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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Oct 11. 2023

새로운 인간 종, '쓰는 인간'

 요즘은 누구나 작가 등단이 가능한 시대다. 그런 탓에 주변에서 본인의 책이 나왔다며 연락을 많이 받곤 한다. 때로는 출판 종이책으로, 때로는 전자책으로 말이다. 오직 유명 출판사 공모전이나 신춘문예로만 작가의 등단여부를 인정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참 고무적인 현상이다. 확실히 작가가 되는 길이 넓어졌다. ‘신춘문예’라는 정규적인 엘리트코스를 밟아서 힘들게 작가가 된 사람들은 이런 상황이 좀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 글을 어떤 방식이든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은 글쓴이의 가장 큰 소망인 것을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상에서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쓰는 글은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한 것이다. 몰래 공책에 긁적이는 일기가 아닌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진리이다. 그 내용은 개인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사회의 이슈까지 다양하다. 사람들은 글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거나 내밀한 가정사를 고백한다. 또는 책을 읽고 쓴 소감, 알고 있는 정보들을 논리적으로 풀어낸다. 이처럼 온라인의 글들은 제각각 다른데 비해, 독자들이 선호하는 글의 종류는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다. 또한 글에 대한 그들의 평가 역시 냉정하다. 본인의 글을 혼자서 씹고 뜯고 즐기고 싶었다면 이렇게 용기를 내어 온라인상에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글에 대한 독자의 평가가 무시이든 호감이든 그건 글쓴이가 감내해야 할 몫이다.


 시중 서점가에는 글쓰기의 욕망을 자극하는 다양한 책들이 널려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첫 문장의 두려움을 버려라’, ‘무조건 써라’ 등등, 제목들만 읽어도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불꽃이 치밀어 오른다. 그동안 글쓰기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도 자칭 ‘글쓰기 일급비법’이라는 책들을 읽노라면 하루아침에 작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무조건 글을 쓰면 돈 잘 버는 베스트셀러가 작가가 될 수 있다는데 누가 마다할까? 그동안 비굴하게 눈치를 보던 상사 앞에 사직서를 시원하게 던지는 모습이 생각나 내심 흐뭇하다. 각종 책 출판 기념회에 나가 독자들을 만나면 어떤 모습으로 사인을 휘갈길까?


 하지만 글을 꾸준히 써 보거나, 책과 오랫동안 가까이 한 사람들이라면 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길은 일확천금을 타는 확률보다 어렵고, 겨우 책 한 권을 출간했다고 해서 바로 유명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마치 러시아의 전통인형 마트표시카를 연상케 한다. 이 인형은 하나의 목각 인형 안에 크기순으로 똑같은 인형이 들어 있어 까도 까도 새로운 모습이 펼쳐진다. 작가의 길 역시 마찬가지다. 등단이 되었다고 해서 바로 누구나 알아주는 일류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관문을 넘기면 또 다른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누구나 우러러보고 부러워하는 황금빛 유명세는 극소수의 작가들만의 것이다. 그들조차도 쓰고 지우고 고치는 지루한 습작 과정을 거치며 그 명성을 얻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이토록 열광적으로 글을 쓰고 싶어 할까? 어쩌면 무한대의 시간 속에 본인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마지막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나 역시 모두가 잠든 새벽에, 혹은 늦은 밤에 글을 쓴다. 하루 종일 생업을 마치고 늦은 밤에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말이다.


 글을 쓰는 동안 하루 종일 마음속에 꽁꽁 품고 있던 이야기, 주변인들을 만나며 느꼈던 마음, 상상의 나래 속에서 활개 쳤던 수많은 생각들이 자유롭게 날갯짓을 한다. 지구 반대편에는 전쟁이 일어나고, 자연의 규칙이 뒤죽박죽 요동치고, 스쳐 지나간 사람들이 몇 명인지도 모를 오늘, 글을 쓰면서 비로써 하루가 완성된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은 언젠가 나만의 기록으로 남게 되겠지. 유명한 작가의 글이 아니어도, 수많은 글 중에서 묻히더라도 내 글만은 살아남을 것이다.


 유명 작가가 되는 일은 모든 글쓴이들의 최종 목적지가 아닐 수 있다. 어떤 이는 그저 글을 쓸 수 있기에 행복하다. 생각을 정리하고 사회와 더불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어 감사하다. 누구나 작가가 되는 시대, 이제는 글쓴이를 새로운 인간 종, ‘쓰는 인간’으로 불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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