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 옆 작은 공원은 사람들이 자주 몰려드는 놀이터다. 몇 달 전에 자연친화적인 분위기로 새 단장을 끝나고 난 후 꼬마 손님들이 부쩍 늘었다. 오래되고 낡았던 뺑뺑이 회전그네를 치우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방방이와 그물 놀이터를 설치한 후부터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 즐겨 찾고 있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아들들이 어렸을 때의 광경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그 시절이다. 나 역시도 젊은 엄마들처럼 매 순간 힘이 넘쳤던 우리 꼬맹이들의 기운을 조금이라도 해소시키고자 하루 종일 놀이터에서 살았다.
작은 공원 산책로를 따라 걷다 저도 모르게 엄마들의 소곤거리는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앞으로 아이들을 위한 교육비에 대한 걱정, 한글 떼는 문제, 영어를 시작하는 시기 등 그녀들의 한숨소리가 가득하다. 엄마들은 정신없이 뛰어노는 어린아이들을 지켜보며 앞으로 어떻게 키울지 걱정이 많은 듯했다. 예전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 역시도 불안을 조성하는 이웃 엄마들의 조언에 이끌려 돈을 많이 썼다. 결국 다 쓸데없는 짓이었다는 결론을 뒤늦게 얻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냥 지금 돈을 아껴서 정말 아이들이 필요할 때 돈을 쓰면 좋을 텐데’라는 마음이 들었다. 괜히 걸음을 멈추고 ‘나보다 어려 보이는’ 엄마들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늘어놓고 싶었다. 그 순간 얼마 전 다른 선배 엄마들에게서 느꼈던 서운함이 떠올랐다.
“그럴 필요 없어요.”
요즘 고3 아이를 위한 시간을 애써 만들고 있다는 말을 했을 때 선배엄마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이미 예전에 아이를 대학에 보낸 엄마들은 ‘아이가 고3이지, 엄마가 고3이냐’, ‘엄마가 그렇게 해 봐야 아이는 전혀 모른다.’ ‘그럴 바에야 엄마가 원하는 일을 찾아라.’ 등등의 말을 했다. 그리고 모든 스케줄을 잡을 때 큰 애를 먼저 생각하는 나를 아주 의아하게 쳐다봤다. 그럴 때면 그들의 조언이 맞을지 모른다고 여기면서도 내심 섭섭했다. 선배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경험한 값진 충고를 하는 것일 텐데 왜 그렇게 마냥 고맙지 않았을까?
먼 미래를 생각할 때 올 한 해 아이를 위해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나를 위한 투자가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큰 애를 신경 쓰고 싶다는 마음먹은 이유는 일생에 한 번뿐인 입시, 그 불안을 함께 아이와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여느 때처럼 일에 치여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기보다는 올해만큼은 아이가 느끼는 고민과 감정에 공감하며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한심한 사람’ 인양 쳐다봤다. 그런 시선을 느껴질 때면 지금의 선택이 잘못되었나 싶은 생각에 기분이 묘해졌다.
학창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기까지의 모습들은 비슷비슷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를 가고 시험을 치른다. 그리고 대학을 갈 때쯤 자기만의 삶을 찾아 부모에게서 독립한다. 그 과정에서 엄마들이 취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미리 준비하고 길을 닦아 아이들이 ‘실패’ 하지 않게끔 도와주는 엄마들이 있는 가하면, 아이들이 넘어지고 일어서며 반복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분들도 있다. 어떤 이는 아이들이 혼자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하고, 혹자는 험난한 세상, 조금이라도 나은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다 맞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을 해서 무슨 결과가 나오든 그건 그 사람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들만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 역시 아이들을 키우며 본인만의 깨달음을 얻을 시간이 필요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놀이터의 벤치에 앉아 숨을 골랐다. 부끄러웠다. 젊은 엄마들의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좁은 인생 경험만으로 충고하려 했던 나 자신이 말이다. 어쩌면 나의 충고가 그 엄마들에게는 정말 귀한 조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귀한 정보도 원하는 사람이 있어야 빛을 발한다. 어쭙잖게 건넨 충고, 그 말이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정보일까?
솔직히 지금 이 순간에도 어린아이를 위해 큰돈을 쓸 필요 없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모든 일은 직접 느끼고 경험해야지만 더 큰 가치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아이들을 먼저 키워봤다고 해서 내가 가진 생각들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아직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값진 지혜가 있다. 또 몇 번 실패하면 어떠랴. 다시 돌아오면 되지.
공원 내 아름드리나무, 아담한 나무, 조그만 나무들이 옹기종기 심겨 있는 모습을 보며 나뭇잎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먼저 자라난 큰 나무들은 지나온 세월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덧붙이지 않는다. 거센 바람 앞에 꿋꿋하게 견디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더운 여름날에는 시원한 그늘을 마련해 줄 뿐이다. 작은 나무는 그들의 그림자 속에서 조금씩 성장의 힘을 키운다.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 내 경험을 빗대어 쉽게 충고하지 않고 침묵으로 공감하고 싶다. 때로는 기다림으로 지켜보고 고민들을 경청할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삶의 방식은 다양하고 선택의 순간은 다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