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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Oct 13. 2023

<진짜 도둑>(서평)

“쿼드 에라드 데몬스트 란덤”(이로써 증명은 끝났다)―<진짜 도둑>(윌리엄 스타이크, 비룡소, 2022)


 세상에는 겉으로 보이는 객관적인 사실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너무도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완벽한 논리로 증명할 수 없는 일들을 쉽게 거짓이라 치부하며 의심부터 한다. 여기, 사건 현장이 하나 있다. 작은 틈새 하나 보이지 않고 창문도, 굴뚝도, 지하실로 내려가는 입구도 없는 완벽한 밀실이다. 게다가 보물창고를 가로막은 육중한 나무문은 네 개의 자물쇠로 꽁꽁 채워져 있다. 그 열쇠는 오직 주인과 수문장만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보물들이 사라졌다. 이 경우, 두 사람 중 누가 범인일까? 윌리엄 스타이크의 <진짜 도둑>(비룡소, 2022)은 완벽한 밀실인 왕실 보물 창고에서 벌어진 도난 사건을 둘러싼 소동을 다룬다.


 이 책의 주인공 가윈은 우직하고 성실한 성격으로 왕실의 보물창고를 지키는 수문장이다. 그는 아버지 같은 배질 왕을 마음 깊이 사랑한 나머지 원래 꿈인 건축 설계사를 포기하고 왕의 보물창고 지키는 일을 받아들였다. 배질 왕 역시 그런 가윈을 깊이 신뢰하며 보물창고의 열쇠를 맡겼다. 어느 날 왕국의 보물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거듭된 의심스러운 상황으로 점점 배질 왕은 가윈을 도둑으로 의심하고 법정에 세운다. 가윈은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누구 하나 그를 믿어주지 않는다. 결국 그는 분노하며 재판이 진행 중인 법정에서 도망친다. 하지만 진짜 도둑은 다른 이였다. 왕의 보물을 훔친 데릭은 재판정에 선 가윈을 바라보며 죄책감에 빠진다. 그는 모든 상황이 원래대로 돌아가기 바라며 훔친 보물들을 제자리에 돌려놓지만, 가윈은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데릭은 떠나간 가윈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나선다.


 <진짜도둑>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쓰인 동화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양심, 용서, 우정, 신의 등 모든 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 우화이기도 하다. 책을 읽은 독자들은 단순하지 않는 스토리의 전개에 놀라고,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심리묘사에 감탄한다. 작가는 불과 77페이지 남짓한 분량의 그림책에 모든 인간군상의 다양한 감정들을 모두 담았다. 윌리엄 스타이크는 독자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게 이야기 전개를 크게 세 개의 장으로 나누었다. 그런 배려로 독자들은 ‘도둑질’이라는 주요 행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들을 3가지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첫 번째 장은 친구의 범죄가 완벽하게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고민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작가는 보물창고 수문장 거위 가윈의 법정 소동과 주변 인물들에 대해 묘사이렇게 질문한다. “너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래?” 독자들은 한순간에 도둑으로 몰린 억울한 가윈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행동들을 마냥 비난하지도 못한다. 생각해 보자. 보물창고의 보물들은 자꾸만 없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가윈이 지키는 보물창고는 문을 통하지 않고는 안으로 들어갈 수도, 밖으로 빠져나갈 수도 없다. “쿼드 에라드 데몬스트 란덤”(이로써 증명은 끝났다)(p.18)은 극 중 인물인 총독 가윈을 취조한 후 급한 라틴어이다. 이처럼 모든 객관적인 정황들은 가윈을 도둑으로 몰고 있다. 그 상황에서 배질 왕과 가윈이 친했던 친구들이 한 치의 의심 없이 가윈을 믿을 수 있을까? 어떤 경우에도 사람에 대한 신의를 유지할 수 있는지 작가는 묻고 있다.


 두 번째 장은 양심과 지도자의 통치에 대해 고려해 볼만한 부분이다. 이 장에는 진짜 도둑 데릭이 등장한다. 그는 우연히 배질왕의 보물 창고를 발견하고 “문득 늙은 참나무의 뒤틀린 뿌리 사이에 있는 초라한 자기 집”(p.37)을 떠올린다. 눅눅하고 툭하면 부서지는 벽과 곰팡이 핀 침대, 그리고 퀴퀴한 냄새까지, 휘황찬란한 왕의 보물창고만 비교하면 너무도 비참한 환경이다. 불운한 자신의 처지에 격분한 데릭은 결국 배질왕의 보물을 훔치고 만다. 그러면서 그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지금의 삶에서 더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그랬던 그가 법정에 선 가윈을 발견한 후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물론 왕의 보물을 훔친 데릭의 행동은 잘못되었다. 하지만, 궁핍한 백성의 삶을 제대로 보살피지 않고 개인적인 보물들과 사리사욕을 채운 배질 왕의 모습 역시 온당치 못하다.


 세 번째 장은 잘못을 한 사람들에 대한 용서에 대한 부분이다. 길을 떠난 데릭은 가윈을 만나고 진실을 고백한다. 그리고 다시 왕국으로 돌아가자고 청한다. 가윈은 죄를 뉘우친 데릭을 용서할 수 있지만, 다른 이들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용서하지. 용서하고말고. 자네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가네. 고통이 뭔지는 나도 자네만큼이나 잘 알지 않나. 하지만 한때 내 친구라고 떠들고 다녔던 그자들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런 위선자들보다는 차라리 여기 이 나무들이 낫지. 그 누구보다도 배질왕은 절대 용서 못해.”(p.70)


 한때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아버지처럼 떠받들었던 배질 왕, 가윈은 그 믿음이 컸던 만큼 용서 또한 쉽지 않다. 하지만 작가는 이 부분에서 가윈이 너무도 쉽게 용서를 선택하는 장면을 그린다. 데릭의 말을 빌려 “그래, 실수는 누구나 저지르는 법이니.”(p.71)이라 말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진짜 도둑>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인 만큼 서로에게 화해와 평화가 깃드는 용서로 마무리 지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극적인 재미를 위해서라면 좀 더 섬세한 갈등 요소를 넣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을 쓴 윌리엄 스타이크는 그림책 작가가 되기 전 <뉴스위크>에서 ‘카툰의 왕’이라고 꼽힐 정도로 인기 있는 카투니스트였다. 그는 61세에 그림책 작가가 되었고 왕성한 창작욕으로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 <멋진 뼈다귀>,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 등 다양한 그림책을 썼다. 칼데콧상 2회, 뉴베리상 수상한 미국의 대표적인 아동작가이기도 하다. 특히 그의 작품 <슈렉>은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다. 윌리엄 스타이크가 늦은 나이에 그림책 작가로 데뷔한 탓인지 그의 작품 속에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읽어도 충분히 공감할만한 삶의 지혜와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재미이다.


 <진짜도둑>에서의 일어난 모든 소동들을 “세상에 완벽이란 없으니까요”(p.77)와 “그래, 실수는 누구나 저지르는 법이니.”(p.71)의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면서 작가는 말한다. 너무 쉽게 논리적으로 모든 것을 다 증명할 수 있다고 말하지 말라고 말이다. 특히 특별한 권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쿼드 에라드 데몬스트 란덤”(이로써 증명은 끝났다)을 말하기 전에 더욱 주변의 시시비비를 살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진짜도둑>은 세상을 배워가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인간들의 다양한 심리를 연구하고 싶은 어른들이 꼭 봐야 할 필독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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