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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죽기 전에는 완결을 볼 수 있는 거죠?

by 하늘진주

‘고전’은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고 읽는 독자들마다 다양한 감동을 주는 문학이나 예술 작품이다. 문자가 사용된 ‘역사시대’ 이후 셀 수 없이 많은 문학작품들이 나왔지만, ‘고전’의 왕관을 쓰는 작품들은 손을 꼽을 정도였다. 화려한 액세서리처럼 책장 한 구석을 차지한 채 많은 작가 지망생들의 마음을 홀리는 작품들이 바로 치열한 ‘고전’ 명성 쟁탈전에서 살아남은 진정한 승리자들이었다.


‘고전’은 전문가들의 찬사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때 감히 ‘고전’의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순정만화 팬들이라면 무조건 ‘고전’으로 생각하는 만화책이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완결을 기다리는 책이다. 나는 미우치 스즈에의 <유리가면>을 감히 만화계의 고전이라 부른다. 이 작품은 평범한 기타지마 마야와 연극계의 천재 소녀 히메가와 아유미가 전설의 명작 연극 <홍천녀>의 주인공 자리를 두고 벌이는 경쟁을 다룬 만화이다.


<유리가면>의 주인공 기타지마 마야는 중국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소녀이다. 영화와 연극을 너무도 사랑하는 그녀는 한번 본 장면의 대사와 행동을 그대로 암기하는 놀라운 재주가 있다. 우연히 왕년의 대여배우였던 츠키카게 치구사가 마야의 천부적인 연기 재능을 발견한다. 그리고 마야를 제자로 삼아 혹독하게 가르친다. 치구사는 많은 배우들이 탐을 내는 명작 <홍천녀> 상영 권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 주인공 후보로 마야를 점찍은 탓이다. 연극계의 금수저인 히메가와 아유미 역시 <홍천녀>의 주인공 역에 도전하면서 자연스레 마야와 아유미는 숙명적인 경쟁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사실 이 작품은 1976년 첫 발매 이후 2023년 지금까지도 거의 47년 동안 완결이 되지 않은 비운의 만화책이다. 2013년 <49권>을 끝으로 휴재가 되었으니 독자들의 원성이 자자할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불성실한 작가를 탓하며 <유리가면>을 잊어버릴 만도 한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흔한 광고멘트처럼, <유리가면>을 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유리가면>을 한 권이라도 본 독자들은 좀처럼 이 매력에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만화는 배우들의 꿈과 열정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과 한국에서 이 만화책을 읽고 배우의 꿈을 꾼 지망생들이 많았다고 한다.


<유리가면>은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무협지나 영웅담과 비슷한 구성을 따르고 있다. 성장형 주인공 마야, 세계관 최강자인 스승 츠키카게 치구사, 그리고 강력한 천재 라이벌 아유미, 그리고 매회 힘든 고난과 역경들이 등장한다. 뒤늦게 연기를 시작한 흙수저 출신인 마야에게 연극의 세상은 극복해야 할 시련들이 많은 싸움터이다. 아름답고 연극 영화계 거물인 부모를 둔 경쟁자 아유미 역시 넘지 못할 산이자 열등감을 안겨 주는 존재이다. 그런 상황에서 마야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눈앞의 어려움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는 과정들은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마저 전해준다. 이 만화는 가진 것이 하나 없는 흙수저도 ‘노력하면 된다’는 판타지를 지닌 성공신화이다.


‘유리가면’은 배우들이 작품마다 다양하게 쓰는 역할의 가면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그 말처럼, 이 만화에는 정말 다양한 연극들이 등장한다. 마야가 고열에 빠져 베스 역을 연기했던 첫 연극 <작은 아씨들>, 아유미와 서로 다른 매력으로 경쟁을 벌였던 <헬렌 켈러>, 모노드라마로 혼자서 연기했던 <지나와 다섯 개의 푸른 항아리>, 풋풋한 첫 연애를 했던 <폭풍의 언덕>, <두 사람의 왕녀>, 늑대소녀 역을 했던 < 잊혀진 황야> 등등 여러 연극의 에피소드들은 매 순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마야는 연기를 시작한 순간부터 정말 많은 연극들의 배역에 도전하면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한다. 그녀가 지닌 다양한 필모그래피는 그동안 밟아온 노력의 결과물이자 멈추지 않은 도전의 흔적이다. 이처럼 주인공 마야의 가장 큰 매력은 주어진 상황에 굴복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이다. 사실 주인공은 연기하는 순간부터 매번 라이벌 아유미와 비교당하며 이름이 오르내렸다. 마야의 연기 인생은 항상 가시발길이었다. 그녀는 뛰어난 연기로 인기의 최정상까지 올랐지만 마야의 인기를 질투한 한 배우의 모략으로 철저하게 무너져 모든 연극계에서 쫓겨났다. 그 순간에도 주인공은 연기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는다.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지고 밑바닥에서 연기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순간,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 일단 해 보는 거야. 안되면 할 수 없고.” 도전이 무서운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말이다.


<유리가면>이 완결되지 않은 지 47년이 흘렀다. 솔직히 죽기 전에 이 작품의 완결을 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작가는 2021년 4월, 본인의 트위터에 유리가면의 연재에 대해 이렇게 썼다고 한다.


(아마테라스와 유리가면) 후속 이야기는 계속 머릿속에 있고, 하루라도 빨리 여러분에게 전달하고 싶다,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사정이 있어도, 여러분에게는 "변명"에 지나지 않고, 굳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왔습니다. 속편을 좋은 형태로 간행하는 날이 오면 꼭 알려드리겠습니다. 진심으로 사과와 함께, 부디 믿고 기다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부디 여러분이,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유리가면>이 완결되는 날이 오긴 할까? 이제는 너무도 고령의 나이인 작가, 제발 이 작품의 완결을 위해 조금만 힘내줬으면 좋겠다. 그날이 오면 정말 신나게 완결 작을 사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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