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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Oct 17. 2023

역사를 지지리도 싫어하는 아들 녀석

 요즘 고1 둘째의 중간고사 기간이다. 오늘 한국사 시험을 치르고 온 아들이 사부작사부작 가채점을 하더니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음, 또다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시간이군. 그 녀석은 잔뜩 울상을 짓더니 역사 시험에서 반타작을 맞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굳이 지금 채점한 결과를 알려주는 이유는 나중에 받을 엄마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설마, 그럴까? 아마도 성적이 나온 후의 잔소리가 두려워서 일 것이다.

 

 사실 이번 역사 시험의 결과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아들은 어젯밤에서야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 그것도 한국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무척 어려워 할 일제 강점기 부분을 말이다. ‘무단통치, 문화통치, 민족말살 정책’부터 독립군들의 수많은 투쟁 기록들과 동학, 갑오개혁 등등 얼마나 외울 것이 많은가? 그 녀석이 그때부터 역사 공부를 한다며 역사프린트를 들고 끙끙거릴 때 이미 이런 결과를 예상했다. 아들은 역사 시험이 쉽게 출제된다는 말을 들어 ‘괜찮다’며 설레발을 쳤다. 그게 ‘역사 문외한’인 아들에게 가능한 일일까? 시험을 본 후 둘째는 억울하다며 원통해했지만, 나는 당연한 결과라며 화난 속을 삭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처럼, 둘째는 역사를 정말 싫어한다. 보통 문과 성향의 아이들은 역사를 좋아하고, 이과 성향의 아이들은 역사를 싫어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으로 빗대어 볼 때 역사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유무는 단순히 이분법으로 나눌 일이 아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보면 문과를 선택한 학생이어도 역사를 싫어하는 경우는 많았고 오히려 이과를 선택한 아이들이 역사를 선호하는 경우는 종종 봤다.


 아이들은 왜 역사를 싫어할까? 역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역사는 외울 게 너무 많아서 싫다고들 한다. 아니면 딱히 관심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일상생활에서 보기 힘든 생소한 용어들,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많이 나와 역사에 대한 부담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다. 굳이 ‘왜 역사를 배워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 것이다. 사람들은 친숙한 것에 더 호감을 느낀다. 역사는 알아야 한다. 하지만 배움의 당위성을 찾기 위해 유명한 한국사 강사 최태성처럼 “길을 잃고 방황할 때마다 나는 역사에서 답을 찾았다”라는 거창한 이유를 들 생각은 없다. 아무래도 역사를 배우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이 가능하다. 미래를 설계할 때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화제가 되는 인공지능 로봇과 관련된 논란은 과거의 19세기 산업혁명과 유사한 점이 많다. 현대인들은 인공지능이 지닌 편리성을 좋아하지만, 그로 인해 생길 부작용에 대해서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혹시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람들의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을지에 관한 걱정이 많다. 19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기계로 인한 대량 생산을 반겼지만, 그로 인해 생기는 대량 실업사태에 대해서는 분노했다. 이 일들은 기계를 부수는 러다이트 운동으로 이어지고 인간소외현상이 생겨나게 되었다. 몇십 년이 흐른 지금, 산업혁명의 결과로 생긴 토지오염, 대기오염 등과 부작용 때문에 지구는 병들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들 한다. 다시 말해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과거의 한 순간은 사건으로, 사건은 사람들의 갈등으로, 사람들의 갈등은 현재와의 연결로 이어진다. 인간도 과거 속의 한 존재요, 이들 모두 과거와 현재에 놓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역사를 지지리도 싫어하는 둘째도 결국 무한대로 흐르는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 녀석도 역시 역사 속 한 사람일 뿐이니까 말이다.


  역사 시험을 시원하게 망치고 만 둘째는 하루 종일 시무룩하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이야기한다. “엄마, 그래도 일제 강점기 지나면 6.25와 현대사가 나오니까, 그쪽은 좀 쉽겠죠?” 음, 글쎄다. 아무래도 이미 겪어온 어른들은 그 시절이 어렵지 않지만, 둘째에게는 여전히 어렵고 힘들지 않을까? 아들이 역사를 쓸모로, 미래를 반추할 수 있는 과목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텐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부디 마음을 열고 지나간 시간들을 보고 느끼고 즐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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