광고하는 C브랜드의 새 전기밥솥을 하나 구매했다. 집에 있는 밥솥이 별다른 고장은 없었지만, 사용한 지 10년이 넘은 터라 바꿀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오랜 세월의 생활감으로 쌓인 내 솥의 ‘크고 작은 스크래치’들이 유난히 신경 쓰였고, 밥맛도 조금 변한 것이 영 마음에 안 든 터였다.


 그래, 10년이 넘으면 전기 제품은 주기적으로 바꿔줘야 한다던데...... 프라이팬이나 내 솥의 스크래치는 몸에 안 좋다던데......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변명을 떠올리며 며칠 동안 열심히 온라인 쇼핑몰을 뒤져 기어이 마음에 꼭 드는 밥솥 하나를 발견했다. 이 전기밥솥은 요즘 유명인의 깜찍하고 귀여운 밀당으로 유명한데, 그냥 ’딱‘ 보기에도 똘똘하고 유능해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을 눈앞에 대령할 것 같았다. 귀엽고 예쁜 디자인만큼 얼마나 맛있는 밥을 지을까? 택배주문을 받기도 전에 새 밥솥이 지을 밥을 상상하며 입안에 침이 잔뜩 고였다.


 그렇게 새 전기밥솥이 오길 기다리며 마지막으로 10년이 넘은 밥솥에 흰 쌀과 잡곡 쌀, 그리고 서리태를 골고루 섞고는 밥물을 맞추었다. ‘이 녀석과도 며칠 뒤면 이별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담담했던 마음속이 너울성 파도가 되어 요동쳤다. 분명 내 선택과 필요에 의해서 새 밥솥을 구매했는데, 이런 요상한 감정변화라니... 사용기간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성능이 부족해서 10년이 넘은 헌 밥솥과는 이별을 해야 하는 상황이 갑자기 서글퍼졌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겠지만, 모든 것들은 주기적으로 고치고 때우지 않으면 오래된 것은 새로운 것에게 그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다. 새 밥솥에 밀려 곧 버려질 헌 밥솥이 곧 다가올 내 미래의 모습 같아 마음이 답답하다.


 몇 년째 강사 일을 하면서 종종 불안감에 휩싸일 때가 많다. 아직까지는 ‘다행히’ 주기적으로 불러주는 학교가 있고, 찾아주는 곳이 있어 그럭저럭 용돈벌이를 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언제까지 이렇게 일할 수 있을지 두렵다. 10년 동안 사용했던 밥솥을, 전기 제품을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과감히 새것으로 바꾸는 것처럼, 내 일자리가 다른 누군가, 새로운 능력으로 장착한 사람으로 언제 교체될지는 알 수 없다. ‘절대부동’의 일자리는 있을 수 없다. 맡았던 분기들이 끝나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시기가 되면 초조한 마음으로 연락을 기다린다. ‘이번에도 생존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연륜이 쌓여 수업은 유연해지지만, ‘식상함’이 아닌 새로운 능력의 인물을 원하는 것도 사람의 심리다.


 미래에 대한 초조함이 커질수록 많은 책들을 읽고 쓰고 현재 역량을 키울 수업들을 열심히 찾아다닌다. 이른바 기존 역량의 부족한 스크래치를 조금이라도 메우려는 작업이랄까? 나날이 새로운 기술들은 발전하고 배움에는 끝이 없다. 한정된 역량 속에서 조금이라도 학교에서의 어린 학생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는 분주하게 움직이고 배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배우고 노력하다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시기가 되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 시기는 언제쯤 눈치챌 수 있을까? 헌 밥솥을 새 밥솥으로 바꿀 때처럼 순식간에 이루어질까? 아니면 서서히 스스로의 모자람을 느끼며 일을 놓게 될까?

 

 10년이 넘게 국민 MC로 유명한 유재석은 자기 은퇴에 대해 <무한도전>에서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

 “그런 날이 무조건 와. 자연스러운 거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준비하라는 게 나쁜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한창 전성기를 누리는 <무한도전> 시기에도 은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고 아끼는 동생 하하와 노홍철에게 이렇게 말하며 준비하라고 했다. 항상 제자리에 머물기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했던 그는 몇 년째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한때 그와 함께 ‘국민 MC'로 불렸던 또 다른 이를 생각하면 참 대비되는 모습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교체해야만 하는 시기가 온다. 언젠가는 내려갈 시기를 생각하며 오늘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 어떻게 새로운 삶을 맞이해야 할지 고민한다. 만약 그때가 온다면 그동안 나를 열심히 찾아준 이들에게 감사하며 내려올 수 있으면 좋겠다. 갑자기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내려갈 시기가 되어 물러나듯이 자연스러운 이별을 맞이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10년 동안 우리 가족의 끼니를 위해서 열심히 일해준 전기밥솥에게 인사를 전해 본다. 그동안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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