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진주 Oct 21. 2023

그날이 온다

 그날이 온다. 온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슬픔의 날이 오고 있다. 그날은 오로지 젊은 청춘들이 내뿜는 흥과 활기로만 가득 찬 축제여야 했다. 안타깝게도 159명이 입었던 무시무시한 악령의 복장은 생전의 마지막 옷이 되었고, 생기 가득한 그들의 생전 모습들은 온갖 소문들을 품은 채 비극으로 남았다. 이렇게 훌쩍 일 년이 다 되었지만, 시원한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아까운 시간만 흘렀다. 오히려 피해자들이, 피해자 유족들이 온갖 수군거림과 오명을 뒤집어쓴 채 사람들의 관심에서 조금씩 잊혀 가고 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다가오고 있다.


 핼러윈은 미국에서 매년 10월 31일에 유령 분장과 같은 다양한 복장을 입고 즐기는 켈트족의 축제이다. 죽은 이의 혼령을 달래고 악령을 쫓기 위해 시작했다는 이 행사는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밸런타인데이’와 같은 특별한 서양의 문화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영어를 공부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핼러윈은 점점 더 유명해졌다. 용산구의 대표적인 번화가이자 외국인, 외국 상품, 외국 문화의 집결지로 유명한 이태원이 핼러윈 행사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것은 이런 배경도 있었다.


 이상하게도 비극적인 사건보도는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작된다. 2014년에 있었던 세월호의 사건이 그랬고, 2022년의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그랬다. 우주를 탐사할 만큼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미래사회를 예측할 만큼 우리의 의식은 성장했지만, 현실에서의 사건수습은 미개한 야만인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매번 사람들은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찾기보다는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을 탓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보도되었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가 시작되는 날은 모두가 고대하던 주말이었다. 평일의 피로를 풀고 축제의 열기를 느끼기 위해 핼러윈 복장을 한 젊은 청춘들이 하나둘씩 이태원으로 몰려들었다. 그날은 용산에 자리 잡은 대통령 거처 주위에 다른 시위가 있던 날이기도 했다. 한쪽은 핼러윈 축제가, 다른 한쪽은 시위로 용산은 인산인해로 무척 붐볐다. 결국 이태원의 뜨거운 열기는 차가운 비극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전해지던 기사들을 확인하며 주위에 있는 20대 조카들,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들은 가까운 이들의 무사함에는 안심했지만, 시시각각 전해지는 청춘들의 비극적인 죽음에 눈물을 흘렀다.


 많은 이들이 끔찍한 핼러윈 참사를 보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그런 안타까운 마음 못지않게 '왜 쓸데없이 밤늦게 서양 축제에 나가서 그런 사고를 당했냐'는 비난의 목소리도 거셌다. 서양 축제에 참여했던 모든 젊은이들을 '날라리'로 취급했고, 굳이 한밤중에 이태원에 들른 그들의 열정을 '겉멋'으로 치부했다. 청춘의 혈기와 서양 축제의 낭만에 이끌리는 그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고 수군거렸다. 핼러윈 참사 기사마다 매정한 댓글들은 항상 비극을 두고 첨예하게 나뉘는 대한민국 여론의 현주소를 보여주었다. 아마도 이태원 유족들은 사랑하는 이의 갑작스러운 죽음뿐 아니라 이런 주변의 시선들 때문에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작년에 있었던 이태원 참사는 몇몇 책임자들만 잘린 채 이해할 수 없는 의문 속에 묻히고 있다. 매년 이태원에서 진행된 핼러윈 축제인데, 왜 이때만 많은 인원들이 죽었는지, 왜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시 안전을 관리하는 경찰들이 그 이전의 인원보다 부족했는지, 왜 모든 사실이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은 채 덮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모든 궁금증들이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은 채 참사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시간의 망각  속에 묻히고 있다.


 아니, 대한민국에서의 비극은 잊혀야만 되는 폭탄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이들을 괴롭게 하는 비극과 그것에 연루된 사람들은 남아있는 인간들의 무능력, 효율적이지 않은 사회구조를 일깨우는 존재이다. 깨끗한 사회와 모든 사람들의 화합을 위해서는 튀어나온 못들과 같은 소수는 그냥 묻히는 것이 옳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후 '진실을 밝혀 달라'라고 말하는 자들은 꿍꿍이가 있을 줄 모른다는 이야기와 보상금을 높이려는 수작이라는 말을 듣는다. 지금까지 거의 대부분의 피해자 유족들이 그랬다. 진실을 마주하려는 용기는 항상 시간이 걸렸다. 이것이 바로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매번 뒤늦게 드러나는 이유이다.


 한 어머니는 이태원 참사로 사랑하는 자식을 잃고 지금까지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중이다. 그녀는 핼러윈 행사를 벌이지 않는 분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핼러윈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태원 참사는 핼러윈 때문이 아니라 안전하지 못한 사회였기 때문에 발생했다. 핼러윈 데이가 없어진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안전해지는 것도 아니다"(출처: 오마이 뉴스, 2023.10.18)라고 말했다.


 그날이 온다. 모두를 슬픔에 잠기게 하고 대한민국 여론을 나뉘게 만들었던 그날이 오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안전할까?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질 시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는 어디로 갔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