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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Nov 05. 2023

"슈뢰딩거의 고양이 상자를 열었기 때문에"

<꿀벌의 예언 1,2>(베르나르 베르베르, 2023)

‘그리스 신화’의 카산드라는 미래를 예언할 수 있는 트로이의 공주이다. 그녀는 아폴론 신의 사랑을 거부해 설득력을 제외한 예언의 능력만을 얻었다. 그런 이유로 조국의 멸망을 예언한 카산드라의 의견은 백성들에게 모두 무시되었고, 결국 트로이는 함락되었다. 가끔 그녀의 예언이 정말 설득력이 없었기 때문에 트로이의 사람들이 거부했던 것일지 궁금할 때가 있다. 어쩌면 백성들은 카산드라가 예언한 트로이의 미래가 너무 끔찍하고 비극적이어서 애써 무시했던 것은 아닐지 상상해 본다. 사람들은 앞으로 닥쳐올 현실이 너무 끔찍하면 그 사실을 외면하기도 한다. 미래는 고정되지 않았기에 변화무쌍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소설 <꿀벌의 예언 1, 2> (2023. 열린 책들)는 꿀벌이 사라지고 인류 멸종의 위기가 닥친 2053의 지구를 목격한 르네가 미래를 바꾸기 위해 시공간을 넘나드는 모험을 그린 작품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를 누리고 있는 타고난 글쟁이다. 그는 독특한 상상력과 흡입력 있는 스토리로 독자들의 흠모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베르베르는 “꿀벌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순간 인간에게 남은 기간은 4년뿐”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에서 작품의 실마리를 얻어 740페이지가 넘는 <꿀벌의 예언>의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한다.


 주인공 르네 톨레다노는 예언과 퇴행 최면이라는 도구로 역사 속의 과거와 미래, 현재를 자유롭게 오가는 인물이다. 그는 애인 오팔과 함께 진행하는 최면 공연에서 30년 후의 미래를 보여달라는 여성 베스파의 최면을 돕는다. 2053년의 끔찍한 미래를 본 그녀는 충격으로 공연장을 뛰쳐나가고 교통사고를 당한다. 이 사고로 르네는 파산 위기에 처하고 자신의 스승인 알렉산드로를 찾아가 역사 강사 자리를 겨우 얻는다. 베스파가 보았던 미래를 궁금했던 그는 최면으로 30년 후의 미래를 다시 찾아간다. 르네는 미래의 르네로부터 본인 때문에 인류가 멸망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베스파에게 미래를 보여준 일이 원인이 되어 꿀벌이 멸종했기 때문이다. 그는 ‘꿀벌의 예언’이라는 책만이 유일한 해결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인류를 멸망에서 구하기 위해 과거 여행을 시작한다.


 비극적인 미래를 안다는 것은 불행하다. 작가는 르네가 만난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우리의 최대 적은 미래에 대한 공포”<꿀벌의 예언 1>(p.214)이며 “미래를 안다는 것은 분명히 양날의 검이 될 수 있”<꿀벌의 예언 2>다고 말한다. 대부분 사람은 끔찍한 미래를 미리 알아도 원인을 찾아 개선하기보다는 외면한 채 눈앞의 쾌락에만 집중하고 싶어 한다. 이것이 숱한 환경전문가들이 2050년의 지구 온난화 위기를 예언해도 지금까지 주요 국가들이 실질적인 행동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다. <그리스 신화>의 카산드라를 바라보는 트로이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불행한 미래를 알아도 함께 노력하고 고치려는 사람들이 없으면 비극은 반드시 벌어질 수밖에 없다.


 르네가 보고 온 2053년의 지구 미래는 현실의 환경전문가들이 주장하는 2050년대 지구의 미래와 별반 다르지 않다. 꿀벌이 사라진 미래는 무서운 인구의 증가로 식량이 부족한 시대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구의 온도는 상승해서 한 겨울인데도 43.7도에 이른다. 배고픔을 참지 못한 사람들은 폭동을 세계 곳곳에서 일으키고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다.


 “결국 핵전쟁이 일어나고 말더군. 세계 인구가 워낙 많다 보니 각국의 수도와 대도시가 대부분 파괴되고 나서도 중소 도시와 온갖 벽지에서 전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네. 세계는 지금 한창 제3차 세계 대전 중일세. 2053년 12월에 말이야. 어디 전쟁뿐인가. 이 겨울에 다들 무더위고 고생하고 있어. 식수가 부족해서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네.”<꿀벌의 여행 1> (p.70)


 정말 다행스럽게도 작가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론을 통해 지구의 미래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의 불완전을 증명하기 위한 사고 실험이다. 이 이론에 따라 작가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비극과 희극의 확률이 각각 50%라고 주장한다. 미래는 관찰자의 관점에 따라 언제든 변할 수 있다.


“1935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밀폐된 상자에 고양이를 한 마리 넣고 실험한다는 가정을 했어요. 이 상자 안에 우연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독가스 살포 장치가 있다고 상상해 봐요. 시간이 지난 뒤에 독가스가 상자 안에 퍼져 고양이가 죽었을 가능성은 50퍼센트죠. 슈뢰딩거는 관찰자가 상자 안을 들여다보지 않는 한 고양이가 죽었을 가능성도 50퍼센트, 살았을 가능성도 50퍼센트라고 했어요. 관찰자가 상자를 열어 그 안을 확인해 보는 순간 현실이 어느 한쪽으로 고정된다는 거죠…. ”<꿀벌의 예언 2> (p.92)


 결국 미래를 구할 힘은 현재 바로 이 순간에 있다. 그 힘이 비록 ‘3보 전진 2보 후퇴’하고 ‘또다시 3보 전진’하는 느린 움직임이라 할지라도 계속 관심을 가지다 보면 미래는 바꿀 수 있다. 우리 모두의 ‘현재’만이 미래를 도울 유일한 선물이다.


 <꿀벌의 예언 1, 2>는 역사 속 사건을 여행하고 싶은 사람, 지구의 환경을 걱정하는 사람 그리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독창적이고 상상력 넘치는 이야기를 마음껏 읽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장담컨대, 첫 장을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완독 하기 전까지 절대로 책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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